"순환출자 구조가 해소돼도 그룹들의 내부지분율은 현재 40% 수준에서 38.5% 정도로 소폭 줄어드는 데 불과하다.

재계의 우려처럼 경영권이 위협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순환출자 금지방안이 도입되면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크게 떨어져 경영권을 지키기가 어렵게 될 것이라는 재계의 우려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측의 반박이다.

언뜻 보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한다고 모든 기업들이 경영권을 위협받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38.5%는 전체의 평균일 뿐 개별 기업들은 저마다 사정이 다르다.

특히 삼성그룹을 포함한 주요 그룹들은 순환출자가 금지되면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 위협에 그대로 노출된다.

주력 계열사 뿐 아니라 그룹 전체가 외국인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다.

이들 주요 기업들은 모두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핵심 기업들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공정위를 제외한 경제부처,야당,심지어 일부 여당 의원들까지 이 법안에 반대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순환출자 금지방안이 도입되면 우리나라 경제의 버팀목인 이들 기업들은 왜 경영권 위협을 받게 되는 걸까.



삼성전자 내부지분율 12.2%로 하락

순환출자가 금지되면 가장 큰 위협을 받는 곳은 삼성그룹이다.

그래서 이 규제는 사실상 삼성그룹을 겨냥하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는 순환출자 금지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채수찬 열린우리당 의원이 제안한 최소지분 의결권 제한.쉽게 말해 기업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순환출자구조를 이루는 여러 개의 연결고리 중 가장 지분율이 낮은 고리를 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기업들의 선택권이 제한될 수 있다.

그래서 논의되고 있는 방안이 임의 선택 지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이다.

기업들이 알아서 어느 고리를 끊을지 선택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삼성은 둘 중 어느 방안이 도입되더라도 경영권 위협을 피할 수 없다.

삼성은 총 6개의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이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삼성전자' 구조(편의상 A구조라 지칭)와 '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화재→삼성전자' 구조(B구조)다.

만약 최소지분 의결권 제한을 적용하면 A구조와 B구조에서 삼성물산과 삼성화재는 각각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지분을 털어내야 한다.

이 고리가 두 구조에서 최소지분에 해당하는 고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기존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삼성전자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척도인 내부지분율은 현재 18.1%에서 12.2%까지 떨어진다.

만약 삼성전자 지분 11.2%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 씨티은행이 다른 외국계 투자자와 연합해 공격해온다면 국내 시가총액 1위 기업 삼성전자의 경영권은 고스란히 외국인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 같은 위협을 피하기 위해 삼성이 털어낼 지분을 직접 선택하게 하더라도 여전히 경영권 위협은 상존한다.

A구조에서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 대신 삼성SDI의 삼성물산 지분을 털어내면 삼성물산의 내부지분율은 14.9%에서 6.9%로 떨어진다.

그러면 8.0%의 지분을 가진 플래티넘에셋매니지먼트에 삼성물산 최대주주 자리를 넘겨줘야 한다.


○최소지분 의결권 제한 시 6개 그룹 낭패

삼성그룹은 어떤 경우든 모두 경영권 위협에 처하게 되는 케이스다.

만약 채 의원의 제안이 받아들여질 경우에는 삼성그룹과 함께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한솔그룹이 경영권을 잃을 위험에 빠지게 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총 3개의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는데 3개 구조 모두 최소지분에 해당되는 피출자회사는 현대자동차다.

이 지분들의 의결권을 동시에 제한하면 현대자동차의 내부지분율은 25.5%에서 5.5%로 떨어진다.

이는 외부 최대주주인 캐피털리서치&매니지먼트(6.0%)와 외부 2대주주인 캐피털그룹인터내셔널(5.6%)보다 낮은 지분율이다.

'SK㈜→SK텔레콤→SK C&C→SK㈜'와 'SK㈜→SK네트웍스→SK C&C→SK㈜의 두 가지 순환출자구조를 갖고 있는 SK그룹의 경우 두 구조 모두 최소지분은 SK C&C가 보유한 SK㈜ 지분 11.2%다.

이 지분의 의결권이 묶이면 SK㈜의 내부지분율은 1.9%로 내려앉는다.

이렇게 되면 외국계 투자자 템플턴(5.5%)에 최대 주주의 자리를 내줘야 한다.

결국 순환출자 금지 방안이 도입되면 최악의 경우 LG그룹을 제외한 국내 4대 그룹이 적대적 M&A 위협에 노심초사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