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喜顯 < 서울시립대 교수·국사학 >

'한강유역은 중국 땅이었다''발해는 당의 지방정권''중국의 2008년 동계 아시안게임 성화를 백두산에서 채화'. 이러한 글들은 요사이 우리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고 심장의 박동수를 늘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언젠가는 백두산은 물론 휴전선 이북이 중국 영토가 될 판이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낱 시나리오가 아니라 중국이 우리를 압박해 오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될 것은 중국 사회과학원이 2002년부터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변방사로 왜곡하기 시작한 이후 그들의 인식과 행동이 벌써 여기까지 와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습은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고구려사에 대한 갈등을 봉합하기 위하여 2004년 8월 양국 정부가 구두(口頭) 합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그 후로도 역사왜곡 활동을 계속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지난 2년 동안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 문제에 대응하여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해온 고구려연구재단이 해산되고 동북아역사재단이 확대 출범하는 과도기에 중국의 공세가 노골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중국의 패권주의적인 역사전쟁의 도전에 대하여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우선 우리 정부의 대응자세를 보자. 알려진 바와 같이 정부는 이에 대하여 중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항의를 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면서 우리 고대사에 대한 왜곡된 연구결과가 중국 정부의 공식입장이 되면 그 때 가서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미온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대응 방법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저들에게 역사 왜곡을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을 더 주는 결과를 낳는다. 왜냐하면 중국 사회과학원은 국무원 직속의 싱크탱크로서 그 주요 간부는 당성이 매우 높은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중국 사회과학원의 역사왜곡 교과서는 중국의 공식 입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조속히 역사 왜곡(歪曲)에 대하여 중국 정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 국민의 자존심,나아가 미래와 직결된 엄청난 사안이다. 따라서 중국과의 외교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더라도 정부는 이 문제가 다른 어떠한 현안보다 중차대한 것임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아마도 고구려연구재단이 이루어 놓은 학문적 연구 성과물과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 전략은 중국 정부와의 역사논쟁 과정에서 매우 좋은 실탄 역할을 할 것이다.

아울러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하여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북한과 힘을 모을 수 있는 방안도 적극 마련하여야 한다. 고조선과 고구려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북한이 중국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그 효과는 매우 클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사회과학원이 한국 고대사를 집요하게 왜곡하는 것에 대해 적극 대응하여야 할 또 다른 주체는 역시 한국 고대사학계와 고고학계이다. 학계는 고조선부터 부여·고구려·발해에 이르기까지 연구력을 보다 더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중국의 역사 왜곡상을 파헤치기 위한 보다 많은 학문적 노력과 연구자 확충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연구자들은 배전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정부도 전폭적인 지원을 하여야 한다.

또한 중국의 한국 고대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하여 고조선 이후 면면히 흘러온 우리의 역사적인 흐름과 문화적 계승성을 분명히 밝히는 작업이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제에 우리 역사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조선사 내지 한국 청동기시대에 대한 학문적인 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만주 지역의 청동기 문화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통하여 시베리아 지역과 한반도의 문화적인 연결고리를 찾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한국 청동기문화와 중국 청동기문화와의 차별성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