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FT)는 5일(현지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아스펜에 있는 별장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 엔론의 창업자 케네스 레이 전 회장(64)의 죽음을 이렇게 평가했다.
레이의 죽음으로 미국 월가를 뒤흔든 초대형 회계부정 스캔들 엔론 사태의 진실은 영원히 땅에 묻히게 됐다.
레이는 가난한 침례교 전도사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 7대 기업을 일군 인물.1985년 휴스턴 내추럴가스와 인터노스 등 두 천연가스 업체를 합병시켜 엔론을 설립한 후 10여년 만에 미국과 유럽 에너지 거래의 20%를 담당하는 거대 에너지 기업을 키웠다.
그러나 이 같은 성장의 뒤편에선 엄청난 규모의 빚더미가 쌓이고 있었다.
회사는 회계장부를 조작,이를 숨기려 했지만 2001년 12월 파산보호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레이와 엔론의 전 사장 제프리 스킬링은 파산보호신청 직전에 엔론의 재무상태에 대해 투자자와 종업원들에게 거짓말을 한 혐의로 지난 5월 사기죄 등에 대해 유죄평결을 받았다.
이들은 오는 10월 선고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레이는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정도인 수십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예상돼 왔다.
그러나 레이는 생전에 엔론을 무너뜨린 것은 회계부정이 아니라 언론의 '마녀사냥'이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무분별한 언론 보도로 엔론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떨어져 파산했다는 것이다.
FT는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처럼 추락하기 전까지 레이의 삶은 화려한 경력으로 채워져 있었다고 전했다.
1942년 미주리주 티론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엔론의 회장 자리에 오를 때까지 성공한 기업인의 인생을 살았다.
어린 레이는 신문배달,건초 정리,잔디깎기 등으로 집안 살림에 돈을 보태야 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다.
미주리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휴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딸 때는 밤에 공부하고 낮엔 풀타임 근로자로 일했다.
줄곧 에너지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레이건 전 대통령 시절 에너지 관련 규제가 대거 철폐되자 재빨리 사업 기회를 포착,결국 엔론을 탄생시켰다.
정치권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정치인들에게 적극적으로 기부금을 지원,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레이를 '케니 보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회계부정으로 680억달러짜리 공룡기업이 하룻밤 새 파산하면서 엔론 사태는 '기업범죄의 대명사'가 됐다.
또 잇따라 터진 월드콤 아델피아 타이코 등 대기업들의 회계부정 사건과 함께 기업회계 투명성을 강조한 사베인스 옥슬리법의 제정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