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 <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

남북이 철도연결 시험운행에 합의하자 남측에서는 통일이 성큼 다가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철마가 북으로 달릴 수 있다는 상징성만으로도 통일이 다 됐다는 생각을 하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사를 불과 하루 앞두고 북측은 갑작스런 취소 통보를 해왔다.

이번 시험운행 취소에는 남북관계에 대한 북측 내부의 속도조절론이 일정하게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남북관계를 두고 북측이 일방적으로 끌려간다는 일부의 불만이 온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북측의 일관된 요구사항이었던 '근본문제'에 대해 남측은 무성의로 대응했으며 또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와 철도연결 문제를 그대로 관철시켰다는 인식이다.

최근의 남북 합의사항이 대체로 남측의 요구만 관철되고 남측의 성과로만 기록될 뿐 북측의 요구는 전혀 수용되지 않았음을 탐탁지 않게 여긴 것이다.

따라서 이번 시험운행 취소 사태는 최근의 남북관계를 지나치게 편의적으로 대하고 안이하게 접근했던 우리 측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북·미대결 구조 하에서 남북관계 진전이 필요하고 남측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이 절실할 것이라는 북한 입장만을 일반화한 채 그 내부에 존재하는 불만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것이다.

북핵문제의 장기 교착과 북·미 대결의 장기화라는 한반도 정세를 돌파하기 위해 남북관계 진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최근 우리 정부의 입장은 타당한 것이다.

북에 대한 물질적 제도적 지원과 조건 없는 양보를 언급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몽골 발언도 그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북이 주도해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이를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전략은 반드시 북한의 적극적인 반응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몽골 발언 이후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만한 남북의 신뢰감 점검을 소홀히했다.

철도 시험운행 합의를 북측의 대남 신뢰감으로 간주한 채 사실상 북이 남측의 신뢰를 확인하려 했던 NLL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당연히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북한의 적극적인 협력을 필요로 하는데도 정부는 북의 대남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입장을 밝히지 못했다.

근본문제에 대한 정부 입장은 여전히 불투명했고 어쩌면 시험운행 취소는 예고됐던 것이기도 하다.

시험운행이 취소된 이후에도 남북은 상호 책임 소재를 놓고 소모적인 공방을 벌이고 있다.

특히 북한은 장관급 회담 대표 명의의 반박 전통문을 보내더니 이제 조평통 대변인 담화와 남북군사회담 북측 대변인 명의의 담화까지 잇따라 발표하고 나섰다.

상대방에 대한 책임 전가는 물론이고 상대를 탓하는 주체도 갈수록 격상되고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DJ의 방북 일정이 확정되고 12차 경추위의 제주 개최가 합의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지만 쟁점과 현안에 대한 남북의 신경전이 이전보다 심화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애초에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으로서 철도연결을 간주했고 그래서 취소결정이 안타까운 것이었는데 취소 사태로 인해 남북관계가 정체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역설적이다.

지금이라도 상황을 직시하고 사태를 추스르면서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본래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북한의 일방 취소에 대응해 북에 제공하기로 약속한 경공업 원자재 지원을 보류해야 한다는 상호주의 주장은 남북관계 악화를 더욱 부추기는 일일 뿐이다.

오히려 지금 시기 남북관계 진전으로 한반도 정세를 돌파하겠다면 남북의 신뢰를 탄탄히 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보다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

시험운행에 목말라 한 이유가 바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