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교권 (敎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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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스승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교사가 학부모 앞에서 무릎을 꿇는 사건이 터지더니 선생님이 제자에게 걷어 차이는 반윤리적인 행동까지 벌어졌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느니 '군사부(君師父)일체'니 하는 말은 빛바랜 고전에서나 찾아야 할 것 같다.
사실 교육현장에서의 교사에 대한 폭언이나 폭행,협박은 새로운 사안이 아니다.
종래에도 비일비재했던 일이 잇따라 수면위로 불거졌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을 선생님의 탓만으로 돌릴 수 있을까.
촌지시비의 와중에는 마치 교사가 중심에 선듯 부각되고,입시제도 때문인데도 인성교육을 소홀히 다룬다는 비난을 한몸에 받기 일쑤다.
그저 진학지도나 하는 '지식 장사꾼'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일로 인해 교권(敎權)이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교권은 누가 주어서 만들어지는 권위가 결코 아니다.
교사와 학생,학부모 모두의 신뢰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교육자 입장에서는 자존심과 함께 스스로를 지키는 생명과도 같다.
이 교권이 무너질 때 교사의 긍지는 사라질 것이고,따라서 교육의 장래가 어떠할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교권을 두고 여기저기서 자조섞인 얘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교권에 대한 불신은 교사 자신들의 책임도 크지 않나 싶다.
페스탈로치가 말한 것처럼 "애정과 기쁨을 갖고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얼마나 인내했는가" 돌아볼 일이다.
또 "자신을 촛불이라 여기며 학생을 계발(啓發)시키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는가" "학생과 같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동행자의 역할에 과연 충실했는가"하는 점들도 짚어볼 일이다.
교사는 단지 생계를 위한 직업인이 아니다.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자기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를 통해서 교육자는 자기 신념에 따라 교육하고 남의 간섭을 받지 않는 교권을 확립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진정 학생들의 스승으로 기억될 것인가,아니면 자질없는 지식 전수자로 남을 것인가"는 선생님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
교사가 학부모 앞에서 무릎을 꿇는 사건이 터지더니 선생님이 제자에게 걷어 차이는 반윤리적인 행동까지 벌어졌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느니 '군사부(君師父)일체'니 하는 말은 빛바랜 고전에서나 찾아야 할 것 같다.
사실 교육현장에서의 교사에 대한 폭언이나 폭행,협박은 새로운 사안이 아니다.
종래에도 비일비재했던 일이 잇따라 수면위로 불거졌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을 선생님의 탓만으로 돌릴 수 있을까.
촌지시비의 와중에는 마치 교사가 중심에 선듯 부각되고,입시제도 때문인데도 인성교육을 소홀히 다룬다는 비난을 한몸에 받기 일쑤다.
그저 진학지도나 하는 '지식 장사꾼'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일로 인해 교권(敎權)이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교권은 누가 주어서 만들어지는 권위가 결코 아니다.
교사와 학생,학부모 모두의 신뢰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교육자 입장에서는 자존심과 함께 스스로를 지키는 생명과도 같다.
이 교권이 무너질 때 교사의 긍지는 사라질 것이고,따라서 교육의 장래가 어떠할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교권을 두고 여기저기서 자조섞인 얘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교권에 대한 불신은 교사 자신들의 책임도 크지 않나 싶다.
페스탈로치가 말한 것처럼 "애정과 기쁨을 갖고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얼마나 인내했는가" 돌아볼 일이다.
또 "자신을 촛불이라 여기며 학생을 계발(啓發)시키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는가" "학생과 같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동행자의 역할에 과연 충실했는가"하는 점들도 짚어볼 일이다.
교사는 단지 생계를 위한 직업인이 아니다.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자기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를 통해서 교육자는 자기 신념에 따라 교육하고 남의 간섭을 받지 않는 교권을 확립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진정 학생들의 스승으로 기억될 것인가,아니면 자질없는 지식 전수자로 남을 것인가"는 선생님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