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과세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주식의 실제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 명의자에게 무조건 증여세를 부과해 온 과세 당국의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대법원 3부(주심 이규홍 대법관)는 "명의만 빌려줬을 뿐인데 16억원의 증여세를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며 박 모씨(57)가 서울 성북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명의신탁이 조세 회피 목적이 아닌 다른 이유에서 이뤄졌음이 인정되고 명의신탁으로 사소한 조세 경감 효과만 있다면 조세 회피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1인 회사인 Y건설 대표이사 이 모씨가 원고 박씨의 이름으로 주식을 인수한 것은 상법상 요구되는 발기인 수를 채우기 위한 것이고 Y건설이 설립 후 30여년 동안 조세체납이 없는 점 등을 감안하면 명의신탁 당시 이씨가 배당소득의 종합소득합산과세에 따른 누진세율 적용을 회피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박씨는 Y건설 대표이사 이씨가 명의신탁한 주식 21만2000주를 갖고 있다가 성북세무서에서 16억여원의 증여세를 부과받자 소송을 냈다.

현행 세법은 명의신탁 제도를 악용한 조세 회피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실질과세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실제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를 경우 증여받은 것으로 여겨 명의를 빌려준 사람에게 증여세를 부과토록 하고 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