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내 인생의 MVP는 어머니입니다."

미국 슈퍼볼 스타 하인스 워드 모자(母子)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새삼 '혼혈아'를 향한 뿌리 깊은 차별과 근거 없는 편견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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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다(多)인종 다(多)문화 사회의 전통을 뿌리내리기 시작한 미국에서 인종 및 문화 간 공존과 통합의 문제는 항상 뜨거운 감자였다.

1960년대 전세계를 향해 이민의 문을 활짝 열었던 당시 미국은 스스로를 '용광로(melting pot)'에 비유하며 인종과 언어,혈통과 지역적 차이를 불문하고 누구든 미국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미국 시민으로 동화되리란 청사진을 펼쳤다.

그러나 미국판 용광로의 꿈은 1970년대를 지나면서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를 보임으로써 '쇠고기 스튜(stew)'로 한걸음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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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세계 각국에서 밀려오는 이민자들이 미국 시민이 된다는 것은,다양한 야채와 쇠고기를 섞어 뭉근히 끓여낸 쇠고기 스튜처럼 각 민족의 역사와 전통 위에 미국 시민이란 맛이 뭉근히 배어든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쇠고기 스튜의 비유 역시 '샐러드 바'에 자리를 넘겨주고 말았다.

결국 미국 시민이 된다는 것은 야채든 과일이든 각각 고유한 맛을 유지한 상태에서 드레싱만 끼얹는 샐러드처럼,각 민족들만의 문화적 전통과 역사적 뿌리는 유지한 상태에서 미국 시민이란 새로운 정체성을 드레싱처럼 얹음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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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에서 쇠고기 스튜를 거쳐 샐러드 바에 이르는 비유는 오늘날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인종과 민족의 이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체성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흥미로운 실례라 하겠다.

인종간 민족간 지역간 이동 및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우리가 누구냐' 하는 정체성이 진정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게 됨은 일면 아이러니인지도 모를 일이다.

한데 이 역설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은 진정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주류 사회로부터 차별과 수모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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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한국계 미국인(Korean-American)으로서 미국 사회에 발붙이기 위해서는 한국인도 아니요 미국인도 아닌 제 3의 정체성, 곧 '한국계 미국인'이란 이중(double)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체화해야 한다.

만일 코리안-아메리칸이 백인과 동화되려 한다면 백인들은 가차 없이 '바나나'라 칭하며 경멸의 눈초리를 보낸다.

겉은 노란데 속은 하얀 바나나처럼 허위의 정체성을 지닌 것을 비난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프로-아메리칸(Afro-American:요즘은 가능한 한 흑인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이 백인과 동일시하려 한다면 역시 '오레오 쿠키'라 부른다 한다.

겉은 검은데 속엔 하얀 크림이 들어 있는 쿠키처럼 가식적 정체성을 지닌 것을 비판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워드 어머니의 정체성을 충분히 존중해 주어야 할 것이요,워드 자신의 다중(多重)적 정체성을 향해서도 넓은 마음으로 포용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가 자랑스러운 이유는 굳이 '한국인'이기 때문은 아닐게다.

그보다는 극히 척박한 환경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끈기 있게 도전해온 불굴의 의지가 감격스럽고,넘기 어려운 차별과 편견의 벽을 뚫고 정상에 우뚝 선 그 모습이 감동스러운 것일게다.

그 뒤에 어머니의 절대적 사랑과 눈물겨운 헌신이 있었음은 워드에겐 축복이었음은 물론이다.

차제에 '이름 없는 혼혈아'들을 위해 법·제도적 차원에서의 두터운 차별 장벽들을 거두어냄은 물론,나와 피부 빛깔이 다르거나 말투가 조금만 달라도 경계와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온 우리네 특유의 배타적·유아적 민족의식을 깊이 반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