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창 삼성생명 사장(내정)의 딸들은 아버지와 함께 TV드라마를 볼 때 슬픈 장면이 나오면 아버지 옆에 살며시 손수건을 갖다 놓는다.

TV를 보며 눈물을 훔치는 아버지의 모습에 익숙한 까닭이다.

이 사장은 그만큼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다.


지난 1일 대전 충무체육관.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 간 프로배구 챔피언 결정전 4차전이 열렸다.

삼성화재가 세트스코어 2-1로 앞선 상태에서 네 번째 세트가 시작되자 이 사장은 도저히 경기를 지켜볼 수 없어 혼자 밖으로 나갔다.

부인이 챙겨준 우황청심환을 먹었지만 박빙의 경기를 볼 엄두가 안났다.

경기장 안의 함성 소리를 듣고 나서야 "이겼나 보다"하며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5차전에서 져 비록 10연패란 신화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이 사장은 "그대들은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이라는 내용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려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칭찬했다.

이 같은 감수성은 회사 경영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삼성화재 재직 시절 2003년 5월부터 매월 마지막주에 '현장 깜짝방문(Surprise Visit)'을 실시했다.

영업과 보상 현장을 직접 찾아가 격려하고 평소 애로를 직접 청취한 것이다.

"모든 문제는 현장에 있고,해답도 현장에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철저한 현장 경영자인 그의 경영철학은 '정도경영'과 '윤리경영'이다.

그는 "정도영업과 윤리경영은 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안 하면 망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사장은 오전 7시30분께 출근해 컴퓨터를 켜고 '고객의 소리(VOC)'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고객불만만큼 귀중한 경영정보는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먼저 고객불만을 듣고 나서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아 제도,시스템 등을 개선하고 경영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사장을 맡았던 2001년부터 삼성화재는 손보업계 1위 자리를 더욱 공고히 했다.

업계 2~4위권 회사의 순이익을 더한 만큼의 흑자를 매년 꼬박꼬박 냈다.

물론 그것도 "고객 선택의 결과"라며 겸손해 한다.

이 사장은 "시장점유율(Market Share) 1위라는 것은 얼마나 많은 고객이 우리 회사를 선택하느냐의 문제"라며 "결국 마켓셰어(MS)는 마인드셰어(MS)와 일맥상통한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경영철학은 삼성생명에서도 유지될 수 있을까? 삼성생명은 이전에 그가 맡았던 회사들과는 다른 접근과 사고가 요구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자산 규모 면에서 삼성생명(100조원)은 삼성화재(16조원)의 6배에 이른다.

은행을 빼곤 가장 큰 금융회사다.

7개 삼성 금융계열사 중에서도 맏형으로 불리는 위치에 있다.

전임 배정충 사장이 잘 일궈놓은 경영 성과를 계승하고 더 풍부하게 만들어야 하는 과제 또한 가볍지 않다.

주변 여건도 간단치는 않다.

1973년 입사했던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생보업계는 요즘 사상 유례 없는 극심한 변화의 와중에 있다.

ING생명을 비롯한 외국계 회사는 공격 영업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금융당국의 잇따른 회계기준 강화 조치도 적지 않은 도전 요인이 아닐 수 없다.

2008년부터는 금융권에 지각변동을 몰고올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다.

무엇보다 그가 당면한 최대 숙제는 삼성생명 상장 건이다.

상장 문제는 삼성자동차 부채 처리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만큼 그룹에서도 민감하게 신경쓰는 부분이다.

시민단체들도 이 문제에 관한 한 녹록지 않다.

정부는 이르면 상반기 중 상장방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계약자 배분 등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상장문제의 매듭을 어떻게 풀어갈지 그의 수완이 기대된다.

이 사장은 1980년대 초 제일제당 과장으로 근무할 당시 책상 앞에 '나의 장래 꿈은 사장'이라는 글귀를 붙여놓고 일했다.

자기주문이기도 했고,채찍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선배들로부터 핀잔도 많이 들었지만 꿈은 영글었다.

삼성 금융 계열사 최고의 자리로 불리는 삼성생명 사장을 맡은 이 사장.그의 앞엔 이제 삼성생명을 국내 최고가 아닌 세계 최고로 도약시켜야 한다는 또 다른 과제가 놓여있다.

이성태 기자 stee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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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창 사장은‥ ]

-1967년 경북 예천 대창고 졸업

-1971년 서울대 수의학과 졸업

-1973년 삼성생명 입사

-1993년 삼성생명 상무

-1995~99년 삼성화재 상무 전무 부사장

-2001년 삼성화재 사장

-2006년 삼성생명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