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8 16:00
수정2006.04.08 19:53
김정산 < 소설가·대하소설 '삼한지' 작가 >
옛날사람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다.
남자들이 논밭에 나가서 농사를 지으면 여자들은 점심과 새참을 지어 날랐다.
그러다가 연로한 조부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자식들은 논밭의 끝자락이나 집 뒤 야산에 뫼를 썼다.
삶과 죽음의 공간이 주로 일상생활의 범위 안에서 공존했다.
가을이 와서 수확을 하면 자식들은 불과 엊그제만 해도 함께 땀을 흘리며 농사를 짓던 아버지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수확물들을 가져가 먼저 조상 영전에 바쳤던 게 명절 차례의 연원이다.
옛날사람들에게는 먹는 게 제일 중요했다.
입살이가 일생의 중대사였다.
먹을 것만 있으면 행복했고 잘먹는 게 곧 잘사는 거였다.
그러니 귀신도 잘 먹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죽으면 해마다 죽은 날짜에 저승에서 하룻동안 휴가를 얻어 나오는데,전후불계하고 우선은 음식부터 차려서 먹여야 했다.
기제(忌祭)의 연원 역시 차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흔히 기제를 돌아가신 하루 전날에 모시는 이유도 실은 돌아가신 당일에 제사를 지내야 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대접을 하려는 자손들의 갸륵한 마음이 만들어낸 풍습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사를 모시면 자시(子時)부터 휴가를 나온 귀신이 밤새 굶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차례나 제사는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 때,특히 먹을거리가 부족해서 사람마다 굶주리던 과거 농경사회가 만들어낸 의식(儀式)이고 풍습이다.
지금은 삶과 죽음의 공간이 일상의 범주 안에 공존하지도 않을 뿐더러 장성한 자식이나 형제들이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도 드물다.
지난 설 연휴 전날 갑자기 문상 갈 일이 생겨서 모처럼 귀성행렬에 휩쓸려 왕복 14시간이나 운전을 했다.
도로를 가득 메운 수많은 차량들,대구 근방에서 본 7중 추돌사고,휴게소에서 만난 피곤하고 초췌한 얼굴의 여자들과 어린애들,해마다 꼬박꼬박 두 번씩 치러야 하는 국민적 고통과 천문학적인 사회비용에 대해 이제는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시대가 바뀌면 풍속과 의식도 변하게 마련이다.
풍속과 의식은 과거와 현재가 맺는 관계인데,현재가 변하면 당연히 그 관계도 달라져야 한다.
예전부터 내려오는 풍속을 아무 점검 없이 무조건 따르는 일은 쉽고 편하다.
그러나 그렇게만 할 경우 자칫 형식주의에 빠져서 가치와 본말이 전도될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해마다 양력 마지막날 어김없이 거행하는 이른바 '제야의 종소리'라는 타종의식이다.
'조야(除夜)'라 불리는 일본 섣달그믐밤의 타종행사에서 비롯된 그 의식은 1929년에 처음 시작돼 일제 강점기가 끝날 때까지 지속됐다.
그 식민시대의 유산을 우리가 아무 점검이나 반성 없이 변형,계승해오고 있는 셈이다.
기제를 돌아가신 하루 전날 모시는 것도 요즈음에는 편의에 따라 초저녁에 지내니까 정작 조상은 자시에 휴가를 나와도 이미 제사가 끝나서 밥 한술(?) 얻어 자시지 못한다.
'하루 전날'이라는 형식만 남고 왜 그렇게 하는지 본질을 모르면 이런 우를 범하기 십상이다.
이제는 깊이 생각해서 고칠 전통과 풍속은 고치는 게 옳다고 본다.
우리가 고치지 않으면 우리 다음 세대가 전부 불효자가 된다.
인간사의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조상을 섬기는 문제도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보인다.
내가 죽어서 조상이 됐을 때 후손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가? 조상을 추모하고 음덕을 기리는 게 본질이고 차례나 제사는 형식에 불과하다.
본질을 계승하려면 시대에 맞게 형식을 바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