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수 <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 > "S대 W교수의 논문,세계적 과학잡지인 '사이언스'에 실리다." "P대 K교수,'네이처'에 논문 실리며 세계적 과학자로 우뚝 서다."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 언론매체가 줄기차게 보도해온 내용들이다. 미국과 영국의 이 두 과학잡지는 전문학술지로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게재된 논문들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쉽게 이해할 수도 없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이 학술지들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몇 년간 언론매체의 집중 보도와 과기부 같은 정부 부처는 물론 논문 저자 소속 기관의 대대적인 홍보로 실제 두 학술지를 만져보지도 못한 대부분 국민들도 세계최고의 과학잡지로 알고 있다. '사이언스,네이처,셀' 같은 과학잡지는 정확히 말하면 '영향력 지수(Impact Factor;논문 피인용지수)'가 매우 높은 SCI 등재 전문 학술지다. 특히 표지를 장식한 논문의 주저자는 해당 연구분야를 포함한 대부분 이공계 학자들로부터 연구능력을 인정받고 존경의 대상이 된다. SCI(Science Citation Index)는 미국의 민간 정보 서비스 제공기관인 ISI(Institute for Scientific Information)에서 선정한 과학 인용 색인으로 이 SCI에 등재된 학술지는 어느 정도 국제적 수준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원에 이어서 포항공대 같이 역사가 짧고 미국박사가 대부분인 교육기관에서 타학교 대비 우월성을 보이기 위해 내세우기 시작한 SCI 논문 숫자는 국내 과학 기술 수준 향상이라는 목표로 과기부 교육부 등 관련 정부 부처에서 개인이나 기관의 평가 기준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가장 중요한 지표로 자리잡았다. SCI 등재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숫자만 따지던 지표가 얼마 전부터는 논문 질의 차별화를 강조하면서 많은 부분의 평가 지표에 '영향력 지수'도 포함되기 시작했다. 교육부의 BK 사업이나 과기부의 대형 연구 사업의 주된 선정기준이 SCI이고 연구비 지원 성과도 대부분 SCI 논문 게재 증가로 홍보하고 있다. SCI는 이공계 교수임용,승진,승급의 주된 기준일 뿐 아니라 SCI 논문 숫자에 따라 지원금을 주는 대학도 많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분야는 전 세계에 유례없이 SCI를 유일무이한 평가 잣대로 '등극'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SCI 성과주의' 풍토에서 정부는 두 차례나 사이언스의 표지를 장식한 황우석 교수의 논문들을 연구비 지원 근거의 '증거'로 삼았을 것이다. 황 교수 자신도 이러한 점들을 충분히 이용하기 위해 해서는 안될 '논문조작'에까지 빠져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논문조작 시비'에 연루된 학자들이 더 있을 것이라는 보도를 접하고 보면 황 교수 사건도 결국 SCI '맹신'의 결과이며 SCI 절대기준 체제가 지속되는 한 우리나라 학자들은 '일단 실리고 보자'는 달콤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 할 것이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여러 번 지적했지만 과학 인용색인인 SCI를 공학 분야에까지 단일 기준으로 하는 우리 사회의 'SCI 맹신' 풍토는 이제부터라도 고쳐 나가야 한다. 과학과 공학이 구별되지 않는 연구 분야도 상당수 있지만 '지식을 이용해 돈을 벌게 해주는' 공학과 '돈을 이용해 지식을 탐구하는' 과학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산업체와 연결돼야 하는 공학분야는 우리나라 산업구조와 연결된 '집중과 선택'이 중요한 면도 있으나 과학분야는 '햇볕정책'이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인 순수 과학분야는 어느 한 곳도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SCI와 '영향력 지수'로 과학의 미래와 경제성을 예측하려는 것은 무모하고 우매한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