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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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뒷산 계곡 장안마을
김복순 할머니가 토란국을 끓일 때는
마당 앞 돌각담 가에서
사십년 넘게 자라는 들깨를 가루내어
한 주먹 푹 국솥에 넣어 끓이지요
그 토란국을 자실 때에 이빨 다 빠진 할머니는
입술로 오물오물 국물을 들이켜는데
일찍 뜬 낮달 하나가
처마밑 제비집 근처까지 내려와서
할머니 쉬었다 자시지요
된장 속에 묻은 무장아찌랑
들깻잎이랑 다 맛 들었구말구요
꼭 그렇게 말참견을 하지요
그럴 때 할머니는 오냐 내 새끼 효자다
오냐 내 새끼 효자다 국그릇 들고 마루 끝에 서서 하염없이 북녘 하늘 보지요
살아서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아들 생각 젖지요-곽재구 '낮달'전문
고향집 노부모 생각은 늘 가슴을 시리게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당신들은 자연을 닮아간다.
사람 만나기 어려운 동네에선 닭이나 강아지,또는 달도 곡식들도 말상대가 된다.
혼자 힘으로 갈 수 없는 '먼 곳'에 사는 아들딸들.그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도 무연히 바람결에 흘려보낼 뿐이다.
그렇게 한 생애는 저물어가고….당신들은 욕심이나 희망,절망까지 비워내고 하나의 풍경이 된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