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영 준 < 코리아리서치 회장 yjpark@research-int.co.kr > 리서치는 기본적으로 샘플링을 통해서 선정된 사람 수의 집계다. 어떤 의견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혹은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집계한다. 이 과정이 그냥 수를 세는 것처럼 단순하고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 리서치는 기본적으로 집계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그 집계가 상황에 따라서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데 리서치의 묘미가 있다. 같은 숫자로 집계되더라도 어떤 경우는 그것이 무척 많다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척 적은 수를 뜻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라는 숫자를 생각해 보자.그것이 이혼율이라면 어떨까? 대개 무척 높다고 인식할 것이다. 그러나 그 숫자가 흡연율이라면 반대의 반응이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반응의 이유는 주어진 상황과 과거의 역사, 다른 집단 혹은 국가와의 비교에 의해서 숫자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래서 리서치 집계는 단순하지 않고 재미있다. 사회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는 높은 비율을 얻은 집단이 올바른 판단을 하는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올바르다고 인정되고, 많은 사람이 속해 있는 그룹이 정상적이라고 인정되며 그 외 소수자 집단에게는 비정상이란 낙인이 찍히곤 한다. 젊은층 위주로 샘플링이 된다는 문제는 있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사회 여론이 빠르게 집계되는 현 상황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장애우'의 반대말로 '정상인'이 무의식적으로 사용되기도 하고,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유전자를 가진 아동에게는 '기형'이나'이상',즉 보통과 다르다는 수식어가 따르게 된다. 이런 경향이 우리 사회에 대중영합주의를 뿌리내리게 하는 토양을 만들어 주고 있다. 리서치에서 쓰는 말로 '아웃라이어'란 것이 있다. 대개의 표본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 홀로 떨어져 있는 표본을 일컫는다. 대개는 이들이 전체 집계에 혼선을 빚고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이들을 제외하고 집계하곤 한다. 소수자를 비정상이고 이상하다고 밀쳐내기 보다는 그들을 대다수의 범위 안에 품어주고 그들의 특수성을 인정해 주는 '아웃라이어 포함 집계'가 가능하게 되는 사회를 꿈꾼다면 나는 이상주의에 빠진 사람인가? 내 의견과 다르다고 폄하하고 매장시켜 버리기 보다는 소수의 의견도 받아들여 대화와 타협으로 이루어지는 성숙한 정치·경제·사회를 기대한다면 이 역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이상주의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