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 투수 박찬호의 활약이 대단하다. 마침내 100승의 위업도 달성했다. 올 들어 벌써 7승2패.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박찬호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몸도 많이 아팠지만 마음고생이 무척 심했을 것이다. 미국 언론은 대표적인 '먹튀' 선수로 박찬호를 지목,온갖 비난을 퍼부었다. 인터넷에 올려진 박찬호 관련기사는 비난으로 도배돼 있었다. 미국 언론이 '코리안 특급'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비싼 몸값을 받고 이적했는데 전혀 활약을 못하니까 비판 기사를 올렸을 것이다. 그들에게 선수 부상은 안중에 없었다. 그런데 박찬호의 부활 이전,미국 기자가 쓴 비난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오면 한국에선 댓글이 엄청 붙는데 거의 원색적인 욕이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운동선수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는 댓글은 가물에 콩나듯 하고 어쩌면 그렇게 욕을 해대는지. 그간 박찬호 선수가 고국에서 들려오는 악담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인터넷이 정보 전달에 도움을 주는 문명의 이기임에 틀림없지만 수많은 음란 사이트와 함께 욕설과 험담,모함과 비방의 시장이 되고 있기에 그 폐해가 보통 심한 게 아니다. 몇 주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제가 알고 있는 선생님은 학생들을 엄하게 대하는 호랑이 선생님이 아닌데 웬 졸업생이 선생님이 자기를 괴롭혀 대학시절이 아주 불우했었다고 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놨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깜짝 놀라 인터넷에 들어가 그 글을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이런 글이 올려져 있었다. '문창과 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잊을 수 없는 건 문연자('문학연구자료실'의 준말,학과 내 도서관)가 아닐까. 내가 그곳의 사서를 할 때 이승하 선생의 갈굼을 당하며 이를 갈았다. 지금도 이승하 선생은 싫다.' 내가 특별히 '갈군' 기억이 없는,졸업한 지 얼마 안된 그 졸업생이 며칠 전에 학교에 놀러왔다.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김에 나는 그런 글을 올린 연유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졸업생은 자료실의 책이 많이 분실되는 데 대해 책임자로서 관리를 잘하라는 내 말과 졸업생들에게 연락을 해서라도 분실한 책을 찾아보라는 내 말을 '갈굼'으로 인식,원한을 품어왔던 모양이었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했었다면 훨씬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지만 한 학기에 고작 45만원의 장학금을 받으며 문연자 사서의 일을 하는 건 학우들을 위한 희생정신 때문인데 그런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겠느냐고 할 때,그 졸업생의 표정과 어조에는 원한이 가득했다. 나는 자료실에 열 번을 가면 아홉 번은 네가 없었다. 책이 계속 없어지고 있어 관리를 철저히 하고 분실한 책을 찾으라고 한 내 말이 잘못됐느냐고 반문했으나 졸업생의 눈빛은 여전했다. 그 졸업생은 나와 대화를 한 이후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글을 지우지 않고 있다. 이 졸업생뿐만이 아니라 요즘 대학생들은 꾸지람을 하면 이런 식으로 보복을 한다. 나쁜 학점을 받으면 자신의 불성실을 탓하지 않고 교수를 원망한다. '교수 평가'를 통해 역공을 가하기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 머리 뒤에서 비방하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 입장에서 교수의 강의가 부실했을 경우,학기 중에 학생들의 요망사항 문건이 교수에게 전달된다. 인터넷은 말의 폭력을 조장하고 유포한다. 공격 대상이 되면 반론을 펼 길이 없다. 반론을 해본들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뒤라 사후약방문에 지나지 않고 많은 경우 역효과를 낸다. 그래서 무시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 된다. 박찬호의 부활은 가히 기적적인 일이다. 객지에서 몸이 아프면 정말 서럽다. 부모형제는 이역 만리에 있는데 몸은 아프고,기자들은 줄기차게 '먹튀'라며 비난을 퍼붓는다. 그런 삼중고를 이겨내고 7승째를 올린 박찬호의 부활 역투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그가 미국에서 사면초가에 놓였을 때,고국에서 격려의 목소리가 많이 들려왔더라면 얼마나 용기 백배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