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기독교 민주당 소속 4선의원인 비스 흐블 의원. 그는 매일 아침 8시면 자전거를 타고 의회로 출근한다. 네덜란드에선 비스 흐블 의원처럼 출근길에 자가용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는 의원이 흔하다. 국회 자전거 보관소에는 자전거가 빼곡이 늘어서 있다. 빔 콕 네덜란드 총리도 짬을 내 자전거를 타고 광장에 나간다. 민심을 듣기 위해서다. 빔 콕 총리는 얼마전 아무도 모르게 영국의 농가에서 민박을 하며 여름휴가를 보낸 게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치인들의 자전거 애용과 총리의 '조용한 휴가'는 권위보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네덜란드 정치풍토를 대변해 주고 있다. 돈 안드는 깨끗한 정치도 이러한 토양 덕분에 가능하다. 얼마 전 한 장관이 대형 외제차를 굴리다가 따가운 여론에 굴복, 중형차로 바꾼 사건에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네덜란드 정치는 돈 안들이기로 유명하다. 주요정당이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를 치르는데 드는 총비용이 50억∼60억원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지역구가 없는 전국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게 한 요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처럼 '돈먹는 하마'로 통하는 지구당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 초선 의원은 "정당행사의 개최유무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한 달에 평균 5천유로(6백50만원) 정도 사용한다"고 밝혔다. 기독교 민주당의 판 모아젤 공보국장은 "네덜란드 정치는 돈 드는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며 "정치인들은 돈 쓰는 것보다는 국민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토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말했다. 쿼드 플리크 VNO(전국경제인연합회) 상임고문은 "정치인들이 정치활동을 하는데 돈이 많이 든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정치인들은 극히 제한된 액수의 후원금을 받아 비용을 충당한다"고 말했다. 저비용정치는 비단 네덜란드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보다 조금 큰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 항상 따라붙는 '부패없는 나라' '국가경쟁력 세계 수위'라는 수식어는 돈이 필요없는 정치, 경제논리가 정치논리에 우선하는 국가경영 시스템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집권 인민행동당(PAP)의 앙몽승(洪茂誠) 의원의 지구당 사무실에는 매주 월요일 저녁 7시쯤이면 지역 유권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이른바 '인민과의 대화시간'(Meet People Cession)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대다수 의원들의 일상적인 스케줄이다. "평소에 유권자들과 접촉해 애로사항을 듣고 해결해 주는데 선거운동하면서 돈을 퍼부을 이유가 있습니까" 앙몽승 의원은 싱가포르에서 정치를 하는데 돈이 필요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앙몽승 의원은 거의 후원금을 받지 않는다. 지구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나오는 수익만으로도 지구당 활동비를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구당 운영에 돈이 적게 든다는 얘기다. 로소우체이(劉紹濟) 의원은 "전체 의원의 3분의 2 가량이 자기직업에 종사하면서 의원직을 수행하고 있어 부패사건에 연루될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난양공대 박동현 경제학 교수는 '클린 싱가포르'를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실력우선주의)의 한 현상으로 진단한다. 정치인도 일류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이 정치인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호주도 저비용 구조를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호주 사우스 웨일즈주 피터 웡 상원의원은 "유권자들이 정치인의 자금 흐름을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하게 돈을 쓰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헤이그=이재창 기자 싱가포르=김병일 기자 leejc@hankyung.com ----------------------------------------------------------------- < 특별취재팀 > 김수섭 정치부장(팀장) 오춘호 김형배 이재창 홍영식 김병일 김동욱 윤기동 기자(정치부) 고광철(워싱턴) 특파원 강혜구(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