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역할은 갈수록 약화될 것이다. 앞으로는 기업의 역할이 점점 증대
되는 가운데 국경없는 경제 시대가 펼쳐지게 될 것이다"

레스터 서로 MIT 교수는 새로운 밀레니엄에서는 그동안의 상식을 깨뜨려야
경제질서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유물의 크기로 단정짓던 전통적인 부에 대한 개념도 최근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혁명이 진행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신 지식에 기반은 두 사업이 부흥하게 될 것이란 견해다.

이른바 제3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레스터 서로 교수로부터
21세기 세계경제의 모습을 들어봤다.

이글은 세계유수의 지식인들을 대상으로한 시리즈 기획 ''뉴밀레니엄 인터뷰''
의 첫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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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밀레니엄시대를 맞았다.

지난 20세기말 인류는 정보기술(IT) 혁명 등 엄청난 환경변화를 실험했다.

21세기 지구촌 경제는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내다보는가.

"새 천년의 지구촌 경제는 이전의 잣대로 잴 수 없는 엄청난 변화와 변혁을
겪을 것이다.

미소 전자공학과 컴퓨터, 로봇공학, 정보통신, 신소재, 생명공학 등 이른바
"지식기반 경제"를 이루는 신기술 산업들이 지구촌 경제의 중심축으로 급속히
떠오르면서 기존의 경제학 개념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새 시대의 새로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마이크로소프트사
창업자인 빌 게이츠 회장이다"

- 그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세계 최고의 갑부이면서도 과거 "부호"의 전통적 소유물이었던 토지
황금 석유 등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게이츠는 전통적인 개념의 자본가라고 할 수도 없다.

공장이나 생산설비 등이 그에게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지식 프로세스"를
장악한 덕분이다.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이미 지식기반 산업으로 옮겨졌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인물이 바로 게이츠인 셈이다.

이런 변혁을 일컬어 나는 "제3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른다.

증기 기관과 전기의 출현이 각각 1,2차 산업혁명을 촉발하면서 지구촌
경제에 엄청난 변혁을 초래했지만 지식기반 산업에 의한 제3차 산업 혁명은
그 이상으로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바꿔 나가고 있다"

-탈국경 경제시대에 접어들게 되면 정부, 즉 국가의 역할과 위상은 어떤
모습을 띨 것으로 전망하는가.

"경제의 글로벌화는 국가의 역할과 위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국가는 과거 자국의 영토 내에서 벌어지는 일체의 경제 행위를 규제하고
관장하는 주체였지만, 지구촌 시대에는 해외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한 플랫폼
을 구축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플랫폼 구축과 관련해 정부가 할 일은 많다.

개도국의 경우에는 국제경쟁에 필요한 인력과 산업 인프라, 시장 구조 등을
양성 내지 정비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선진국은 기술 진보를 위한 기초 분야의 연구 개발을 지원하는 등의 일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된다.

1997년에 아시아를 강타했던 외환위기는 정부의 위상이 얼마나 약화되고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 주었다.

하루에 1조8천억달러 이상이 움직이는 세계 자본시장은 많은 나라들을
무력화시켰다"

-그래도 미국정부는 아직 튼튼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글로벌 자본의 위력은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 정부까지도 굴복시킨다.

1998년 9월 미국 금융당국이 롱 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라는 헤지
펀드에 대규모 구제금융을 제공한 것이 단적인 예다.

LTCM은 미국 금융회사 등으로부터 1조달러가 넘는 자금을 차입한 상태였다.

이런 헤지펀드가 그냥 도산하면 그 여파로 미국 금융시장 전체가 송두리째
와해될 판이었다.

LTCM은 이처럼 미국 금융시장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카리브해의 그랜드 케이만 군도라는 작은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미 금융당국은 LTCM을 사전에 감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었다"

-급격히 변화하는 경제환경은 기업과 정부간에 새로운 관계의 정립을 요구
하고 있다.

향후 기업과 정부, 정부와 기업의 관계는 어떤 양상을 띨 것으로 보는가.

"정부와 기업간 힘의 저울추는 갈수록 기업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 까닭은 간단하다.

양자간의 관계에 있어서 기업보다는 국가가 더 아쉬운 쪽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기술력과 시장, 하청 네트워크 등을 구축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은
더 이상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이들 기업에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인텔의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보조금과 공장 부지 조성, 세금
환급 등의 형식으로 6억달러를 갖다 바쳤다.

브라질은 포드의 자동차 조립 공장을 끌어들이는 조건으로 7억달러어치를
지원키로 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앨라배마주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주민들이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의 공장을 각각 유치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혈세를 내야 했다.

영국과 노르웨이 독일 네덜란드 등은 최근 해운회사들에 부과하는 세율을
인하했다.

이들 회사가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다 세율이 낮은 외국으로 국적을
바꾸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전자상거래의 출현은 각국 정부의 입장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소프트웨어, 음악, 영화 등 온라인으로 곧바로 거래가 이뤄지는 상행위에
대해 판매세나 부가가치세 등을 부과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옛소련 체제의 붕괴는 지구촌의 세계화(글로벌라이제이션)와 함께 지역화
(리저널라이제이션.국가분립)를 촉발시켰다.

특히 이같은 경향은 제3세계는 물론 선진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미 말했다시피 지구촌 시대를 맞아 각국간의 경제적 상호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정부의 역할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동아시아 및 중남미 국가들은 외환위기 당시 경제분야에 관한한 국제통화
기금(IMF)에 정부 역할을 맡겨야 했다.

지구촌 시대에는 과거와 같은 "규모의 경제" 이론도 설 자리가 약해진다.

싱가포르의 경우에서 확인되듯 나라의 덩치가 왜소하더라도 얼마든지
국민들에게 고도의 생활 수준을 안겨줄 수 있는 세상이다.

현재 한 나라로 묶여있는 지역이 여러 개의 나라로 분화되더라도 경제적
번영이 이뤄질 수 있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최근 들어 지구촌 곳곳에서 국가의 분열 현상이 줄을 잇고 있다.

옛소련은 이미 15개의 나라로 분해됐다.

옛 유고슬라비아는 현재 5개 나라로 쪼개진 가운데,2개 국가가 더 독립할
가능성이 있다.

영국은 스코틀랜드에 준독립을 허용했다.

스페인에서는 바스크와 카탈로냐 지방이 분리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브르통과 코르시카 지역에서 자치를 요구하는 움직임으로
소란하다이탈리아에서는 북부지방 사람들이 남부지역을 튕겨내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캐나다는 퀘벡주가 언제 분리 독립을 선언할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제 3세계에서는 인도네시아의 분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수천개의 독립적인 섬들로 이루어져 있는 다인종 국가다.

그럼에도 이들 섬이 한 나라가 된 것은 공히 네덜란드에 의해 정복되고
지배됐다는 이유 때문이다.

2차대전 후에는 두 명의 군사 독재자들에 의해 통치됐다.

그러나 최근의 경제적 와해는 정치적 분열을 수반했다.

이전처럼 인도네시아를 하나로 결속시킬 만한 존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유럽연합(EU)은 유로화 출범과 함께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를 양분할 대체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EU의 미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유로화 출범으로 자체적인 통화를 갖지 못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11개 나라들은 독립적인 국가라고 볼 수 없다.

이들은 이제 사실상 한 개의 나라로 합쳐진 것이나 다름없다.

EU 회원국 중 통화동맹에 가담하지 않은 영국 스웨덴 등 나머지 4개국도
결국은 단일 통화인 "유로랜드"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이들 국가는 통화뿐 아니라 재정 정책과 조세 분야까지 단일화함으로써
실질적인 통일 국가를 이룰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흔히들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일컫는다.

경제 정치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문화의 상관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급속한 변혁의 물결이 일면서 "문화"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

전통적 개념의 문화란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 세대에게 자신들의 신념과
행동 양식을 전수해 주는 것" 정도로 정의됐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도덕을 지향하는 가치체계로서의 문화보다는
이익을 중시하는 경제 개념의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지식기반 경제가 중심축을 이루는 지구촌 시대에는 개인과 기업, 국가를
막론하고 모든 주체들이 과거의 전통적 행동 양식을 바꾸도록 강요받고 있다.

세상은 정말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변해 가고 있다"

< 대담=이학영 뉴욕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