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부 < 한국신용정보 대표이사 >

요즈음 제조업 가동률이 80%대에 이른다.

각종 경기선행지수들은 일제히 파란 신호등처럼 반짝인다.

많은 기업들이 한동안 제쳐놓고 있던 설비투자계획 수립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아직도 남아있는 실업과 구조조정의 그림자 속에서 흡사 잔설을 뚫고
돋아나는 새싹처럼 설비투자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움을 떨치기 어렵다.

이제는 방만한 차입과 과잉투자 및 과잉다각화로 대변되는 과거의 투자모델
과는 차별화된 위기 이후의 성숙을 반영하는 새로운 투자모델이 확립되기를
기대해 본다.

투자활동, 특히 사업다각화에 대해 신용평가를 하는 측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지킨다.

이 과정에서 사업다각화를 통해 경쟁지위를 높이려는 기업가의 도전을
오로지 위험의 관점에서만 사전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GE가 에디슨 전구에만 매달렸다면 그 이름은 이미 잊혀졌을 것이다.

오늘날 네트워크 솔루션 회사를 자칭하는 IBM은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지
않고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한때 "몰락한 제왕"이라 불리던 IBM이 다시 강력하게 떠오르고 있지
않은가.

기업은 끊임 없이 변신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사업다각화는 기업의 가장 중요한 생존전략의 하나다.

그러나 사업다각화에는 크든 작든 부담이 따른다.

기업인들은 투자재원을 마련하고 새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이겨내야 한다.

새로운 경쟁환경을 만드는 것은 기업가의 운명이다.

이 환경에서 혁신 (innovation) 을 이루는 것은 기업가의 보람이기도 하다.

사업다각화에도 원칙과 적정선이 있다.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다소 무거운 바벨을 들어야 하지만, 너무 무거운
바벨은 몸을 상하게 한다.

무리한 사업다각화는 기업가와 기업은 물론 다수의 이해관계자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된다.

보통 투자에 대한 평가는 수익비용효과를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신용평가
에서는 투자활동에 필요한 재원의 조달가능성에 대한 분석이 우선시된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투자효과에 대한 검증이 시도되기도 전에 사업규모
확대에 따른 자금부족으로 도산한다.

사업다각화에 의한 사업범위의 확대로 기업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도전과 위험에 노출된다.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기존에 구축한 사업역량의 지원없이 다각화에 성공
하는 사례도 없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핵심역량 (core competence)의
적절한 활용이 성공의 관건이 된다.

이에 따라 핵심역량의 연관성은 사업다각화에 대한 신용평가의 첫번째
고려사항이 된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핵심역량이 신규 사업의 핵심성공요인에 부합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사업다각화 과정은 단순히 기존 핵심역량의 연장뿐만 아니라 새로운 핵심
역량의 발굴과 육성도 포함한다.

핵심역량은 항구적으로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육성할 수도 있으며 범용화
하거나 제약조건으로 돌변하기도 하는 동태적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성공적인 다각화는 핵심역량을 개발해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
되어야 한다.

핵심역량의 측면에서 본다면 대체로 연관 다각화가 위험이 작고 성공확률도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연관 다각화는 다른 필수 고려 요인인 위험의 분산 측면에서 한계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

사업위험 요소가 유사한 연관산업으로의 다각화는 성과의 안정성을 높이기
어렵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사업다각화는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유효한 수단이다.

그런데도 곧잘 선단식 또는 백화점식 경영으로 비난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경쟁제한과 내부시장의 비효율로 자원의 적절한 배분을 저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기업이 모기업을 바탕으로 기업의 계속성을
유지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경쟁을 왜곡하고 고객의 선택권을 제약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멀쩡한 주력사업에 부담마저 안기는 상태가 지속되지 않겠는가.

이럴 경우 당연히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결론을 찾아보자.

기업의 사업다각화를 사업기반 강화와 위험의 관리과정이라고 볼 때 신용
평가의 책무는 이를 제대로 파악하여 투자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하고 효율적인 자원배분에 기여하는 것이 위기의
아픔을 통해 성숙을 지향하는 신용평가의 과제이기도 하다.

< cbkim@nic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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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경영학과
<>한일은행 비서실장, 런던지점장, 국제담당 상무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