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 언론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중 하나가 "랑"이다.

늑대 또는 이리를 통칭하는 단어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협상에 적극 나서면서 이 단어는 WTO,
더 구체적으로는 외국자본.기업을 상징하는 단어로 등장했다.

그들은 WTO가입을 두고 "늑대가 중국에 들어온다(랑래료)"고 표현한다.

늑대에 대한 중국언론의 시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바뀌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가 나빠 연내 WTO가입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을 때 늑대는
무서운 존재였다.

지난 9월 초 금융전문 일간지인 금융시보는 "WTO가입은 곧 외국의 늑대를
불러들이는 꼴"이라고 표현했다.

산업여건이 튼튼하지 못한 상태에서 WTO에 가입하면 늑대들에게 잡혀먹을
것이라는 식이었다.

이 기사 행간에서 미국측 협상 태도에 대한 중국의 불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이 WTO가입 협상을 타결한 후 늑대는 "극복의 대상"으로
변했다.

통신사인 중신사는 얼마전 "늑대를 겁낼 필요가 없다"며 "우리가 만일
호랑이로 변한다면 늑대는 오히려 꼬리를 내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통신사는 이어 "WTO가입으로 중국은 얻는 게 더 많다"며 늑대 걱정을
일축했다.

WTO가입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나타나는 중국 언론의 "늑대관"은 "그들과 함께 춤을 춰야 한다
(여랑공무)"라는 것이다.

늑대는 이제 불안의 대상, 반드시 싸워 이겨야할 대상에서 벗어나 함께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모습을 바꿨다.

유통분야 전문지인 중국상보는 "어떻게 늑대와 함께 춤을 춰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1면 머릿기사를 싣기도 했다.

이 신문은 "늑대가 왔다고 크게 소리치지 말고 늑대와 함께 춤출 수 있는
능력을 기르자"고 강조했다.

지금은 차분하게 WTO체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다시 짜야한다는 게
이 기사의 결론이다.

중국인들의 WTO에 대한 시각이 그만큼 유연해졌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언론들은 요즘 WTO가입이 중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분석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WTO에 대한 배타성이 보이지 않는다.

WTO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내일을 대비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중국인들은 늑대와 동일한 자격으로 춤을 추기 위해 지금 무도기법 연구에
한창이다.

<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