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재신 < 단국대 교수 / 경제학 >

세기말의 협상은 결렬됐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시애틀 각료회담은 닷새동안의 협상에도 불구하고
국가간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이에 따라 뉴라운드출범은 꽤 오래 지체될 것으로 보인다.

시애틀 회담에서 농업과 서비스는 이미 설정된 의제였다.

이 가운데 서비스는 상대적으로 큰 쟁점이 부각되지 않았다.

반면 농산물 무역자유화는 국가간 이해 대립이 가장 심한 분야였다.

협상 도중 유럽연합(EU)의 막대한 농업수출보조는 많은 회원국들로부터
비난의 표적이 됐다.

미국과 다수의 개발도상국들은 농업수출보조를 점진적으로 철폐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면 EU엔 사실상 협상 참패를 의미하는 것이다.

EU로서는 그렇게 합의하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합의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농업국내보조와 시장접근 분야에서 한국 일본 EU 등 수입국들은 보조금과
관세의 "점진적"감축을 주장했다.

반면 농수산수출국들은 "상당한"감축을 고집했다.

농산물무역관련 협상에서는 유전자변형 농산물(GMO)의 문제가 또한 중요하게
취급됐다.

한국도 2001년 중반부터는 EU나 일본 등과 마찬가지로 GMO 표시부착제가
실시될 예정이다.

이 제도는 통상분쟁거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농산물수입국들과 미국은 이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대해 큰 의견
차이를 보였다.

공산품의 관세인하는 한국과 같은 공산품수출국들의 입장에서 중요한 협상
거리였다.

우리나라의 공산품실행관세율은 우루과이라운드까지 여러 차례의 다자간
무역협상을 거치며 이미 상당히 낮은 상태가 되어 있다.

공산품관세의 대폭 인하가 각료 선언에 반영되는 경우 수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서 실보다 득이 더 클 것으로 기대됐다.

우리나라는 미국 등 선진국으로부터 공산품수출에 대한 반덤핑관세를
빈번히 맞아 왔다.

따라서 일본이나 많은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함께 각료회담에서 반덤핑협정의
개정문제를 다루고자 했다.

그러나 미국의 극력 반대에 따라 합의에 실패했다.

새로운 의제들로서 투자 경쟁 환경과 노동문제가 각료회담에서 언급되어졌다

이중 경쟁과 환경문제는 주요 논점에서 제외됐다.

반면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임박한 시점에다 노동조합 등 미국 비정부기구
(NGO)들의 요구가 더해지면서 노동과 무역간 연계 문제가 한달전부터
급부상했다.

이는 각료회담에서 농업보조금과 더불어 가장 격론이 벌어진 분야가 됐다.

각료회담시 시애틀에서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지지세력이었던 미국노동조합
의 강한 압력이 행해졌다.

인도를 필두로 한 개발도상국들은 이에 대해 극력 반대했다.

이들은 이의 연계 움직임이 저임에 의해 노동집약적 상품을 수출하는
개발도상국들의 경쟁력을 박탈하려는 선진국들의 위장된 보호주의로 본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소극적 반대의 입장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핵심적 노동기준과 무역의 연계는 인권증진이라는 보편적 가치측면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수출과 해외투자유입의 측면에서 불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시애틀 각료회담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세계적인 무역자유화의
움직임은 당분간 정체되는 듯하다.

WTO체제에서 무역자유화는 전진하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WTO는 내년초 뉴라운드의 판짜기를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시애틀각료회담의 결렬은 일견 미국이 패배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주목할 것은 우루과이라운드의 기존 내용에 따라 내년 1월부터 농업 및
서비스부문의 추가 개방협상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두 부문에 국한된 협상은 미국의 애초 주장이었다.

따라서 실리의 측면에서도 미국이 협상에서 패배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반덤핑규정개정이 추진되지 못함에 따라 한국은 기대했던 공산품 관세인하
에선 얻은 게 없다.

그러면서 연초부터 농업추가개방협상에 나서야 하게 됐다.

시애틀 논의 결과 농업의 경우 어느정도의 국내보조금 감축과 관세인하가
예상된다.

그러나 구체적인 분야에 대한 실무적 협상결과에 따라 국내 농업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초부터 협상을 위해 일단은 농업과 서비스부문의 협상방안을 세부적인
사안별로 준비해야 한다.

아울러 내년도 추가협상에 대비해 시애틀에서 큰 논란거리였던 반덤핑규정,
그리고 노동과 무역간의 연계 문제 등에 대하여도 시나리오 별로 적극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mahsong@mail.hite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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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박사
<>WTO 무역정책분석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