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유교의 여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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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나 절의 신도는 여자가 남자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도 교리체계는 흔히 여성을 깎아내리고 부정하기 일쑤다.
또 종교조직의 관리체계는 거의 남자가 독점하고 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교사를 보면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유교 등 세계종교는 가부장제적
역사전통을 지니고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수동적이고 열등한 존재며 동시에 파괴적인 성적 에너지의
소유자로서 위험한 존재로 간주된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돼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경전에도
기록돼 있다.
하지만 오늘날 각 종교는 자기들의 종교가 성차별을 하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종교란 원래 어느 정도는 남녀평등과 같은 보편적 인간가치를 추구하고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최대의 찬사도 상비해 놓고 있다.
예를 들어 가톨릭의 마리아신앙은 여성에 대한 종교적 이상화가 낳은
산물이다.
심지어 여성이 발붙일 수 조차 없어 보이는 유교의 "주역" 64괘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괘라는 "지천태" 괘는 양 위에 음이 자리할 만큼 음의 조화가
중시된다.
결국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종교내에는 아직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이런 이중적 사고가 전통적으로 끈끈하게 이어져오고 있는 셈이다.
남성이 영혼 이성 생명이라면 여성은 육체 감성 평신도 죽음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다.
그러나 오늘날 페미니즘을 비롯한 인문사회과학은 이런 이분법이 철저하게
왜곡된 것이고 전혀 근거없는 것임을 하나하나 밝혀내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최근 "여성은 남성을 돕는 존재"라는 성경의 기술을
"여성이 남성의 동반자"라는 뜻이라고 해석하면서 완전한 남녀평등을
강조했다는 소식이다.
또 오늘 서울 성균관대에서는 유교학회가 사상 최초로 여성학자들을 초대해
유교와 페미니즘의 화해를 시도하는 학술대회를 갖는다고 한다.
페미니즘의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종교가 변하려는 적극적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흔히 종교는 절대진리라고 해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회환경변화에 대응하고 내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살아있는 종교다.
"유교 여성관"의 획기적 변화를 기대하면 지나친 욕심일지 모르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7일자 ).
그런데도 교리체계는 흔히 여성을 깎아내리고 부정하기 일쑤다.
또 종교조직의 관리체계는 거의 남자가 독점하고 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교사를 보면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유교 등 세계종교는 가부장제적
역사전통을 지니고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수동적이고 열등한 존재며 동시에 파괴적인 성적 에너지의
소유자로서 위험한 존재로 간주된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돼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경전에도
기록돼 있다.
하지만 오늘날 각 종교는 자기들의 종교가 성차별을 하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종교란 원래 어느 정도는 남녀평등과 같은 보편적 인간가치를 추구하고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최대의 찬사도 상비해 놓고 있다.
예를 들어 가톨릭의 마리아신앙은 여성에 대한 종교적 이상화가 낳은
산물이다.
심지어 여성이 발붙일 수 조차 없어 보이는 유교의 "주역" 64괘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괘라는 "지천태" 괘는 양 위에 음이 자리할 만큼 음의 조화가
중시된다.
결국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종교내에는 아직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이런 이중적 사고가 전통적으로 끈끈하게 이어져오고 있는 셈이다.
남성이 영혼 이성 생명이라면 여성은 육체 감성 평신도 죽음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다.
그러나 오늘날 페미니즘을 비롯한 인문사회과학은 이런 이분법이 철저하게
왜곡된 것이고 전혀 근거없는 것임을 하나하나 밝혀내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최근 "여성은 남성을 돕는 존재"라는 성경의 기술을
"여성이 남성의 동반자"라는 뜻이라고 해석하면서 완전한 남녀평등을
강조했다는 소식이다.
또 오늘 서울 성균관대에서는 유교학회가 사상 최초로 여성학자들을 초대해
유교와 페미니즘의 화해를 시도하는 학술대회를 갖는다고 한다.
페미니즘의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종교가 변하려는 적극적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흔히 종교는 절대진리라고 해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회환경변화에 대응하고 내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살아있는 종교다.
"유교 여성관"의 획기적 변화를 기대하면 지나친 욕심일지 모르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