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하대당하는 현대판 '공상' .. 고승철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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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철 < 산업2부장 >
조선 막사발, 그것은 보물이었다.
임진왜란 무렵 일본에서...
조선 땅에서는 서민들이 국그릇 밥그릇 술잔으로나 쓰던 싸구려 물건이었는
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막사발을 "환상의 도자기"라 극찬하면서 이것으로
다도를 즐겼다.
일본 땅에서는 "이토자완"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불렸다.
다이묘(영주)들은 조선도공을 다투어 붙잡아갔다.
막사발을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도공들은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조선땅에서는 흙투성이 몸으로 평생 천민으로 지내던 그들이었다.
그들은 실명을 붙인 자신만의 도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마음껏 예술혼을 불태우며 명품을 빚어냈다.
4백여년전 남원에서 끌려간 한 도공은 10여대를 이어오면서 "심수관"이란
이름을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17세기에 조선 도공들과 그 후예들이 만든 일본자기는 세계 도자기의 디자인
을 선도할 정도였다.
당시 조선은 명분을 중시하는 주자학사회였다.
사농공상 서열은 엄격했다.
농민들은 가렴주구에 시달렸다.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자기몫은 거의 챙기지 못했다.
구한말에 이 땅을 방문한 영국인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의
기행문을 보자.
"한국인은 게을러 보였다. 나는 진정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그렇지 않다. 그들은 열심히 일해도 재산을 보호받지 못하니 그런
것이었다. 그들은 최소한의 음식과 옷 이외에 자신이 가진 것은 탐욕스럽고
부패한 관리들에게 빼앗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1백여년이 지난 대한민국, 상황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중소기업인 J씨의 체험담을 들어보자.
"사업이 번창하니 연중 수시로 세무조사를 받았다. 지방국세청 재산세과에
내 파일이 따로 보관돼 있다고 한다. 새로 부임한 K검사장은 환경공해 단속을
엄명했다. 우리 회사 직원 출퇴근버스가 과다 매연으로 걸렸다. 검찰은 차량
관리 책임을 맡고 있던 상무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직원복지를 위한
출퇴근용 버스가 매연을 뿜었다고 단번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나라는 아마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이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때부터
나는 사회활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럭저럭 준조세 성격의 돈도 많이
냈고 자진해서 성금도 적지 않게 기탁했다. 현실은 사업가가 경영에만 몰두
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어느 벤처기업인의 체험 이야기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는 세계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열정으로 온몸을 던졌다고 한다.
덕분에 잇달아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돈도 꽤 벌었다.
그럴 즈음 세무조사반이 들이닥쳤다.
한창 또다른 기술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라 세무조사에 신경을 쓰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었다.
분초를 다투는 경쟁에서 근 한두달을 허송하고 만 것이다.
이보다 더욱 분통이 터지는 것은 인격적인 모독을 당한 일이었다.
기업인 가운데 내년 총선을 걱정하는 사람이 적잖다.
후원금을 받기 위해 찾아올 후보들 때문이다.
"도대체 정부는 뭐하는 거냐"
무슨 일이 터지면 시민들이 열을 올리며 흔히 내뱉는 말이다.
정부가 나서서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아서 울화가
치민다는 것이다.
정부가 도깨비 방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의 부작용이
무엇인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를 것이다.
국가권력이 나서서 큰 정책부터 시시콜콜한 다툼까지 다 해결하려면 공평
무사하고 전지전능한 정부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당위에 불과하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부라는 조직에 몸담아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아닌가.
이들 모두가 현인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때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권력을 악용하기도 하는
이기적 인간이다.
이들은 견제 당하지 않으면 멋대로 행동한다.
이들의 전횡을 축소해온 것이 바로 민주주의 역사가 아닌가.
생산의 주인공인 기업에 몸담은 사람들이 하대당하는 사회분위기에서
경제가 잘 돌아갈 수 있을까.
엘리트들이 사 신분에 끼어들기를 열망하는 사회라면 조선시대와 뭐가 다를
바 있겠는가.
현대판 "사 나으리"들은 언필칭 "정의" "형평" "개선"이라는 화려한 간판을
내건다.
조선시대 지배계층보다 한결 지능적이다.
경제가 활기를 가지려면 정부의 무슨 무슨 지원책이 없어도 좋다.
"나으리"들의 불필요한 간섭이 줄어드는 것이 낫다.
조선 도공을 대한 태도의 차이, 그것이 오늘날 한일 경제력 격차가 아닐까.
< chee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1일자 ).
조선 막사발, 그것은 보물이었다.
임진왜란 무렵 일본에서...
조선 땅에서는 서민들이 국그릇 밥그릇 술잔으로나 쓰던 싸구려 물건이었는
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막사발을 "환상의 도자기"라 극찬하면서 이것으로
다도를 즐겼다.
일본 땅에서는 "이토자완"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불렸다.
다이묘(영주)들은 조선도공을 다투어 붙잡아갔다.
막사발을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도공들은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조선땅에서는 흙투성이 몸으로 평생 천민으로 지내던 그들이었다.
그들은 실명을 붙인 자신만의 도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마음껏 예술혼을 불태우며 명품을 빚어냈다.
4백여년전 남원에서 끌려간 한 도공은 10여대를 이어오면서 "심수관"이란
이름을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17세기에 조선 도공들과 그 후예들이 만든 일본자기는 세계 도자기의 디자인
을 선도할 정도였다.
당시 조선은 명분을 중시하는 주자학사회였다.
사농공상 서열은 엄격했다.
농민들은 가렴주구에 시달렸다.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자기몫은 거의 챙기지 못했다.
구한말에 이 땅을 방문한 영국인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의
기행문을 보자.
"한국인은 게을러 보였다. 나는 진정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그렇지 않다. 그들은 열심히 일해도 재산을 보호받지 못하니 그런
것이었다. 그들은 최소한의 음식과 옷 이외에 자신이 가진 것은 탐욕스럽고
부패한 관리들에게 빼앗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1백여년이 지난 대한민국, 상황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중소기업인 J씨의 체험담을 들어보자.
"사업이 번창하니 연중 수시로 세무조사를 받았다. 지방국세청 재산세과에
내 파일이 따로 보관돼 있다고 한다. 새로 부임한 K검사장은 환경공해 단속을
엄명했다. 우리 회사 직원 출퇴근버스가 과다 매연으로 걸렸다. 검찰은 차량
관리 책임을 맡고 있던 상무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직원복지를 위한
출퇴근용 버스가 매연을 뿜었다고 단번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나라는 아마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이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때부터
나는 사회활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럭저럭 준조세 성격의 돈도 많이
냈고 자진해서 성금도 적지 않게 기탁했다. 현실은 사업가가 경영에만 몰두
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어느 벤처기업인의 체험 이야기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는 세계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열정으로 온몸을 던졌다고 한다.
덕분에 잇달아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돈도 꽤 벌었다.
그럴 즈음 세무조사반이 들이닥쳤다.
한창 또다른 기술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라 세무조사에 신경을 쓰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었다.
분초를 다투는 경쟁에서 근 한두달을 허송하고 만 것이다.
이보다 더욱 분통이 터지는 것은 인격적인 모독을 당한 일이었다.
기업인 가운데 내년 총선을 걱정하는 사람이 적잖다.
후원금을 받기 위해 찾아올 후보들 때문이다.
"도대체 정부는 뭐하는 거냐"
무슨 일이 터지면 시민들이 열을 올리며 흔히 내뱉는 말이다.
정부가 나서서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아서 울화가
치민다는 것이다.
정부가 도깨비 방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의 부작용이
무엇인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를 것이다.
국가권력이 나서서 큰 정책부터 시시콜콜한 다툼까지 다 해결하려면 공평
무사하고 전지전능한 정부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당위에 불과하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부라는 조직에 몸담아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아닌가.
이들 모두가 현인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때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권력을 악용하기도 하는
이기적 인간이다.
이들은 견제 당하지 않으면 멋대로 행동한다.
이들의 전횡을 축소해온 것이 바로 민주주의 역사가 아닌가.
생산의 주인공인 기업에 몸담은 사람들이 하대당하는 사회분위기에서
경제가 잘 돌아갈 수 있을까.
엘리트들이 사 신분에 끼어들기를 열망하는 사회라면 조선시대와 뭐가 다를
바 있겠는가.
현대판 "사 나으리"들은 언필칭 "정의" "형평" "개선"이라는 화려한 간판을
내건다.
조선시대 지배계층보다 한결 지능적이다.
경제가 활기를 가지려면 정부의 무슨 무슨 지원책이 없어도 좋다.
"나으리"들의 불필요한 간섭이 줄어드는 것이 낫다.
조선 도공을 대한 태도의 차이, 그것이 오늘날 한일 경제력 격차가 아닐까.
< chee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