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멀티미디어를 전공하고 있는 권보연(25)씨는 요즘 고민에
빠져 있다.

"집에서 그래픽 작업할 때 쓸 소프트웨어를 사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판단을 어렵게 하는 것은 가격이다.

평소 정품 소프트웨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 웬만한 건 돈을 주고 장만
했지만 그래픽 소프트웨어는 얘기가 다르다.

그녀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소프트웨어는 매크로미디어사
(www.macromedia.com)의 디렉터, 어도비사(www.adobe.com)의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등이다.

소비자가격은 한글 일러스트레이터 8.0이 85만1천4백원, 포토샵 5.0은
1백42만3천4백원, MM 디렉터는 1백50만원이다.

세가지만 갖춰도 4백만원 정도다.

학생으로서 엄두내기 어려운 가격이다.

학생들에게 특별히 싸게 판매하는 아카데미판도 비싼건 마찬가지다.

게다가 매년 1~2회 출시되는 업그레이드판을 쓰려면 1년에 최소한 1백만원
이상 꼬박꼬박 지출해야 한다.

학부생의 경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소프트웨어에만 적어도 8백만원
이상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픽전문가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상황은 비슷하다.

보통 사람이 컴퓨터를 쓰려면 워드프로세서, 백신프로그램, 압축을 푸는
윈집 등이 필요하다.

집에서 업무를 보려면 적어도 아래아한글과 MS의 오피스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

가격은 한글오피스 97이 51만3천7백원.

오피스에 들어 있는 엑셀 파워포인터 등을 따로 구입하면 각각 38만9천4백원
과 47만3천원이다.

워드프로세서인 MS 워드는 12만3천2백원이다.

이밖에 한글워드 2000은 9만9천원, 백신프로그램인 V3 프로는 3만8천5백원,
윈집 7만7천원이다.

여기에 27만5천원이나 하는 한글 윈도 98까지 합하면 1백만원을 훌쩍 넘어
버린다.

모니터를 포함해 보통 조립컴퓨터를 한대 사는 가격이 1백만원 안팎이라고
할 때 컴퓨터를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준을 유지하려면 2백만원이
들어야 하는 셈이다.

물론 이것은 최소한의 비용이다.

간단한 그래픽 유틸리티인 ACDSee 32가 11만원, 통신프로그램인 이야기도
11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한두개의 프로그램을 더 설치하더라도 2백만원을
훨씬 웃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사용자들이 용산이나 인터넷에서 판매되는 불법CD의
유혹에 빠지는건 당연하다.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이처럼 값이 비싼 이유를 제품개발에 들어간 비용을
회수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설명한다.

아직 정품 소프트웨어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낮아 가격을 대폭 낮추더라도
실제 구매가 적어 값을 비싸게 매길 수밖에 없다는 논리도 편다.

그러나 개인사용자들은 소프트웨어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입장이다.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오히려 불법 소프트웨어 유통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회사나 학교가 아닌 집에서 개인이 비싼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사용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사용자들은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자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대상을 진지하게
고려해 현실적인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불법 CD 구입이 소프트웨어의 가격을 올리고, 높아진 소프트웨어
가격은 사용자들을 불법 CD로 내모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소프트웨어 회사 운영과 개인사용자의 주머니 사정이라는 거꾸로 도는 두
바퀴를 힘을 합해 앞으로 굴리는 지혜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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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