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실 회계감사의 책임 문제 ]

김정호 < 경제학 박사 >

회계법인이 기업의 분식결산을 적발하지 못해 금융기관이 거액의 대출을
회수하지 못하게 될 경우 회계법인에 일부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은 두 가지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먼저 일종의 사기사건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대출자는 회사의 장부가치를 믿고 돈을 빌려줬는데그 가치가 실제보다 더
부풀려져 있었다.

고의로 그랬다면 분명 사기행위이다.

회계법인이 그런 사실을 알고도 적정의견을 냈다면 일종의 사기공모에
해당한다.

당연히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한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된 회계법인은 사기에 가담하지 않은게 분명하다.

단지 사기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두번째의 접근법은 이 사건을 일종의 강제 보증으로 보는 것이다.

만약 감사대상회사에 부도가 안 났거나 또는 부도가 났더라도 해당 금융기관
의 채권 우선순위가 높아 빚을 회수할 수 있었다면 회계법인의 책임문제는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채무자를 위해 연대보증을 서지 않았으면 채권자의 채권 회수는
채무자의 변제능력 범위 내에서만 인정된다.

부도가 났어도 채무자가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면 안타깝지만 채권을
회수할 수 없는 것은 시장의 당연한 원리다.

보증인이 있을 때만 채무자 이외의 재산에 대해서도 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앞으로 감사를 맡는 회계법인은 감사의 대상인 회사에 대해
강제로 빚 보증까지 서게 되는 셈이다.

그게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하는 독자들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보증 부담을 지게 되는 회계법인들이 서비스 가격을 올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돈을 빌리는 기업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출에 따른 비용이 높아지는 셈이다.

그 결과 대출에 대한 수요는 줄 것이고, 높아진 비용의 상당부분을
금융기관들로 떠안게 된다.

결국 대출자들이 강제로 부도위험에 대한 보험을 드는 셈이 되는 것이다.

보험을 들고 안들고는 대출자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더 낫다.

이번 판결이 선례로 굳어진다면 대출자들은 그런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 자유기업센터 법경제실장 www.cfe.or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