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8일 세계적 컨설팅업체인 아서D리틀(ADL)사의 한국담당자가
다급히 박홍우(48) 변호사를 찾았다.

반도체 통합법인의 운영주체를 선정하기 위해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평가업무를 맡았던 ADL사가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LG는 현대전자가 운영주체가 돼야 한다는 조사보고서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ADL사를 상대로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초강수로 나왔다.

합병 불발시 모든 책임은 ADL사에 있다며 국내법원은 물론 ADL사의 본사가
있는 미국원에도 소송을 내겠다고 연일 공격을 퍼부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ADL사의 "SOS"를 받은 박 변호사는 조사보고서의
문구 하나 하나를 수차례 읽어보고 조사방법과 절차에 대해서도 치밀하게
검토했다.

소송 전단계인 예비조사단계였다.

1주일간의 작업끝에 LG를 상대로 맞소송을 내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의견서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LG가 소장을 제기하면 바로 맞소송에 들어간다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다행이 시나리오는 현실로 옮겨지지 않았다.

빅딜을 밀어붙였던 청와대쪽에서 중재에 나선 것이다.

하마터면 반도체 빅딜이 국제 소송이라는 "참사"로 이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ADL사가 이처럼 긴박한 상황에서 대형 로펌이 아닌 박 변호사를 찾은 이유는
해박한 법률지식과 뛰어난 사건처리능력을 평소 눈여겨 보아 왔기 때문.

박 변호사는 수더분한 인상과는 달리 빈틈없는 이론과 날카로운 변론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대형 로펌을 상대로 한 "A급 매치"에서도 90% 가까운 승률을 올리고 있다.

소송은 "경제적 실익을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압박수단일 뿐"이라는게
박 변호사의 지론이다.

최단기간내에 분쟁을 고객에게 유리하게 끝낼 수 있는 법적 수단을 찾는
것이 변호사의 일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승소 판결문을 받아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

이는 박 변호사가 가처분신청을 통해 조기에 분쟁을 해결하는 업무스타일
에서 드러난다.

지난해 영국의 스포츠의류 메이커인 "슬레진저"의 상표권 침해사건이나
국내 아이스크림업체간 상표도용 다툼, 국내 프랜차이즈 운영회사와 대리점간
분쟁 등이 모두 가처분을 통해 해결한 사건들이다.

박 변호사는 지난 72년 서울법대 2학년 재학시절 사법시험에 합격한 수재파.

미국 로스쿨 유학시절 발표한 논문 "컴퓨터소프트웨어의 리버스엔지니어링
(역발명)"은 최근 미국과 EU(유럽연합)간의 통상쟁점으로 논의될 정도다.

"승부에 집착하기보다는 의뢰인의 입장에서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변론서를 작성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게 "소송 10단"의
박 변호사가 털어놓는 승소 비결이다.

황상현 변호사(56).

소송에 관한한 개인변호사는 물론 로펌들도 가장 경계의 대상으로 삼는
요주의 인물로 손꼽힌다.

민사와 형사,행정사건에 이르기까지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일단 소송이 붙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승소판결을 받아낸다.

97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사건 항소심에서 이경훈 전 대우
회장의 금융실명제 위반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아냈다.

한보비리사건에서 뇌물수수혐의로 기소된 문정수부산시장에 대해서도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역시 무죄판결을 이끌어냈다.

미국 라스베가스의 호텔카지노를 대리해 도박빚을 갚지 않고 귀국한
국내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도박빚은 갚지 않아도 된다는 통념을 깨고
전액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대형 로펌이 독식하다시피하고 있는 기업관련 사건이나 국제송사에서도
황 변호사의 탁월한 변론능력은 드러난다.

SK증권과 JP모건과의 파생금융상품으로 인한 투자손실을 둘러싼 법정공방,
한국에서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시발점이 된 한화종금 경영권 분쟁,
동방페레그린증권의 경영권 다툼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로펌들이 대기업간 분쟁이 발생한 경우 송무파트만은 황 변호사에게 "업무
제휴"를 요청할 정도다.

황 변호사가 이처럼 메이저 사건에서 높은 승소율을 기록할 수 있는 비결은
의외로 단순하다.

"의뢰인으로부터 사건진술을 꼼꼼하게 듣는 것"이 황 변호사가 전하는 비법.

고객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진술하지 않거나 무심하게 넘긴 한마디가
승소를 이끄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일이 다반사다.

여기에 "드림팀"으로 평가받는 같은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내는 공동작업이 더해지면서 완벽한 소송전략이 마련
된다.

사실 황 변호사는 법조계내에서 촉망받는 엘리트 판사중 한 명이었다.

김덕주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과 수석사법정책 연구심의관, 청와대 법무담당
비서관을 지낸 그의 경력이 이를 말해 준다.

황 변호사가 서울고법부장을 끝으로 사표를 던지자 대법원에서 아까운
사람이 나간다며 탄식했을 정도이다.

황 변호사는 그러나 국민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장 모범적인
법무법인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에서 잘나가던 판사직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변호사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평균적인 법상식과 합리적인 판단력이라는게
황 변호사의 지론이다.

기발한 법이론을 개발해 어리둥절한 판결을 유도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라는
것.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한 사건은 "설사" 지더라도 고객의 신뢰감을 잃지
않고 개인적으로도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고 황 변호사는 말했다.

< 이심기 기자 sglee@ >


[ 특별취재팀 = 최필규 산업1부장(팀장)/
김정호 채자영 강현철 이익원 권영설 이심기(산업1부)
노혜령(산업2부) 김문권(사회1부) 육동인(사회2부)
윤성민(유통부) 김태철(증권부) 류성(정보통신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