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나타난 재계의 변화를 열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중의 하나가 ''선단식 경영''의 해체다.

정부의 강도 높은 문어발식 경영의 폐해를 절감한 기업 스스로의 구조
조정이 맞물려 선단식 경영에 하나하나 마침표를 찍어가고 있다.

선단식 경영의 해체는 ''포스트 IMF''를 선도해 나가기 위한 수술이기도
하다.

변화의 물결은 사업전개 방법의 변화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모든 것을 망라하던 사업체계는 이제 선택적 집중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이다.

과거 대기업의 사업 구조는 "문어발"이라고 할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쑤시개에서 유조선까지" 모든 업종을 망라해 손을 대지 않은 사업이
없었다.

그런 까닭에 대기업의 사업구조는 서로 비슷한 형태로 유지돼 왔다.

규모만 크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대마불사"도 대기업의 비관련 다각화를
부채질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세계 초일류 전문기업과의 경쟁에서 처절한 패배로
나타나고 말았다.

대기업의 변신은 이같은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이제나마 대기업들이 변신을 꾀하고 있다는건 다행스런 일이다.

타율이건 자율이건 중요하지 않다.

변하지 않으면 21세기 초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선단식 경영의 해체는 맨먼저 그룹 지배조직의 소멸로 나타났다.

종합조정실 기획조정실 회장비서실 등의 이름으로 그룹 살림을 좌우하던
조직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의 덩치를 키우기엔 더 없이 훌륭한 조직이었지만 지금과 같은
혹한기에서는 오히려 생존의 걸림돌이다.

유한한 자원을 핵심역량에 집중하기보다 비관련 다각화와 부실 사업군
회생에 낭비하는 역기능이 커지고 있어서다.

지배조직이 아직 구조조정본부 형태로 남아 있긴 하다.

그러나 이는 구조조정을 성공리에 마치기 위한 한시조직일 뿐이다.

그룹 조직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이 거꾸로 그룹을 해체하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지배조직 뿐만 아니라 그룹 자체도 축소되고 있다.

여러개의 단위기업이나 사업군으로 나누어진 그룹도 적지 않다.

6~64대 기업집단 가운데 38개 그룹이 워크아웃을 진행중이고 5대 그룹도
계열사의 대규모 정리를 진행중이다.

이업종간 지급보증은 지난해 연말로 해소됐고 동업종간의 지급보증도
곧 해소해야 한다.

출자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룹의 의미는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때맞춰 각 그룹들은 자신들의 핵심역량을 엄선해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나머지 사업은 포기다.

"버리기 경영"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다.

계열사수도 대폭 축소된다.

현대는 자동차 전자 건설 중화학과 금융 및 서비스 5개 업종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버리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9개사를 정리한데 이어 올해는 매출 1조원이 넘는 계열사 2~3개를
포함해 모두 22개사를 정리키로 했다.

삼성도 다르지 않다.

전자 금융 등 4~5개 업종을 전략업종으로 선정해두었다.

계열사수는 연말까지 63개에서 32개로 줄어든다.

대우도 6개 업종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계열사로 대폭 축소키로
했다.

LG는 화학.에너지 전자 통신서비스 금융 등 4개 업종을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면서 계열사를 53개에서 내년까지 32개로 줄인다는 방침이다.

SK역시 49개 계열사를 22개까지 줄이기로 했다.

핵심역량으로 선정된 업종은 집중 육성된다.

전문화하지 않고서는 21세기 초일류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계열분리와 분사 아웃소싱 등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가 1월초 현대해상화재를 분리한 것을 시작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는
계열분리 신청이 잇따르고 있다.

공정거래법이 일부 개정되는 4월 이후에는 대기업의 계열분리가 더욱
활발히 진행될 전망이다.

대기업의 올해 분사계획도 대략 3백여사에 이른다.

또 전략적 아웃소싱을 경쟁력 제고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급보증 해소와 출자 제한은 계열사의 독자경영을 뒷받침한다.

계열사를 돕는 것보다는 주주들의 이익이 가장 큰 경영목표가 된다.

따라서 계열기업간의 거래에는 시장원리가 도입되고 있다.

계열기업간 거래는 이제 다른 기업이 제시한 조건보다 확실이 낫다는
판단이 서야 가능하다.

글로벌 스탠더드 경영은 선단식 경영의 해체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