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ware) 또는 차이나(china)라 불렀다.
동방국가와 교역을 맡았던 동인도회사는 아시아산 비단과 향료 도자기 홍차
등을 중개했다.
특히 중국의 찻잔, 접시, 작고 단단한 빨간 주전자 등은 대량으로 수입돼
매우 비싼값에 팔렸다.
그래서 연금술사들은 도자기원료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1709년 독일서 "제틀리트"라는 고령토를 얻는데 성공, 이듬해 왕립도자기
제조소가 세워진다.
오늘날 독일의 로젠탈, 영국의 로열달턴 등이 유명기업으로 컸지만 유럽의
도자기 역사는 3백년이 안된다.
도자기가 가장 먼저 발달한 곳은 중국으로 은나라 때부터 만들어졌다.
우리나라는 4천년 전부터 북방민족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우리의 도자기는 이웃나라에 부러움을 샀다.
한 예로 조선 세종실록에 "명의 사신 윤봉이 오매 광주목사에 명하여 대,
중, 소 백자 10개를 구워다 바쳤다"는 기록은 중국서 우리의 자기를 진품으로
친게 분명하다.
비취빛 고려청자는 그야말로 아름답다.
푸르다고 하기에는 너무 투명하고, 투명하다 하기에는 너무 심원해서 한국
미술의 선각자 고유섭씨는 "견식으로서가 아니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고 코로 맡고 입으로 맛봐야 한다"고 했을 정도다.
이조백자도 마찬가지다.
임진왜란때 수많은 도공을 데려간 일본에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침잠한
심정으로 이끌지 않고는 못배기는 유묘한 매력을 가졌다"고 감탄했다.
우리나라의 도자기그릇 메이커인 "한국도자기"가 만든 "트리톤"이란 식기
세트가 최근 로마교황청으로 부터 국빈용그릇으로 쓰이기 위해 샘플주문을
의뢰받았다.
이 회사는 한달에 3백50만개를 생산, 58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세계적
기업이다.
하지만 로마에서 전해온 소식에 우리는 기쁨을 느낀다.
우리 도자기가 왠지 더더욱 자랑스러워 보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