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예감 '99] 예언으로 본 99년 : '눈길끄는 비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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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대표적 예언서로는 우선 정감록과 남사고 선생이
쓴 격암유록을 꼽을수 있다.
정감록은 누가 썼는지 불분명하지만 조선 중기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비결서다.
이 책은 정권교체기나 전쟁 등 난세에 어김없이 위력을 떨쳐왔다.
조선이 멸망한 다음 계룡산에서 정씨성의 진인이 나타나며 가야산의 조씨,
완산의 범씨가 이를 잇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작도 많아 항상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위작여부에 관계없이 정감록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예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리가 나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십승지"도 정감록에서 유래했다.
십승지는 보은 속리산, 안동 화산, 남원 운봉, 부안 호암, 무주의 무풍,
강원도 영월, 경북 예천, 풍기 금계촌, 공주 계룡산, 합천 가야산 등 10곳 i
이다.
남사고의 격암유록도 많이 알려진 비결서다.
남사고 선생은 조선 명종때의 학자로 주역을 깊이 연구,천문 지리에
통달했던 인물.
예언의 핵심은 인류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초유의 대환란이 발생하며
환란이 끝날 때에는 후천개벽이 오고 하늘의 명령을 받은 진인이 인간으로
나타나 세계를 구원한다는 것이다.
격암유록은 민족종교에서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조선 중종.명종때 학자인 정북창 선생은 궁을가라는 비결을 냈다.
그는 미래의 전개과정을 가사형식에 담아 후세에 전했다.
이 가사는 "조선강산 명산이라 도통군자 다시 난다.
사명당이 갱생하니 승평시대 불원이라 창생도탄 없어진다"며 인류구원의
도통군자가 조선에서 난다고 예언했다.
순조때 전라감사를 지냈던 이서구가 남긴 비결서 "춘산채지가"도 유명하다.
춘산채지가는 전주 모악산에 새기운이 돌아와 새왕국을 연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이밖에 의상대사의 산수비기,도선국사의 도선비결,무학대사의 무학비결 등도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그내용은 전하지않는다.
이같은 비결서들은 격변의 시기에 새로운 질서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서민층에 파고들어 사회불안을 조장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특히 19세기말에는 세간에 널리 퍼져 신흥종교들이 생겨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일자 ).
쓴 격암유록을 꼽을수 있다.
정감록은 누가 썼는지 불분명하지만 조선 중기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비결서다.
이 책은 정권교체기나 전쟁 등 난세에 어김없이 위력을 떨쳐왔다.
조선이 멸망한 다음 계룡산에서 정씨성의 진인이 나타나며 가야산의 조씨,
완산의 범씨가 이를 잇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작도 많아 항상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위작여부에 관계없이 정감록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예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리가 나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십승지"도 정감록에서 유래했다.
십승지는 보은 속리산, 안동 화산, 남원 운봉, 부안 호암, 무주의 무풍,
강원도 영월, 경북 예천, 풍기 금계촌, 공주 계룡산, 합천 가야산 등 10곳 i
이다.
남사고의 격암유록도 많이 알려진 비결서다.
남사고 선생은 조선 명종때의 학자로 주역을 깊이 연구,천문 지리에
통달했던 인물.
예언의 핵심은 인류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초유의 대환란이 발생하며
환란이 끝날 때에는 후천개벽이 오고 하늘의 명령을 받은 진인이 인간으로
나타나 세계를 구원한다는 것이다.
격암유록은 민족종교에서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조선 중종.명종때 학자인 정북창 선생은 궁을가라는 비결을 냈다.
그는 미래의 전개과정을 가사형식에 담아 후세에 전했다.
이 가사는 "조선강산 명산이라 도통군자 다시 난다.
사명당이 갱생하니 승평시대 불원이라 창생도탄 없어진다"며 인류구원의
도통군자가 조선에서 난다고 예언했다.
순조때 전라감사를 지냈던 이서구가 남긴 비결서 "춘산채지가"도 유명하다.
춘산채지가는 전주 모악산에 새기운이 돌아와 새왕국을 연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이밖에 의상대사의 산수비기,도선국사의 도선비결,무학대사의 무학비결 등도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그내용은 전하지않는다.
이같은 비결서들은 격변의 시기에 새로운 질서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서민층에 파고들어 사회불안을 조장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특히 19세기말에는 세간에 널리 퍼져 신흥종교들이 생겨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