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5일은 건국 50주년 기념일이자 "제2의 건국일"이다.

제2의 건국을 앞두고 한국경제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

지난 50년을 지탱해온 한국적 경제발전 모델이 뿌리째 부정되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식 처방"이 도입되고 있으나 아직은 검증되지 않았다.

새로운 패러다임이나 경제발전모델을 구축하지 못할 경우 한국경제는
한동안 표류하는게 불가피하다.

따라서 제2의 건국은 새로운 경제발전 패러다임을 찾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은 "새한국창조 21-새로운 경제발전 패러다임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시리즈를 시작한다.

시리즈는 인터넷및 직접 면담을 통해 수집한 국내외 석학 기업인
정부관리들의 의견과 국내대기업 해외지사가 취득한 현지의 시각을 토대로
작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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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8개국, 특히 한국은 지난 4반세기 동안 세계 어떤 지역보다 가장
높은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룩했다"

세계은행(IBRD)은 지난 93년 발행한 "동아시아의 기적"이란 보고서에서
이렇게 적었다.

비록 "동아시아 경제는 기본적으로 노동과 자본의 대량투입에 따른
고도성장일 뿐이며 효율에 기초한 성장이 아니므로 고속성장은 지속될 수
없다"(폴 크루그만 미국MIT대 교수)는 반론이 제기됐지만 기적자체를
깎아내리지는 못했다.

실제가 그랬다.

한국의 경우 건국당시(48년) 14억달러에 불과했던 GDP(국내총생산)는 지난해
4천4백30억달러(세계 11위)로 불어났다.

67달러로 기아에 허덕이던 1인당 국민소득도 세계 26위인 9천6백24달러로
늘었다.

한때는 1만달러가 넘어 "우리도 선진국"이라고 떵떵거리기도 했다.

3천2백만달러에 불과하던 교역량은 2천7백87억달러(세계 11위)로 커졌다.

자동차도 1천만대를 넘어 "1가구 1자동차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기적을 이룰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한국적 가치(Korean Values)"가
주효한 덕분이다.

높은 교육열, 양질의 노동력, 깨끗한 도덕성, 집단을 위해선 개인의
목소리를 낮출줄 아는 희생정신, 강력한 정부 등.

한국적 가치는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갖고 독창적 경제개발모델로
자리잡아왔다.

IBRD의 보고서가 나온지 5년.

이제 아시아는 물론 한국의 기적에 대한 찬미의 목소리는 사그러들었다.

폴 크루그만의 정확한 예언에 대한 찬양만 가득하다.

경제기적의 동인으로 추앙되던 유교적 인간관계는 "친소관계로 이뤄지는
정실자본부의(Crony Capitalism), 족벌주의(Nepotism), 부정부패의 온실"
(제임스 부캐넌 박사)로 치부되고 있다.

고도성장을 이끄는 기관차로 평가되던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은 "아무 것도
명확하지 않은 자욱한 안개와 이중규범을 양산하고 경제주체의 도덕적 해이
(모럴 해저드)만 초래했을뿐"(리처드 홀부르크 전미국국무부 차관보)으로
폄하되고 있다.

한국적 가치에 대한 수술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처방"이 새로운 가치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50년을 떠받쳐왔던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이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실험중인 "IMF 처방"이 새로운 모델로 검증된 것은 아니다.

투명한 재무구조, 온정보다는 이해득실을 우선 따지는 거래, 집단보다는
개인의 창조력을 중시하는 풍토, 정부주도보다는 시장중시의 경제관행 등.

모든 것이 새로운 가치관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제2의 건국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확신을 주기엔 아직 미흡하다.

오히려 "IMF처방은 상황은 더 악화시킬뿐"(제프리 삭스 하버드대
교수)이라든가, "한국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고 대만과 홍콩은 위기를
비켜가는 등 중국문화권에 속한 동북아 국가들의 위기대처 능력은 아시아적
가치의 의미를 재론하게 만들고 있다"(도널드 에머슨 위스콘신대 교수)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그렇다면 제2의 건국시대를 지탱해갈 경제발전 패러다임은 무엇일까.

기존의 한국적 가치가 효력을 상실했고, 한창 도입중인 "미국적 가치
(IMF처방)"의 유효성에 대한 검증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을 갖고
제2의 건국을 해 나갈 것인가.

이에대한 답은 명확하지 않다.

쉽게 정의 내릴수 있는 성질도 아니다.

그렇지만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뒤돌아보면 앞으로 50년을 이끌고갈
새로운 경제발전 패러다임에 담겨야할 필요충분조건은 명확해 진다.

우선은 대내외 환경변화에 기민하게 적응해야만 한다.

그러자면 "글로벌 스탠다드(국제규범)"도입이 필수적이다.

"세계경제는 금융의 글로벌화와 투자및 무역의 전면 자유화진행 등 전
분야의 전면개방체제속에서 무한경쟁을 벌이는데도 한국은 전근대적 금융
시스템과 비효율적인 재벌구조에 안주"(안충영 중앙대 교수)해왔던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철저히 시장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점도 빼놓을수 없다.

"작년의 외환위기는 국가의 자원배분을 통한 시장간섭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을 극명히 보여줬다"(강명세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그러자면 개인의 창의성이 발휘될수 있고 게임의 공정성을 확립할수 있는
룰을 만드는게 필수적이다.

노동시장이 좀더 유연해지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는 "대립적이고 폭력적인 노사관계가 계속될수 밖에 없으며
이는 경제회복의 장애로 작용하게 된다"(안드레 쉬미트 독일 코메르츠은행
부행장)

경제를 뒷받침하는 정부조직과 정치관행의 혁신도 새로운 패러다임에
포함돼야 한다.

"과거의 관리들이 개혁을 추진하기엔 부적합하다.

정부는 강도높은 개혁을 주장하고 있지만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찾을수 없다"
(민충기 EBRD자문역)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니 더욱 그렇다.

정치권의 경우 "한국이 위기를 잘 극복할 것으로 믿지만 중요한 것은
정치구조"(존 페퍼콘 미국 쉐반사 회장)이라는 말에 귀기울여야 한다.

국민의식도 달라져야 한다.

"변화와 개혁에 소극적인채 막연한 평등주의만 추구한다면 재도약의 기회를
쉽게 잡을수는 없다"(미즈노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박사)

그렇지만 지난 50년을 지탱해왔던 성실성 도덕성 희생정신 등을 쉽게
버려서는 안된다.

"한국인들은 멕시코나 동남아에 비해 빠르고 결단력이 강하므로 위기를
다른 나라보다 빨리 극복할수 있을 것으로 본다"(루이스 플래트 미국
휴렛팩커드회장)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같은 국민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 특유의 인간적 관계가 현 위기 극복에도 큰 구실을 할 것"(청중잉
하와이대교수)이라는 말도 흘려들어서는 안된다.

미국 알리앙스캐피탈의 데이비드 윌리암회장은 "현재의 미국경제 호황은
80년대부터 10년이상 지속해온 구조조정의 결과"라며 "한국도 위기를
극복하는데 3-5년가량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단순히 위기를 언제 극복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다.

위기를 극복하면서 얼마나 새로운 경제발전 패러다임을 정립하느냐가
중요하다.

새로운 경제발전 패러다임 창출에 제2의 건국이 달려 있다.

< 하영춘 기자 ha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