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21C 한국과 유럽의 경제관계' .. 강연 : 신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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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한-EU 언론인세미나가 ''새유럽체제와 한반도''라는 주제로 포르투칼
리스본에서 3일부터 5일까지 열린다.
본사 신영섭 논설위원은 이 세미나에서 ''21세기를 맞는 한국과 유럽의
경제관계''로 주제강연을 갖는다.
그 내용을 요약정리한다.
< 편집자 >
======================================================================
21세기를 맞는 한국과 유럽은 "통합 또는 통일 그리고 세계화"라는 비슷한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은 시장개방을 통한 경제의 세계화를 추구하는 한편 임박한 남북통일
에 대비하고 평화적인 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이에 비해 EU의 당면과제는 통화통합, 더 나아가 정치-안보통합까지 추구
하는 통합의 질적 강화 및 중부-동부 유럽국가의 EU가입을 통한 통합의 양적
확대, 두가지로 요약된다.
한편 유럽의 발달된 사회보장과 높은 문화수준은 세계화를 지향하고 있는
한국에 모범이 될 수 있다.
결국 경제성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문화창달을 통해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데 있다고 볼 때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온 "사람이 곧 하늘이다"
라는 한국의 인본주의적인 전통사상은 유럽의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
라는 가치관과 함께 다가오는 21세기의 궁극적인 비전으로 제시할만 하다고
본다.
그러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유럽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현재 EU는 세계 최대의 시장이며 동아시아는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 및
잠재력이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유럽과 동아시아의 협력은 양자는 물론 세계경제를 위해서도
긴요하다.
1992년 현재 세계은행의 구매력 평가기준(PPP)에 따른 국내총생산(GDP)규모
를 보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의 4개 유럽국가와 일본 중국 인도의 3개
아시아 국가가 전세계 경제규모 상위 10개국에 포함돼 있다.
특히 DRI발표에 따르면 1995~2000년간 세계에서 경제성장이 가장 빠른
10개국중 6개국이 동아시아국가로 꼽히고 있다.
따라서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지역에 대해 미국이 거대신흥시장(Big
Emerging Markets)전략을, 그리고 유럽이 "대아시아 신전략"(Towards a New
Asia Strategy)을 세우고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유럽이 아시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었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지난 96년 3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유럽회의(ASEM)"도 이같은 노력의 하나다.
또한 그동안은 아시아지역에 대한 유럽의 관심이 중국 일본 및 ASEAN에
쏠렸으며 한국은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은 현재 세계 11위의 경제규모로 성장했으며 지난 95년 기준
으로 EU의 8번째로 큰 교역상대국이다.
아울러 아시아지역의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사회간접자본의 대대적인
확충이 불가피한데, 유럽의 첨단기술과 자본 그리고 한국의 제조 및 시공
기술과 숙련노동력을 결합하여 역내진출을 꾀할 경우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유럽은 한국을 중국진출을 위한 교두보 또는 중간기지로 활용할
수 있다.
반대로 EU는 세계최대의 단일시장으로서 동아시아지역의 경제성장을
위해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유럽과의 경제협력은 미국과 일본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도를 줄여
균형있는 대외협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엄청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지역에는 소지역주의, 영토
분쟁, 북한의 붕괴가능성 등 적지않은 갈등 및 위험이 잠재해 있다.
이같은 불안은 최근 동남아시아의 통화가치 폭락이나 캄보디아의 내전
재발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ASEAN과 중국 일본 한국 등 동북아 3국, 그리고 러시아의 극동지방
등을 포괄하는 동아시아경제공동체를 만들어 지역 정치-경제의 안정을 꾀할
필요가 있다.
현재 ASEAN과 APEC가 있지만 ASEAN은 중국 일본 한국 등 동북아 3국이
빠져 경제규모나 영향력이 제한적이며 APEC는 북미주까지 포함하고 있어
포괄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회원국들이 이질적이며 미국의 영향력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있다.
이미 지난 92년 12월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동아시아경제그룹
(East Asian Economic Group:EAEG)의 결성을 제의한바 있지만 미국의 견제로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는 실정이다.
이점에서 한국통일은 동북아경제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같은 가능성은 오랫동안 유럽대륙에서 긴장과 불화의 당사자였던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와 협력이 EC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고 나아가 EU를 태동시킨
역사적인 사실과 비교된다.
역으로 동북아경제공동체가 남북한간의 긴장완화 내지는 한국통일, 나아가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즉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와 협력을 유도하고 EEC로 발전하는데 큰 기여를
한 "유럽 석탄-철강공동체"(Europe Coal and Steel Community:ECSC)가 처음
부터 독일과 프랑스 뿐만 아니라 주변국가들까지 참여한 국제기구로 출발
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는 지금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본격화된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으며 반도체를 비롯한
주력제품의 수출이 부진해 지난해에만 경상수지적자가 2백30억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의 경제침체나 수출부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진짜 이유는
이같은 현상이 일시적인 침체가 아니라 "고비용-저효율"로 대표되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걱정때문이다.
특히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화학 반도체 등 한국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요
산업의 과잉설비가 심각하며, 또한 시장개방의 영향으로 건설업과 유통업을
중심으로 많은 기업들이 쓰러졌다.
이같은 고통은 지난 7월 중순 3대 자동차업체중의 하나인 기아그룹이
심각한 자금난에 빠지면서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주요산업이 이처럼 곤경에 빠지자 이들 기업에 거액의 대출을 해줬던
금융기관들이 엄청난 부실채권을 떠안게 돼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 한국경제는 세계화와 구조조정의 과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계화와 구조조정은 밀접히 연관돼 있는 만큼 시장
자율을 통한 효율향상 및 공공부문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추구해온 한국경제로서는
세계화는 생존과 직결된다.
세계화는 외국어를 잘하고 국제행사를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함으로써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
기업이나 은행의 지배구조 개편은 지금까지 공익을 대표해 개입했던 정부
대신 주주들이 직접 나서야 하며 정부역할은 공정한 규칙이 지켜지는지를
감독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
부실채권의 정리를 위해 은행과 기업의 합병을 통한 퇴출이 불가피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잉설비의 처리 및 비자발적 실업을 흡수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또한 부실기업을 제3자에게 인수시키는 것은 또다른 부실을 낳을 수 있으
므로 동종업체끼리 합병한뒤 생산능력을 줄이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면 한국경제의 이같은 세계화작업은 한국과 EU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단기적으로는 교역문제를 둘러싼 마찰과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시장확대와 협력강화가 기대된다고 본다.
당장 미국과 EU는 공동으로 한국 자동차시장의 개방폭 확대 및 과소비
자제운동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밖에도 EU는 한국의 주세문제를 WTO에 제소한 상태이며 금융개방 확대
요구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대한 한국정부의 대응도 그동안의 일방적인 수세에서 벗어나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
우선 미국 EU 캐나다 등의 불공정 사례를 수집해 무역장벽보고서를 발간
하고 일부 경우는 WTO에 제소하기로 했다.
예를들면 미국의 한국산 컬러TV나 반도체 등에 대한 반덤핑관세, 캐나다의
한국산 유정용 강관에 대한 반덤핑 판정 등이다.
이밖에도 EU의 한국산 컬러TV 등 가전제품 및 반도체에 대한 반덤핑조치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하지만 통상마찰이 계속 확대되는 것은 한국과 EU 모두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타협이 필요하다.
한 예로 지난해 EU는 한국산 VTR 오디오 카세트 등의 가전제품과 굴삭기에
대한 반덤핑조사를 잇따라 무혐의처리했으며 한국은 EU측이 제소한 주세율
조정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EU는 한국의 산업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돕고 중장기적
으로 시장확대를 꾀한다는 차원에서 자동차 뿐만 아니라 금융 통신 등의
시장개방협상에서 완급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경제가 자신의 세계화노력에 걸맞는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때 한국과 유럽의 관계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대우그룹이 프랑스의 톰슨멀티미디어(TMM)사를 인수하려는
시도가 끝내 좌절되고 그 과정에서 겪은 불쾌한 경험은 분명히 건설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통상협상에서 미국의 패권적인 행동에 한국과 EU가 공동대응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통상협상은 다자간협상을 통해서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들면 미국은 자국에서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담배판매를 한국에서는
적극 추진하고 있는가 하면 농산물 무기 등의 구매에서도 공개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고 걸핏하면 슈퍼 301조 발동을 위협하기도 한다.
또한 미국은 쿠바 이란 리비아 등과 거래하는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자국법을 외국기업에도 무차별하게 적용하려 해 EU를 중심으로 큰 반발을
샀으며 최근에는 보잉사와 맥도널 더글러스사의 합병문제를 놓고 무역보복을
위협한바 있다.
따라서 한국과 EU는 이미 WTO의 통신 및 금융서비스협상에서 협조한
경험을 살려 미국에 공동대응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일자).
리스본에서 3일부터 5일까지 열린다.
본사 신영섭 논설위원은 이 세미나에서 ''21세기를 맞는 한국과 유럽의
경제관계''로 주제강연을 갖는다.
그 내용을 요약정리한다.
< 편집자 >
======================================================================
21세기를 맞는 한국과 유럽은 "통합 또는 통일 그리고 세계화"라는 비슷한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은 시장개방을 통한 경제의 세계화를 추구하는 한편 임박한 남북통일
에 대비하고 평화적인 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이에 비해 EU의 당면과제는 통화통합, 더 나아가 정치-안보통합까지 추구
하는 통합의 질적 강화 및 중부-동부 유럽국가의 EU가입을 통한 통합의 양적
확대, 두가지로 요약된다.
한편 유럽의 발달된 사회보장과 높은 문화수준은 세계화를 지향하고 있는
한국에 모범이 될 수 있다.
결국 경제성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문화창달을 통해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데 있다고 볼 때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온 "사람이 곧 하늘이다"
라는 한국의 인본주의적인 전통사상은 유럽의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
라는 가치관과 함께 다가오는 21세기의 궁극적인 비전으로 제시할만 하다고
본다.
그러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유럽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현재 EU는 세계 최대의 시장이며 동아시아는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 및
잠재력이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유럽과 동아시아의 협력은 양자는 물론 세계경제를 위해서도
긴요하다.
1992년 현재 세계은행의 구매력 평가기준(PPP)에 따른 국내총생산(GDP)규모
를 보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의 4개 유럽국가와 일본 중국 인도의 3개
아시아 국가가 전세계 경제규모 상위 10개국에 포함돼 있다.
특히 DRI발표에 따르면 1995~2000년간 세계에서 경제성장이 가장 빠른
10개국중 6개국이 동아시아국가로 꼽히고 있다.
따라서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지역에 대해 미국이 거대신흥시장(Big
Emerging Markets)전략을, 그리고 유럽이 "대아시아 신전략"(Towards a New
Asia Strategy)을 세우고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유럽이 아시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었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지난 96년 3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유럽회의(ASEM)"도 이같은 노력의 하나다.
또한 그동안은 아시아지역에 대한 유럽의 관심이 중국 일본 및 ASEAN에
쏠렸으며 한국은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은 현재 세계 11위의 경제규모로 성장했으며 지난 95년 기준
으로 EU의 8번째로 큰 교역상대국이다.
아울러 아시아지역의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사회간접자본의 대대적인
확충이 불가피한데, 유럽의 첨단기술과 자본 그리고 한국의 제조 및 시공
기술과 숙련노동력을 결합하여 역내진출을 꾀할 경우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유럽은 한국을 중국진출을 위한 교두보 또는 중간기지로 활용할
수 있다.
반대로 EU는 세계최대의 단일시장으로서 동아시아지역의 경제성장을
위해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유럽과의 경제협력은 미국과 일본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도를 줄여
균형있는 대외협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엄청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지역에는 소지역주의, 영토
분쟁, 북한의 붕괴가능성 등 적지않은 갈등 및 위험이 잠재해 있다.
이같은 불안은 최근 동남아시아의 통화가치 폭락이나 캄보디아의 내전
재발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ASEAN과 중국 일본 한국 등 동북아 3국, 그리고 러시아의 극동지방
등을 포괄하는 동아시아경제공동체를 만들어 지역 정치-경제의 안정을 꾀할
필요가 있다.
현재 ASEAN과 APEC가 있지만 ASEAN은 중국 일본 한국 등 동북아 3국이
빠져 경제규모나 영향력이 제한적이며 APEC는 북미주까지 포함하고 있어
포괄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회원국들이 이질적이며 미국의 영향력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있다.
이미 지난 92년 12월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동아시아경제그룹
(East Asian Economic Group:EAEG)의 결성을 제의한바 있지만 미국의 견제로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는 실정이다.
이점에서 한국통일은 동북아경제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같은 가능성은 오랫동안 유럽대륙에서 긴장과 불화의 당사자였던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와 협력이 EC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고 나아가 EU를 태동시킨
역사적인 사실과 비교된다.
역으로 동북아경제공동체가 남북한간의 긴장완화 내지는 한국통일, 나아가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즉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와 협력을 유도하고 EEC로 발전하는데 큰 기여를
한 "유럽 석탄-철강공동체"(Europe Coal and Steel Community:ECSC)가 처음
부터 독일과 프랑스 뿐만 아니라 주변국가들까지 참여한 국제기구로 출발
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는 지금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본격화된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으며 반도체를 비롯한
주력제품의 수출이 부진해 지난해에만 경상수지적자가 2백30억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의 경제침체나 수출부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진짜 이유는
이같은 현상이 일시적인 침체가 아니라 "고비용-저효율"로 대표되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걱정때문이다.
특히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화학 반도체 등 한국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요
산업의 과잉설비가 심각하며, 또한 시장개방의 영향으로 건설업과 유통업을
중심으로 많은 기업들이 쓰러졌다.
이같은 고통은 지난 7월 중순 3대 자동차업체중의 하나인 기아그룹이
심각한 자금난에 빠지면서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주요산업이 이처럼 곤경에 빠지자 이들 기업에 거액의 대출을 해줬던
금융기관들이 엄청난 부실채권을 떠안게 돼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 한국경제는 세계화와 구조조정의 과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계화와 구조조정은 밀접히 연관돼 있는 만큼 시장
자율을 통한 효율향상 및 공공부문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추구해온 한국경제로서는
세계화는 생존과 직결된다.
세계화는 외국어를 잘하고 국제행사를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함으로써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
기업이나 은행의 지배구조 개편은 지금까지 공익을 대표해 개입했던 정부
대신 주주들이 직접 나서야 하며 정부역할은 공정한 규칙이 지켜지는지를
감독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
부실채권의 정리를 위해 은행과 기업의 합병을 통한 퇴출이 불가피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잉설비의 처리 및 비자발적 실업을 흡수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또한 부실기업을 제3자에게 인수시키는 것은 또다른 부실을 낳을 수 있으
므로 동종업체끼리 합병한뒤 생산능력을 줄이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면 한국경제의 이같은 세계화작업은 한국과 EU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단기적으로는 교역문제를 둘러싼 마찰과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시장확대와 협력강화가 기대된다고 본다.
당장 미국과 EU는 공동으로 한국 자동차시장의 개방폭 확대 및 과소비
자제운동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밖에도 EU는 한국의 주세문제를 WTO에 제소한 상태이며 금융개방 확대
요구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대한 한국정부의 대응도 그동안의 일방적인 수세에서 벗어나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
우선 미국 EU 캐나다 등의 불공정 사례를 수집해 무역장벽보고서를 발간
하고 일부 경우는 WTO에 제소하기로 했다.
예를들면 미국의 한국산 컬러TV나 반도체 등에 대한 반덤핑관세, 캐나다의
한국산 유정용 강관에 대한 반덤핑 판정 등이다.
이밖에도 EU의 한국산 컬러TV 등 가전제품 및 반도체에 대한 반덤핑조치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하지만 통상마찰이 계속 확대되는 것은 한국과 EU 모두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타협이 필요하다.
한 예로 지난해 EU는 한국산 VTR 오디오 카세트 등의 가전제품과 굴삭기에
대한 반덤핑조사를 잇따라 무혐의처리했으며 한국은 EU측이 제소한 주세율
조정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EU는 한국의 산업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돕고 중장기적
으로 시장확대를 꾀한다는 차원에서 자동차 뿐만 아니라 금융 통신 등의
시장개방협상에서 완급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경제가 자신의 세계화노력에 걸맞는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때 한국과 유럽의 관계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대우그룹이 프랑스의 톰슨멀티미디어(TMM)사를 인수하려는
시도가 끝내 좌절되고 그 과정에서 겪은 불쾌한 경험은 분명히 건설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통상협상에서 미국의 패권적인 행동에 한국과 EU가 공동대응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통상협상은 다자간협상을 통해서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들면 미국은 자국에서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담배판매를 한국에서는
적극 추진하고 있는가 하면 농산물 무기 등의 구매에서도 공개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고 걸핏하면 슈퍼 301조 발동을 위협하기도 한다.
또한 미국은 쿠바 이란 리비아 등과 거래하는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자국법을 외국기업에도 무차별하게 적용하려 해 EU를 중심으로 큰 반발을
샀으며 최근에는 보잉사와 맥도널 더글러스사의 합병문제를 놓고 무역보복을
위협한바 있다.
따라서 한국과 EU는 이미 WTO의 통신 및 금융서비스협상에서 협조한
경험을 살려 미국에 공동대응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