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브리지 게임을 시작한 것은 정확하게 20년 전이다.

그때 일하고 있던 국방과학연구소의 일부 조직이 대전지역으로
이전하면서 가족들은 서울에 있고 우리 연구원들은 홀아비 생활을
할 때였다.

자연히 여가시간을 이용해 주로 해외유치 과학자들 사이에 브리지
게임이 시작됐다.

이 브리지는 머리를 많이 써야 하고 경쟁심을 불러 일으키고 돈내기를
하는 도박이 아니어서 가족이나 친구들,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수 있는
카드게임이다.

당시의 심문택 소장, 강인구, 이경서 박사들도 틈만 나면 같이 어울렸던
생각이 난다.

서울에서는 SIWA (Seoul International Women"s Association)에서
브리지 강습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브리지를 배우게 되었고 나의
처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꽤나 고참이 되었다.

처음에는 주한외교관 군인 기업인 등이 외국인 중심으로 브리지 클럽을
운영하곤 했지만 요즘은 내국인들도 많이 운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서울클럽"일 것이다.

쌍용투자증권의 고문으로 계신 민병갈 (본명은 Carl Ferris Miller)씨가
Duplicate Bridge Club을 운영하고 있는데 요새도 매주 목요일 저녁에
서울클럽에서 모인다.

우리나라는 여자들이 더 똑똑하다고 하던가?

국내 동호인들이 늘어나자 93년말에 민일미여사가 한국브리지협회
(KBA, Korean Bridge Association)를 설립, 초대회장으로 일하면서 기초를
튼튼히 쌓았다.

2대회장으로는 나의 처 한명진이 올해부터 2년간을 맡고 있다.

현재 KBA는 내국인 회원이 200여명, 외국인 회원 30여명으로 매년
브리지대회도 열고 있다.

이 브리지 게임은 구미제국은 물론 동남아 여러나라에서도 많이
보급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 게임에서는 후진국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KBA가 94년에야 세계브리지연맹 (WBF)에 겨우 101번째로 가입한
사실로도 알수 있다.

요즘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브리지 게임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안사람들 등쌀에 새로 브리지 게임을 시작하는 남자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제 "고스톱"보다 재미있는 브리지를 하자.

영화배우 오마 샤리프의 "연기는 나의 직업이고 브리지는 나의
정열이다"란 말이 생각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