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시장의 전유물로 인식돼온 기업인수/합병(M&A) 열풍이 아시아시장
에서도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사냥꾼들이 아시아의 신흥성장지역으로 몰려드는
것은 물론 아시아기업들도 서구유망기업들을 낚아채기 위해 혈안이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경제월간지 "아세아INC" 6월호는 지난해 아시아기업들의
50대 M&A를 살펴본 결과 최소규모가 1억2천3백만달러로 94년의 8천만달러
보다 50% 증가했다고 밝혔다.

불과 2-3년전까지만 해도 일본을 제외하고는 M&A무풍지대나 다름없던
아시아지역에서 지난해에는 1억2천만달러이상의 M&A가 50건이나 이뤄진
셈이다.

국적별로 아시아50대 M&A를 보면 일본기업들이 11건(전체규모 4백2억달러)
으로 역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말레이시아의 9개 M&A가 50대에 들어가 건수로 2위를 차지했으나
규모면에서는 22억7천만달러로 7개 한국기업들의 29억8천만달러를 합친 것
보다 적었다.

지난해에는 특히 동남아시아지역의 기업들이 싱가포르증시를 무대로 국경을
초월한 M&A를 활발히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50대안에 들어간 인도네시아기업들의 M&A 4건이 모두 이같은 사례다.

최근 아시아지역 M&A에서는 이같은 양적인 증가보다 질적 변화가 더 주목해
할 대목.

미국의 금융시장전문조사회사인 시큐리티데이터는 종전까지 아시아 기업들
이 주로 미국이나 유럽기업들의 M&A표적이었으나 지난해부터는 이같은
상황이 역전된 것으로 최근 집계했다.

지난해 아시아기업들의 미국이나 유럽기업 인수규모는 총 1백35억달러에
달한데 비해 피인수규모는1백5억달러에 그쳤다.

94년에는 미국및 유럽기업들의 아시아기업 사냥규모가 69억달러로 반대의
경우보다 7억달러 많았다.

아시아가 서로 물고 물리는 "M&A의 정글"로 변하는 동시에 아시아기업들이
사냥터를 전세계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M&A는 서구식 기업문화의 산물이다.

동양의 가치관으로는 기업이 소유와 상속의 대상이지 기업 자체를 사고팔아
돈을 번다는게 어색하다.

기업본래의 목적을 등한시한 채 자신의 피와 살이나 다름없는 회사를 팔아
넘겨 돈벌 궁리를 하는 기업가는 적어도 아시아지역에선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아시아 기업가들도 이제는 "기업의 목적은 곧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살벌한 논리에 점차 빠져들고 있다.

또 최근 아시아기업들의 M&A양상을 보면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는
속담 그대로다.

아시아INC지는 아시아기업들의 M&A다룬 특집기사에서 "처음 교섭에 들어갈
때는 아주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도 낚아 챌 시점에는 표독스럽고
야비하기까지 하다"고 지적햇다.

이 때문에 아시아의 대형 M&A에서는 기업소유주 가족들간에 불화가
뒤따른다든지 기업 임직원내부의 매수.협잡이 벌어지는게 다반사다.

여기에다 법정으로까지 가서 분쟁을 조절해야만 M&A가 마무리되는 사례도
한둘이 아니다.

미국의 M&A전문기업들조차 아시아의 이런 투자환경에 곤혹을 치러고 있다.

지난해 제너럴일렉트릭캐피털(GEC)의 홍콩 유나이티드머천트파이낸스(UMF)사
인수가 대표적인 경우.

UMF의 대주주는 GEC에 50%의 지분을 매각하면서 회사간부 40여명을 은밀히
끌어들여 인수경쟁에 동참하도록 만들었다.

GEC는 인수협상에 나설 때 경쟁자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대주주의
농간으로 당초 인수예상가격 보다 훨씬 많은 1억4천만달러를 내고서야 이
회사를 넘겨받았다.

정부가 개입한 M&A조차 뒷얘기가 무성하다.

인도네시아 정보통신부는 지난해 2월 국영 위성통신사인 세틀린도의 지분
25%에 대해 외국기업들까지 참여한 공개경쟁입찰을 실시하면서 국제적인
추태를 보여줬다.

최초 낙찰자로 영국의 C&W가 선정돼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화할 예정
이었으나 발표당일 아무 설명도 없이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인도네시아정부는 한달뒤 도이췌텔레콤사에 5억8천6백만달러로 낙찰됐다고
발표했다.

한국기업의 해외M&A에 대해서도 시각이 그리 곱지 않다.

지난해 LG전자가 미TV회사인 제니스전자를 3억5천만달러에 인수한데 이어
삼성전자가 PC업체 ATS리서치를 3억7천8백만달러에 사들이는 등 한국기업들
의 대형 M&A가 미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금융전문가들은 한국기업들의 M&A 동기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M&A기술과 절차에 대해선 한국기업들을 한묶음으로 비웃고 있다.

삼성전자의 AST인수과정에서 자문역할을 했던 솔로몬브라더스의 그레그폴
M&A실장은 "한국기업들은 목표를 정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반드시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면서 "벌써 미국의 약삭빠른 M&A전문가들은
한국기업들간 경쟁을 붙여 많은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