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20여일 앞두고 색깔논쟁에 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애당초 색깔논쟁은 여당이나 야당이나 할 것없이 극우에서 극좌, 보수에서
급진세력까지 폭넓게 포진하고 있어 정체를 알수 없다는 상호비방에서 비롯
되었다.

이러한 논쟁은 안정을 원하는 보수적 중산층을 겨냥한 선거전략의 일환으로
선거때마다 되풀이되는 일이거니 하고 간단히 치부해 버릴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여러 정황을 돌아볼때 색깔을 아는 것, 색깔을 분명히
하는 일은 결코 소홀히 할수 없다.

색깔논쟁이나 이념논쟁이 진보와 보수의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이는
본질적으로 변화의 속도, 변화에 대한 수용의 적극성 여부에 관한 것으로서
사회의 안정성이 문제되기는 하나 그 자체만으로는 크게 위험한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방향과 내용이며 특히 우리가 신경을 쓰는 것은
극단적인 좌경화, 또는 극단적인 좌경세력의 움직임이다.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 경제운용과 관련해 극좌이념이나 극우이념은 모두
현실에 적용하는데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극우파의 주장은 수정자본주의에 의해 그 약점이 보완되고 있고, 극좌파의
주장은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에 의해 그 기반을 거의 상실하고 있다.

현실세계의 경제는 우파적인 요소와 좌파적인 요소가 어느정도 섞여
움직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좌우익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개인 또는 기업과 정부간의 활동영역의 분할
문제로 귀착된다.

한 예로 정부에 대한 규제완화 요구나 사회복지 축소요그는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개인과 기업의 활동을 좀더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며 이는 보다
우파적인 요구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국민적 합의를 통해 선택한 체제는 정치적으로는 자우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유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연초 한 일간지에 발표된 여론조사 내용은 과히 충격적이다.

1,500명의 조사대상자 가운데 통일한국이 선택할 체제로 사회주의를 꼽은
사람이 15%가 넘는다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원하는 사람들이 머리속에 그리고 있는 사회주의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일당독재, 사유재산의 부정과 생산수단의 국유화,
계획경제로 특징지어지는 정통적인 사회주의이거나 주체사상으로 중무장한
북한식 사회주의라면 우리 사회에 잠복해있는 체제위기는 심각하다.

겨우 15% 정도인데 무슨 걱정이며 자유와 경제적 풍요로움을 맛본 한국의
중산층이 사회주의를 용인할리 있느냐고 반론을 제기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4%도 되지않는 공산주의자들이 볼세비키 혁명을 통해 러시아제국을
무너뜨린후 구소련을 세웠다는 사실을 과거의 일이고, 남의 나라일이라고
간단히 무시해도 괜찮을 것일까.

더욱이 공산주의자들은 정권을 잡는데 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극좌세력이 이번 총선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교두보를 확보하고 우리의 체제를 부정, 또는 본질적으로
변질시키거나, 북한에 의한 남한의 적화통일을 조직적 체계적으로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면 이는 예삿일이 아니다.

극좌세력 진출우려 체제를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국방은 결코 확률로 푸는
게임이 아니다.

"만에 하나라도"라는 가능성에 대비하는 생존책이 바로 국방인 것이다.

극좌로부터 우리사회를 지키는 일은 결코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의 자유시장
경제체제에 대해 어느정도의 믿음을 갖고 있으며, 이를 지킬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우리가 체제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의 행복을 위해 선택가능한 대안중
최선이라고 믿는다면 이의 약점을 끊임없이 보완하고 지킬 의지를 다져야
한다.

또한 지킬수 있는 충분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추어야 한다.

아울러 이 체제를 지키기위해 생명을 바칠 각오를 지닌 사람들을 우리사회
는 과연 얼마나 갖고 있는지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할 것이다.

믿음과 의지, 그리고 능력의 세가지를 갖추게 되면 좌익에의 대치, 그리고
보안법이나 주한미군과 관련된 우리의 선택의 폭은 훨씬 커질수 있을
것이다.

좌우익의 논쟁은 체제선택의 문제와 직결되며 체제선택의 문제는 우리들의
삶의 양식, 존재양식을 결정짓게 된다.

따라서 국민들은 이 사회에 기반을 둔 어느정당이든, 또 지도층에 있는
어떤 사람이든 그가 어떤 이념을 갖고 이 사회를 이끌어갈 것인지 예의
주시해야 한다.

급진과 보수를 가르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좌우익을 분명히
가려내는 일이다.

이번 총선의 입후보자 가운데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내결고
속으로 체제전복을 꾀하는 위장전술에 능한 정치인이나 정치지망생은 없는지
국민들의 날카롭고 현명한 판단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