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뿌리는 한국동란 후 제3국을 선택한 12명의 반공포로.
이후 62년 양국 수교와 함께 이민협정이 체결되고 65년 한인 22가구가
네덜란드 화물선을 타고 부에노스아이레스 항에 도착, 라 마르케 농장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인 이민 시대가 열렸다.
82년까지 5천여명에 불과하던 교민은 아르헨티나 정부가 83년부터 87년말
까지 3차례에 걸쳐 불법 체류자 사면령을 내리고 85년 "이민송출 및 접수
절차에 관한 의정서"가 체결돼 투자이민시대가 열리면서 급증했다.
88년 3만9천명에 달했던 교민인구는 89년부터 현지의 경제난을 견디다 못한
교포들이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 제3국이나 한국으로 재이주 또는 역이민
하는 현상이 나타나 1만명 가량이 빠져나갔다.
교민의 90%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지만 멀리는 아르헨티나 남단에서
북으로는 볼리비아 인접 국경도시에까지 분포돼 있다.
수도권 거주교민들은 대부분 시 외곽의 코보가 건너편의 판자촌 지역에
살고 있는데 교민사이에서는 이 지역을 버스노선 번호(109)를 따서 백구촌
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 외에 사업에 성공한 일부교민들은 시내 중심지로 이동하여 상업활동을
하고 있다.
수도권지역에는 24개의 한인교회와 1개의 성당이 자리잡고 교민들에게
만남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이민초기 농장일에 종사했던 교민들은 경험과 장비부족 등으로 실패한 후
현재 80% 이상이 의류판매업에 종사하고 있다.
최근 4-5년 사이에는 교민의 직업도 다양화돼 식품과 제과업 양봉 슈퍼마켓
여행사 대형 도소매업에까지 진출했으며 앞으로는 더욱 세분화될 전망이다.
제조업 분야에 종사하는 교민은 극소수인데 이들은 지난 87년부터 주로
지방산업공단에 입주해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 이들 교민들은 이번 메넴 대통령의 방한으로 현지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양국간 경제교류가 활성화돼 교민들의 지위가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혁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