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광복50주년, 한-일수교3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림대의 지명관교수(70)에게 올해가 주는 의미는 그래서 더욱 무게가
있다.
지교수는 60년대중반 월간지 사상계를 이끌면서 한일수교회담에 대해 일관
되게 비판적인 논리를 제공했다.
지교수는 올해부터라도 양국수교이후 30년간의 한일관계를 재조명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 30년동안의 양국관계를 실증적으로 연구 평가해야만 앞으로의 한일
관계, 나아가 미래의 동북아관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립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교수는 지난 72년10월 도쿄대에서 일본근대정치사상사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뒤 김대중납치사건 등과 관련, 해외에서 민주화세력을 지원해 달라는
WCC(세계교회협의회)의 건의를 받아들인게 93년4월까지 일본에 머무르게된
계기가 됐다.
도쿄여대 교수생활을 마치고 귀국한뒤 크리스찬아카데미와 손잡고 94년
4월부터 계간잡지 ''대화''를 발간하고 있다.
또 같은해 3월에는 한림대 과학원교수를 맡으면서 이대학 부설 일본학
연구소도 이끌고 있다.
-오랜 일본 생활로 고국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 지교수 =일본음식에 젖은 탓인지 귀국하고 2년이 지나도록 한국음식에
익숙하지못해 애를 먹고 있지요.
20년이상 다다미생활을 했기때문에 지금도 온돌방에서는 잠을 이룰수가
없어요.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현재 활동중인 국내 지식인사회와 단절됐다는
점이 가장 아쉽습니다.
지식인은 본래 혼자서는 지적발전을 이룰수가 없는 법이지요.
60년대중반 사상계주간시절만해도 우리 지식인그룹과 친하게 지내
새로운 정보,새로운 지식에 대한 교류가 활발했지요.
오랜 공백기를 가졌기때문에 귀국후에는 지적인 활동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문제를 안게된 셈이지요.
-고국에 돌아와서 우리나라의 어느부문이 가장 많이 변화했다고
보셨는지요.
<> 지교수 =물론 경제분야입니다.
김포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길에 자동차홍수를 보면서 우리도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에 가까워졌구나하는 감회가 앞서더군요.
귀국해서 많은 기업인 전문경영인들을 만났는데 한국경제가 이만큼
발전하게된 것은 상당부분 기업인 몫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기업을 경영하는 분들이 국제적인 환경변화를 이해하고 이에
기민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새해를 맞아 특별히 구상하고있는 계획이 있다면.
<> 지교수 =94년한햇동안 한림대에서 일본의 정치와 경제를 강의했지요.
하지만 올해는 일본학연구소의 일이 너무 많아서 강의를 맡을수
없을것 같네요.
일본학연구소는 오는11월3일에 동북아평화와 한일협력체제의 모색이라는
주제로 한일심포지엄을 개최할 계획입니다.
이 심포지엄에는 일본측에서 시바리 오타로(소설가) 후나바시 오이치(아사히
신문 미주총국장) 모리시마 미치오(런던대 명예교수)같은 쟁쟁한
사람들이 참여할 예정입니다.
-수교30년 광복반세기를 맞았지만 한일관계는 종군위안부문제등
미결과제로 인해 여전히 껄끄러운 상태입니다.
전후 두나라사이의 관계변화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 지교수 =한일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것은 기본적으로 양국국민속에
존재하는 부정적 시각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들은 "한국이 앞으로 얼마나 발전하겠느냐"하는 식의 대한차별의식을
갖고있지요.
한국인들도 "일본은 영원한 적"이라는 의식을 저변에 깔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국이 오늘날의 독.불관계처럼 진정한 동반자관계를 이룩하지
못한데는 양측지도자의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없었기때문입니다.
일본지도자들은 지금까지 한국을 장래의 파트너로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했지요.
과거문제를 청산한뒤 두나라사이의 협력관계를 강화해서 새로운
동북아질서를 구축해나가겠다는 정치적 비전이 전혀 없었지요.
일본에서 미래를 투시하는 탁월한 지도자만 나왔어도 오늘날 한일관계의
개운치못한 부분인 강제연행문제라든가,종군위안부문제는 이미 해결됐으리라
고 봅니다.
과거사에 대한 사과문제만 봐도 일본지도자들의 대한의식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한일수교이후 호소카와전총리에 이르기까지 일본지도자들의 대한사과는
그정도가 심화돼온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일본지도자들이 이념적 근본적으로 과거에 대한 자성위에서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으로는 보고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국력이 상승하면서 양국의 경제관계가 발전됨에 따라 일본의
대한사과도 깊이를 더했다고 봐야지요.
일본지도자들은 타산적 현실적으로만 한국에 접근하는 것일뿐 역사적관점에
서 장래를 감안해 한국의 요구에 응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일본에서는 지금 "일본이 한국을 싫어하는 이유"같은 유의 책들이
많이 팔리는등 이른바 혐한론이 구조화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지요.
두나라관계는 세대가 바뀌고 있음에도 상호불신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경향입니다.
한일간 상호 불신의 근본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지교수 =양국 국민사이에 잠재적이건 의식적이건 적대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점때문에 한일관계가 앞으로 더 어두워지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과거사에 대한 지적 인식의 청산에는 한세대가
걸리지만 잠재적 의식까지 청산하려면 3세대이상이 소요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일양국 국민의 잠재의식속에 남아있는 적대감 청산에는 앞으로도
상당한 세월을 기다려야겠지요.
-일본은 요즘 가요 영화 만화등 일본문화에 대한 우리측 시장개방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국민여론은 한편에서는 일본의 저질문화.왜색풍조의 유행을
우려해서 양국문화교류에 반대하는가하면 다른편에서는 극일을 위해선
지일이 필요하다면서 일본문화에 대한 시장개방을 반대하지않고
있지요.
<> 지교수 =일본문화에 대한 시장개방문제가 제기될때마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게 있어요.
"문화"에 대한 시장개방이 아니라 문화"상품"에 대한 개방이라는
점입니다.
상품으로서의 일본문화를 받아들이는데 대해서는 두가지 관점에서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일본의 대중문화가 강한 에로티즘의 성격을 띠고 있어 개인의
윤리감각을 마비시킨다는 점입니다.
건전한 문화교류는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겠지만 이같은 저질문화의
유입을 거부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일본의 대중문화는 또 개인을 몰각시키고 집단만을 강조한다는
특색이 있지요.
다음으로 일본문화의 무절제한 수용이 대일무역역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일본문화에 대해 시장을 열면 일본은 거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무차별적으로 우리시장을 잠식할게 확실하지요.
-경제대국 일본이 앞으로 정치대국.군사대국을 지향하리라는 우려가
점점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일본의 평화헌법조항이 조만간 개정될 것으로 보시는지..
<> 지교수 =일본이 과거처럼 제국주의시대의 확장정책을 전개할
것으로는 보지않습니다.
일본지도층가운데 만에 하나라도 과거의 환상에 젖어있는 사람들을
도태시키기 위해서라도 한일간에 양식있는 사람들의 교류를 활발하게
추진해야합니다.
일본이 조만간 평화헌법조항을 개정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본의 평화헌법조항은 세계전쟁에 또다시 휘말려선 안된다는 패전국의식에
서 출발한 것입니다.
일본은 지금까지 평화헌법에 기초한 전방위외교로 자국의 경제이익을
극대화했기 때문에 경제적 이익을 희생시키면서까지 평화헌법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국제정치전문가들은 21세기를 본격적인 세계화시대로 점치고 있습니다.
일본은 앞으로 세계의 단일시장화 단일국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으로
보십니까.
<> 지교수 =일본은 이미 경제적인 세계화는 달성한 셈이지요.
이에따라 자국의 경제적 위상에 걸맞는 국제정치적인 리더십도 갖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세계적 리더십을 발휘할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국제적인 영향력면에선 매우 취약하다고 말할수 있겠지요.
이는 일본인자신이 사상적인 능력이라든가 세계사적인 안목이 결여됐기
때문입니다.
-김일성사망이후 북한의 변화가 대외적으로도 가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북한.일본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진전될 것으로 예측하는지요.
<> 지교수 =결론부터 말한다면 북한.일본관계의 개선은 단기적으로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양측간에는 이은혜문제를 비롯해서 재일교포북송관련 일본인처문제등
관계개선에 장애가 되는 요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일본정부가 이 문제들을 덮어둔채 양측관계를 급진전시키기에는
일본국민들의 대북한 여론이 몹시 부담이 될 겁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