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에코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다노모는 나직이 한숨을
한번 쉰 다음 말을 이었다.

"심지어는 비겁한 놈이라고 욕설까지 하고 있소. 나는 결코 비겁한 놈이
아니오. 우리 아이즈번의 명맥을 유지하고 무고한 번민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전쟁을 반대했던것 뿐이오"

"여보, 나는 당신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요"

"고맙소. 그러나 당신이 이해해 주는 것으로 내 명예가 회복되는 건 아니
잖소. 그래서 나는 기왕 이렇게 전쟁이 벌어진 마당이니 기꺼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했소. 결코 내가 죽음이 두려워서 전쟁을 반대한게 아니라는
걸 떳떳이 보여주어 명예를 회복할 작정이오"

"알았어요. 여보 나도 당신의 뒤를 기꺼이 따르겠어요"

"음-"

"종소리가 울려도 우리는 성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 우리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결코 비겁하지가 않다는 걸 보여줘야지요. 그러니까 우리 일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마시고 당당히 싸워서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세요"

"아-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되고 말았나. 내 주장대로 되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여보, 이제 그런 얘기 그만해요"

지에코는 두 눈에 눈물이 핑 고여오르는 얼굴을 다시 남편의 품안에다가
묻었다.

"알았소. 당신 참 장한 여자구려"

다노모는 품안에 얼굴을 묻은 그녀를 지그시 힘을 주어 끌어안았다.

그 이튿날 지에코는 시어머니인 리쓰코에게 그 사실을 얘기했다. 며느리로
부터 얘기를 들은 시어머니는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고 있었다.

"나무관세음보살-"

"어머님 어떻게 하시렵니까?"

"어떻게 하다니 네가 그렇게 결심을 했다면 나도 따를수 밖에..."

"정말 고맙습니다. 어머님"

"고맙기는... 그 말은 오히려 내가 너에게 해야 될 말인걸. 네가 정말
장하다. 그래, 우리 기꺼이 도노모의 명예를 위해서, 그리고 가문을 빛내기
위해 같이 죽자꾸나"

"어머님-"

지에코의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고여오르더니 주르르 두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나무아미타불- "

시어머니도 절로 코안이 시큰해지는듯 얼른 손수건을 꺼내어 콧물을
훔쳤다.

며느리는 서른네살이었고, 시어머니는 쉰여덟 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