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지평선은 동그란 모양인가요?”

아이들과 블랙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블랙홀 안에 존재한다는 ‘사건의 지평선(The Event Horizon, 혹은 The Point of No Return)’이 화두가 되었다. 그 안에 존재하는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공간은 동그란 모양이 아니겠냐는 아이의 물음에,

“지평선이니까 평평한 모양에 가깝지 않을까?”

그렇게 대답해 놓고는 눈썹을 움찔거리며 갸웃거렸다. 사실 그동안은 어느 유명 가수의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노래만 흥얼거렸지, 실제 사건의 지평선이 어떤 형태를 띠는지 진지하게 떠올려 본 적이 없던 터였다. 몇 가지 자료를 찾아본 뒤, 나는 당황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 내부에서 일어난 어떠한 사건도 외부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경계면을 지칭하는 단어이므로*, 사실 ‘선’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선이 아니었다. 블랙홀의 모양이 축구공에 가까운 형태라면, 그 안의 경계면, 즉 사건의 지평선 역시 둥글게 감싸진 모양에 더 가깝다는 것이었다.

태양의 떠오르는 지평선을 떠올리며 막연하게 그러한 형상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오히려 ‘지평선’이라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몰랐던 아이들은 블랙홀 자체의 형상에 더 초점을 맞추어 상상해 냈다.
사건의 지평선 (블랙홀을 둘러싼 청록색 원) / 출처. 나사의 과학 시각화 스튜디오(NASA Scientific Visualization Studio) 홈페이지 캡쳐
사건의 지평선 (블랙홀을 둘러싼 청록색 원) / 출처. 나사의 과학 시각화 스튜디오(NASA Scientific Visualization Studio) 홈페이지 캡쳐
아직 지구본으로 공놀이하고 관성의 법칙을 배우는 시간에도 팽이만 줄기차게 돌리다 돌아오는 아이들이지만, 가끔 툭 던지는 질문 하나가 어른보다 더 정확하고 날카로울 때가 있다.

아이들은 답을 먼저 찾기보다 왜 그런지를 먼저 묻는다. 직감적으로 생각하며 눈앞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안의 세상을 궁금해한다. 어른들이 선입견에 갇혀 사고하는 사이, 아이들은 더 자유롭게 상상하고 더 넓게 연결한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지식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질문의 방향이 사고를 더 확장하게 한다는 것을 실감하곤 한다.

2026년 수학능력시험에서 크게 대두되었던 ‘비문학’.
언어영역에서 칸트와 물리를 이야기하고, 철학과 과학의 개념이 한 지면에 나란히 등장했다. 공들여서 갈고 닦아야 할 과목이 산재한 수험생들에게는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사유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불안하고, 불필요한 노력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막상 시험 시간이 닥치면 생각지도 못했던 분야의 지문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그제야 책을 더 읽어야 했나라는 자책이 뒤늦게 따라온다.
[좌] 스티븐 호킹 『Black Holes: The Reith Lectures』/ 출처. amazon [우] 블랙홀 주위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상인 '스파게티화' / 출처. Wikimedia Commons
[좌] 스티븐 호킹 『Black Holes: The Reith Lectures』/ 출처. amazon [우] 블랙홀 주위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상인 '스파게티화' / 출처. Wikimedia Commons
2016년 1월, BBC 리스 강연(Reith Lecture)에서 스티븐 호킹은 ‘사건의 지평선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If you fell into an extremely large black hoe,
you would reach the hole, you would reach the horizon without difficulty.
만약 당신이 엄청나게 큰 블랙홀로 떨어진다면,
당신은 큰 어려움 없이 사건의 지평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스티븐 호킹(BBC 리스 강연에서)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에 존재하는 강력한 중력으로 인해 발을 넣자마자 사건의 지평선에 도달하기도 전에 스파게티처럼 늘어나 버릴 것이라고 연설했다. 하지만 블랙홀을 ‘탐험’하고 사건의 지평선까지 실제로 도달해 보고 싶다면, 작은 블랙홀보다 큰 블랙홀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아주 큰 블랙홀에서는 중력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이론적으로는 사건의 지평선에 도달할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좁은 휠체어에서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블랙홀 안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던 스티븐 호킹 박사의 능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끈질긴 사고가 결국 광활한 우주의 한 부분을 이해하는 초석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아직 세상의 언어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추측하며 자기 방식대로 그려내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사고는 확장되고,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는 넓어진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쇼츠와 AI 콘텐츠를 사이에서 아이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방식에 익숙해지기 쉽다. 알고리즘이 취향을 정리해 주고,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아이들의 사고의 과정을 대신하면서 생각은 점점 짧아지고 판단은 빠르게 굳어간다.

그러한 확증편향에 갇힌 사고와 나의 알고리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결국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 질문과 답을 위해서는 그 사고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천문과 과학, 경제와 인문이 연결되는 비문학의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이 세상은 매우 복잡한 사람들과 복잡한 일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이 세상을 끝까지 이해하려는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한다.
글. Marion Dane Bauer, 그림. Ekua Holmes 『The Stuff of Stars』 - 과학과 예술을 완벽하게 조화시킨 이 그림책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그 너머의 세계를 구성하는 별이 인간과 하나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 출처. 동방북스
글. Marion Dane Bauer, 그림. Ekua Holmes 『The Stuff of Stars』 - 과학과 예술을 완벽하게 조화시킨 이 그림책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그 너머의 세계를 구성하는 별이 인간과 하나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 출처. 동방북스
글. 미네시게 신, 그림. 구라베 교코 『블랙홀이 뭐예요?』 - 블랙홀에 대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쉽고 명료하게 설명한 그림책이다. / 출처. 알라딘
글. 미네시게 신, 그림. 구라베 교코 『블랙홀이 뭐예요?』 - 블랙홀에 대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쉽고 명료하게 설명한 그림책이다. / 출처. 알라딘
글. 김지현, 그림. 김주경 『별가족 블랙홀에 빠지다』 - 별의 탄생과 죽음, 길잡이 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블랙홀까지 우주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하는 유쾌한 그림책이다. / 출처. 알라딘
글. 김지현, 그림. 김주경 『별가족 블랙홀에 빠지다』 - 별의 탄생과 죽음, 길잡이 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블랙홀까지 우주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하는 유쾌한 그림책이다. / 출처. 알라딘
결국 비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글을 많이 읽는다기보다 세상을 이해하려는 지성과 인성을 키운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 과학 그림책은 좋은 시작점이 된다. 아이들과 함께 과학 그림책을 읽는 일은, 사건의 지평선처럼 닫혀버린 사고의 경계 바깥으로 한발 더 나아가는 연습이 될 수 있다.

박효진 길리북스 대표


[출처]

* '사건의 지평선' 정의 : 참고 페이지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