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중견 기업 사장 수행비서인 K과장.그는 지난 22일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세수를 하는둥 마는둥 하고 택시를 잡았다. 사장 집으로 향하면서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기사가 제 시간에 도착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사장 집에 도착한 것은 새벽 4시50분.오늘은 사장이 지방지사를 방문하는 날이다. 새벽 운동을 거른 '어른'은 곧장 경북 구미지사로 이동했다. 구미로 가는 차안에서 K과장은 해당 부서에서 만든 구미지사 현황자료를 움켜 쥐었다. 행여 사장께서 물어오시면 곧장 답하기 위해서다. 아니나 다를까. 사장은 구미지사의 가장 큰 현안이 무엇인 것 같냐고 물어왔다. "제가 대답할 성질이 아닌 것 같다"고 말을 뗀 뒤 사전에 파악한 문제점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이런저런 질문에 답하기를 3시간여.어느덧 구미지사가 가까워졌다. K과장은 휴대폰을 꺼내 지사장에게 '도착 10분 전'이란 메시지를 넣었다. 원활한 의전을 위해서였다. 지사장의 영접을 받고 사장은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갔다. 담배를 한 대 피운 K과장은 본사 전무에게 전화를 했다. "사장님께서 잘 도착하셔서 지금 업무보고를 받고 계신다"고.전무는 "기분이 어떠신것 같으냐"고 물어왔다. "괜찮으신 것 같다"고 답하자,"수고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장은 곧바로 대구지사로 향했다. 시간은 10시 조금 넘은 시간.11시부터 거래처 사장들과 미팅이 예정돼 있었다. K과장은 차안에서 '사장님 인사말씀'을 건넸다. "거래처 사장이 70명쯤 참석할 예정이고 질문도 하기로 돼 있다"는 말과 함께.

대구지사 미팅은 성공적이었다. 오찬까지 함께하면서 사장은 꽤 만족해 했다. 구내식당에서 기사와 점심을 때운 K과장은 잠깐 눈을 붙였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어댄다. 본사였다. 대구지사 방문이 어떻게 돼 가는지 왜 보고를 안 하느냐고 다그쳤다.

오후 일정은 대전지사 방문.새벽 5시에 일정을 시작한 사장은 지친 기색이 없다. K과장도 졸린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서울에 다시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곧장 저녁약속장소로 이동하면서 본사에서 보낸 그날의 주요 업무를 보고했다. 저녁약속이 끝났다고 일과가 끝난 건 아니었다. 직원상가에 사장이 가시겠다고 하셔서 다시 부랴부랴 부의봉투를 만들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사장이 집에 들어간 시간은 자정 무렵. K과장의 일과도 끝을 맺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