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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은서 기자
    구은서 기자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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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신문 문화부에서 문학과 종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연상이 내 취향인데, 이젠 없어"…웃음꽃 피어나는 日 노인들의 詩

    몸이 불편해 병원을 찾은 일본 노인. 그는 의사로부터 나이가 많아서 그렇다는 소리를 듣는다. 여든세 살의 마쓰우라 히로시 씨는 집에 돌아와 그런 의사를 향해 “늙은 게 무슨 병명이라도 되냐”고 되묻는 글을 혼자서 써본다. ‘연세가 많으셔서요/ 그게 병명이냐/ 시골 의사여.’최근 국내 출간된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사진)은 이 같은 일본 노인들의 센류(川柳)를 모은 책이다. 일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가 2001년부터 매년 개최해온 ‘실버 센류’ 공모전 수상작 중 88수를 엄선했다. 센류는 일본의 짧은 정형시 중 하나다. 5-7-5 총 17개 음으로 구성되며 풍자나 익살을 담아내는 게 특징이다. 출판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일본 노인의 센류 모음집이 출간된 건 처음이다.‘연상이/ 내 취향인데/ 이젠 없어’(야마다 요우·92세) ‘이봐, 할멈/ 입고 있는 팬티/ 내 것일세’(시무타 겐지·60세) ‘종이랑 펜/ 찾는 사이에/ 쓸 말 까먹네’(야마모토 류소·73세) 등 노인들의 꾸밈없는 일상이 녹아든 센류를 읽다 보면 웃음이 터져 나온다. 공모전 수상작들의 실버 센류 시집 시리즈 누적 판매량이 90만 부에 달하는 이유다.책은 초고령사회 일본의 풍경도 보여준다. ‘일어나긴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요시무라 아키히로·73세)거나 ‘환갑 맞이한/ 아이돌을 보고/ 늙음을 깨닫는다’(네헤이 히로요시·54세)는 모습이 그렇다.서선행 포레스트북스 편집자는 “몇 년 전 일본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뒤 우리 독자들에게 꼭 소개해보고 싶었다”며 “노인들의 소소한 일상 속 철학과 관조를 통해 나이 들어가는 게

    2024.01.14 18:38
  • [책마을] "대도시 빼놓고는 모두가 텅텅비는 세상을 준비해야"

    “대한민국은 완전 망했네요, 와우!”백발의 외국 학자가 머리를 감싸쥐며 이 말을 비명처럼 외치는 영상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가 한국 방송사와 인터뷰하다가 ‘한국의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는 말을 듣고 보인 반응이다. 올해 합계출산율은 0.7명 선이 깨지며 0.68명을 기록할 전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윌리엄스 교수는 뭐라고 외칠까.그런데 앞으로 인구, 도시, 경제 규모가 쪼그라드는 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축소되는 세계>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세계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라며 성장의 시대에 종언을 고한다. 인구가 고령화되고,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거꾸러지며, 줄어드는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치열해지는 ‘축소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저자 앨런 말라흐는 중국 난징 동남대의 도시 계획 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인 도시 계획 전문가다. 그는 쐐기를 박듯 덧붙인다. “한 번 인구가 감소한 나라는 다시 그 수준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인구 감소 추세는 ‘끈적끈적하다(sticky)’라고도 표현하는데, 이는 한국과 일본 대만처럼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국가는 그 추세를 바꾸기 힘들 것이라는 말이다.인구통계학적 추세와 더불어 ‘이주’도 눈여겨볼 키워드다. 이주는 총인구 절대값을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특정 도시의 축소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주는 도시의 인구 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사회적 및 경제적 측면에서 도시의 근본적인 구성을 바꿔놓는다.”책은 2050년의 세계와 경

    2024.01.12 18:44
  • [책마을] "엄마, 고백할 이야기가 있어요"

    누구에게나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 비밀이 하나쯤은 있다. 엄마에게 상처를 줄까 봐, 내 상처를 끄집어내게 될까 봐…. 나와 한때 한몸이던,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타인’ 엄마이기에 오히려 나누지 못하는 대화들이 있다.최근 국내 출간된 <엄마와 내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은 작가 15명의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 비밀’ 혹은 ‘엄마와 이야기하지 않는 나의 상처’에 대한 고백을 담았다. 단순히 신변잡기적인 글이라면 굳이 독자들이 이들의 글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엄마와 내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대담하고 진솔한 고백은 모성 신화 반기로 이어진다. 그 어떤 엄마도 완벽하지 않고, 모든 자식이 엄마와 이상적 관계를 맺는 건 아니다.영국 가디언미디어그룹이 매주 일요일 발행하는 옵서버는 이 책에 대해 “우리가 왜 ‘모성 신화’로 눈을 가린 채 어머니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각양각색의 복잡한 인간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지 묻는다”고 평했다.구은서 기자

    2024.01.12 18:12
  • “대도시 빼놓고는 모두가 텅텅비는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 [책마을]

    "대한민국은 완전 망했네요, 와우!" 백발의 외국 학자가 머리를 감싸쥐며 이 말을 비명처럼 외치는 영상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가 한국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다가 '한국의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는 말을 듣고 보인 반응이다. 올해 합계출산율은 0.7명 선이 깨지며 0.68명을 기록할 전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윌리엄스 교수는 뭐라 외칠까.그런데 앞으로 인구, 도시, 경제 규모가 쪼그라드는 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국내 출간된 <축소되는 세계>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세계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라며 성장의 시대에 종언을 고한다. 인구가 고령화되고,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거꾸러지며, 줄어드는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치열해지는 '축소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저자 앨런 말라흐는 현재 중국 난징 동남대의 도시 계획 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인 도시 계획 전문가다. 그는 쐐기를 박듯 덧붙인다. "한 번 인구가 감소한 나라는 다시 그 수준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인구 감소 추세는 '끈적끈적하다(sticky)'하다고도 표현하는데, 이는 한국이나 일본, 대만처럼 현재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국가는 그 추세를 바꾸기 힘들 것이라는 말이다.인구통계학적 추세와 더불어 '이주'도 눈여겨볼 키워드다. 이주는 총인구 절대값을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특정 도시의 축소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주는 도시의 인구 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사회적 및 경제적 측면에서 도시의 근본적인 구성을 바꿔놓는다."책은 2050년의

    2024.01.12 14:45
  • "연상이 내 취향인데, 이젠 없네"…일본 포복절도한 노인들의 詩

    '연세가 많으셔서요'그게 병명이냐시골 의사여몸이 불편해 찾은 병원. 노인의 증상을 듣더니 의사는 "연세가 많으셔서 그렇다"고 답한다. 여든세 살의 마쓰우라 히로시 씨는 집에 돌아와 그런 의사를 향해 "늙은 게 무슨 병명이라도 되냐"고 되묻는 글을 혼자서 써본다. 고작 세 줄의 시인데 웃음과 공감, 애잔함까지 자아낸다.최근 국내 출간된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은 이 같은 일본 노인들의 센류(川柳)를 모은 책이다. 센류는 일본의 정형시 중 하나로, 5-7-5 총 17개 음으로 된 짧은 시를 뜻한다. 풍자나 익살을 담아내는 게 특징이다. 출판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일본 노인들의 센류 모음집이 출간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이 책은 일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가 2001년부터 매해 개최해온 '실버 센류' 공모전 수상작 중 88수를 엄선했다. 공모전 수상작들은 일본에서 시리즈로 출간됐는데, 시리즈 누적 판매량이 90만부에 달한다."연상이/내 취향인데/이젠 없어"(야마다 요우·92세) "이봐, 할멈/입고 있는 팬티/내 것일세"(시무타 겐지·60세) "종이랑 펜/찾는 사이에/쓸 말 까먹네"(야마모토 류소·73세) 등 노인들의 꾸밈없는 일상이 녹아든 센류를 읽다보면 웃음이 터져나온다.책은 '먼저 온 미래' 초고령사회 일본의 풍경을 보여준다. "일어나긴 했는데/잘 때까지 딱히/할 일이 없다"(요시무라 아키히로·73세)거나 "환갑 맞이한/아이돌을 보고/늙음을 깨닫는다"(네헤

    2024.01.11 09:19
  • 도둑맞은 창의력…베스트셀러 표절 '점입가경'

    <도둑맞은 집중력>과 <벌거벗은 정신력>. 마치 쌍둥이 같다. 저자가 같고, 제목과 표지 디자인, 글씨체조차 비슷해 언뜻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시리즈처럼 보이는 두 책은 사실 전혀 다른 출판사의 책이다.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이 출판사 어크로스를 통해 지난해 국내 출간돼 베스트셀러로 주목받자 최근 쌤앤파커스에서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을 비슷한 표지로 홍보한 것이다. “디자인 표절이다” “독자들의 오해를 부른다”는 독자와 업계 관계자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뒤늦게 쌤앤파커스는 이를 사과하고 해당 표지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쌤앤파커스 측은 10일 한국경제신문에 “요한 하리의 <벌거벗은 정신력> 출간 소식을 소셜미디어에 홍보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표지 이미지를 사용했다”며 “해당 표지는 확정 전 가안으로, 어크로스 출판사와 디자이너에게 사과하고 책에는 다른 표지를 입힐 예정”이라고 설명했다.앞서 쌤앤파커스는 ‘이달 중 <벌거벗은 정신력>을 출간한다. 이 책을 먼저 읽어볼 서평단을 모집한다’며 소셜미디어에 표지 사진 등을 올렸다. 해당 표지 디자인이 어크로스 출판사의 <도둑맞은 집중력>과 판박이라서 논란이 일었다. 어크로스 측과 사전 협의는 없었다. 김형보 어크로스 대표는 “지난 9일 쌤앤파커스 측에 공식 항의했고 당시에는 ‘이미 확정된 표지라 내부 논의가 필요하다’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언론 취재가 시작되고 논란이 일자 쌤앤파커스는 소셜미디어 공식 계정에서 홍보글을 모두 삭제했다.심지어 이 책은 신간도 아니다. 원서 <로스트 커넥션(Lost Connections)>은 2018

    2024.01.10 18:44
  • NCCK 100주년..."제2의 88선언 준비할 것"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88선언'의 뒤를 잇는 한국기독교 사회선언(가칭)을 발표하기로 했다. 1988년 NCCK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회 선언(88선언)'은 분단 이후 기독교계의 첫 평화통일 선언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올해 한국교회 100대 방문지, 100대 인물도 선정해 공개한다.김종생 NCCK 총무(목사)는 10일 서울 광화문에서 신년 기자 간담회를 갖고 "올해 100주년을 맞아 어떻게 그간의 역사,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미래를 구상해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88선언에 버금가는 메세지를 던질 수 있도록 바라며 사회선언도 계획 중"이라며 "톱다운 방식, 엘리트 중심의 어젠다 설정이 아니라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NCCK는 에큐메니컬(교회 일치 운동) 정신에 따라 1924년 9월 24일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로 창립된 교회들의 협의체다.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한국구세군,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한국정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기독교한국루터회 등 9개 회원교회와 와 기독교방송(CBS), 대한기독교서회,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YWCA연합회,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등 5개 연합기관, 14개의 지역교회협의회(강원, 경기중부, 광명, 광주, 대구, 대전, 부산, 순천, 전남, 전남동부, 전북, 제주, 충남, 충북)가 NCCK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NCCK는 올해 100주년을 맞아 '생명의 하나님, 사랑으로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를 주제로 핵심 사업을 준비 중이다.상반기 중에 '한국교회 100대 방문지'와 '한국교회 100대 인물'을 선정

    2024.01.10 17:50
  • 이렇게 베껴도 되나… 출판계 베스트셀러 묻어가기 점입가경

    <도둑맞은 집중력>과 <벌거벗은 정신력>. 마치 쌍둥이 같다. 저자가 같고, 제목과 표지 디자인, 글씨체조차 비슷해 언뜻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시리즈처럼 보이는 두 책은 사실 각기 다른 출판사의 책이다.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이 출판사 어크로스를 통해 지난해 국내 출간, 베스트셀러로 주목받자 최근 쌤앤파커스에서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을 비슷한 표지로 홍보한 것이다. "디자인 표절이다" "독자들의 오해를 부른다"는 독자들과 업계 관계자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쌤앤파커스는 이를 사과하고 해당 표지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쌤앤파커스 측은 10일 한국경제신문에 "요한 하리의 <벌거벗은 정신력> 출간 소식을 소셜미디어에 홍보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표지 이미지를 사용했다"며 "해당 표지는 확정 전 가안으로, 어크로스 출판사와 디자이너에게 사과하고 책에는 다른 표지를 입힐 예정"이라고 설명했다.최근 쌤앤파커스는 '이달 중 <벌거벗은 정신력>을 출간한다. 이 책을 먼저 읽어볼 서평단을 모집한다'며 소셜미디어에 표지 사진 등을 올렸다. 해당 표지 디자인이 어크로스 출판사의 <도둑맞은 집중력>과 판박이라서 논란이 일었다. 지난 9일 어크로스와 디자이너는 쌤앤파커스 측에 공식 항의했다.이 책은 신간도 아니다. 원서 <Lost Connections>는 2018년 출간됐고 같은 해에 쌤앤파커스에서 <물어봐줘서 고마워요>라는 제목으로 이미 국내 출간됐다. <도둑맞은 집중력>이 화제가 되자 표지갈이만 해서 다시 내는 셈이다. 제목은 또 다른

    2024.01.10 11:01
  • 엄마 놀라지마,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놓을게 [책마을]

    누구에게나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 비밀이 하나쯤은 있다. 엄마에게 상처를 줄까봐, 내 상처를 끄집어내게 될까봐…. 나와 한때 한몸이었던,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타인' 엄마이기에 오히려 나누지 못하는 대화들이 있다. 최근 국내 출간된 <엄마와 내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은 15명의 작가들의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 비밀' 혹은 '엄마와 이야기하지 않는 나의 상처'에 대한 고백을 담았다.시작은 한 사람의 고백이었다. 이 책의 기획자이자 편집자인 미셸 필게이트는 2017년 유료 장문 논픽션 콘텐츠 구독 플랫폼 '롱 리즈(longreads)'에 '엄마와 내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이 글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쓴 리베카 솔닛 같은 유명 작가들이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면서 영미권에서 화제가 됐다. 이후 여러 작가들이 같은 주제의 에세이를 쓴 뒤 이를 묶어 한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단순히 신변잡기적인 글이라면 굳이 독자들이 이들의 글을 읽어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엄마와 내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대담하고 진솔한 고백은 모성 신화에 대한 반기로 이어진다. 그 어떤 엄마도 완벽하지 않고, 모든 자식이 엄마와 이상적 관계를 맺는 건 아니다.엄마란 존재는 대체로 자식에게 헌신하지만, 그도 인간이기에 이기적이거나 냉정한 얼굴을 드러낼 때도 있는 법이다. 소설가 린 스티거 스트롱은 책에 실린 '엄마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란 에세이에 이렇게 적었다. "아마 우리 모두에게는 커다랗게 갈라진 틈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믿는 '엄마', 마땅히 이래야 하고 우리에게 전부를 주어야 하는 &

    2024.01.10 10:15
  • [이 아침의 소설가] 찬사와 비판 공존…논쟁적 작가 우엘벡

    ‘사회학자가 문학상을 받다.’ 2010년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벡이 <지도와 영토>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공쿠르상을 받자 현지 언론들은 이런 제목으로 수상 소식을 전했다. 우엘벡의 소설이 동시대의 풍속과 가치관을 날카롭게 직시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책은 최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새로 출간됐다.우엘벡은 ‘프랑스 문학계의 태풍 같은 소설가’로 불린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제작으로 떠올랐다. 뜨거운 찬사와 격렬한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특유의 도발적 문체로 현대 서구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을 써왔다.예컨대 그가 2015년 출간한 <복종>은 이슬람 문화에 물든 프랑스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통령 선거를 다뤘다. ‘무슬림 지도자가 프랑스 대통령이 된다면’이란 상상을 펼쳐낸다. 그의 소설은 ‘이슬람 모독 소설’이라는 거센 반발을 샀지만, 소설이 다른 문화에 대한 혐오만 담고 있다면 논쟁거리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엘벡은 이슬람 사회의 성차별, 이슬람 난민들과 마주한 프랑스 사회의 정체성 혼란 등 현실의 논쟁점을 소설을 통해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로 꼽히는 이유다.우엘벡은 1968년생으로 전산 관련업에 종사했고 프랑스 국회 행정담당 비서로 일하는 등 여러 이력을 쌓았다.구은서 기자

    2024.01.09 17:37
  • "노래로 '종교의 벽'을 넘어 사랑 전해요"

    ‘만남중창단’은 성진 스님(불교)을 비롯해 김진 목사(개신교), 하성용 신부(천주교), 박세웅 교무(원불교)가 2022년 구성했다. 방송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처음 인연을 맺은 뒤 중창단을 꾸렸다. 지금껏 60여 차례 무대에 섰다. 공연이나 인세 수익은 소외계층을 찾아가 공연을 펼치거나 기부하는 등 사회공헌 활동에 사용한다. 이들 종교인이 대담집 <종교는 달라도 인생의 고민은 같다>를 발간하고 8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간담회(사진)를 열었다.대담집은 ‘행복’을 주제로 나눈 대화를 담았다. 구체적으로는 돈, 관계, 감정, 중독, 죽음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 같은 세부 주제를 택한 것은 오늘날 현대인이 행복한 삶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하 신부는 “충분히 감사할 만하고, 행복할 만하고, 용기를 내면 나를 위해 함께 해줄 사람이 충분히 많다는 걸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책을 냈다”고 설명했다.구은서 기자

    2024.01.08 18:47
  • 4대 종교인 모인 '만남중창단' 대담집 발간… "결혼 축가로 '사노라면' 괜찮나요?"

    "제가 결혼을 안 해봐서 하나만 여쭤볼게요. 다음주에 저희가 결혼식 축가를 할 일이 생겼는데,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과 '사노라면' 중에 뭐가 나을까요?" 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 4대 종교 성직자로 구성된 '만남중창단'에 참여하고 있는 성진 스님은 8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들을 만나자 불쑥 이런 질문부터 던졌다. 만남중창단의 대담집 <종교는 달라도 인생의 고민은 같다>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네 명의 성직자 중 둘은 평생 독신의 의무를 지켜야 하는 스님과 신부. 만남중창단은 이렇듯 노래를 통해 종교인의 한계를 넘어 세상과 끊임 없이 소통하고 있다. 2022년 결성된 만남중창단은 성진 스님(불교)을 비롯해 김진 목사(개신교), 하성용 신부(천주교), 박세웅 교무(원불교)로 구성됐다. 방송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처음 인연을 맺은 뒤 중창단을 꾸렸다. 지금껏 60여 차례 무대에 섰다. 공연 수익은 소외계층을 찾아가 공연을 펼치거나 기부하는 등 사회공헌활동에 사용한다. 성진 스님은 "종교에 관계 없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종교 관련 노래보다는 가요나 팝송을 부르자고 처음부터 다짐했다"고 했다. "BTS에 이어 국제연합(UN) 무대에 서고 싶다는 발칙한 꿈도 꾸고 있습니다.(웃음)" 이들이 최근 출간한 대담집 <종교는 달라도 인생의 고민은 같다>는 '행복'을 주제로 나눈 대화를 담았다. 구체적으로는 돈, 관계, 감정, 중독, 죽음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 같은 세부 주제를 택한 건 오늘날 현대인이 버거워하는 현실 문제인 동시에 행복한 삶에 관

    2024.01.08 15:29
  • [책마을] 새해 다짐으로 '안 해' 어때요?

    ‘새해부터는 매일 30분씩 운동하기’ ‘2024년에는 책 많이 읽어야지’.해마다 이맘때 반복되는 풍경입니다. 새해에는 뭔가를 해내겠다고, 더 열심히 살겠다고 결심하는 거죠. 어차피 1주일쯤 뒤에는 외면할 자신과의 약속이라도 말이죠.연초마다 반복해온 다짐이 스스로도 멋쩍게 느껴질 때, 거꾸로 이런 결심은 어떨까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이 문장은 1853년 발표된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 속 유명한 대사입니다. 왜 바틀비는 이토록 단호하고 불순한 문장을 내뱉었던 걸까요.소설의 화자는 변호사. 미국 월가에 번듯한 사무실을 갖고 있죠. 일이 많아 여러 명의 필경사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필경사는 예전에 문서나 책 등에 글씨를 쓰거나 문서를 베끼는 일을 하던 일종의 필기 노동자예요.일손이 모자라자 변호사는 바틀비라는 새 필경사를 고용합니다. 바틀비가 밤낮없이 일을 해대서 변호사는 기뻐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아요. 갑자기 바틀비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시작은 변호사의 지시를 가끔 거부하는 정도였는데 점차 거절이 늘어갑니다. 우체국 심부름도, 서류 묶는 사소한 잔업도, 퇴근도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해요. 급기야 본업인 필사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변호사는 바틀비를 해고해요. 그것조차 바틀비는 거부합니다. 사무실 밖 현관을 차지하고 떠나지 않습니다. 변호사는 사무실을 옮기기로 합니다. 시간이 흘러 변호사는 건물 주인이 바틀비를 부랑자로 신고해 교도소로 보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바틀비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합니다.바틀비는 대체 왜 그랬

    2024.01.05 18:45
  • [책마을] 1초, 1분, 1년의 시간은 누가 정의한 질서인가

    시간은 인류가 창조한 질서다. 2024년 1월 1일에 떠오른 태양은 전날의 태양과 같지만, 인간만이 새해 새날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돋이 명소로 몰린다. 인간 사회는 시간이라는 단위를 측정하고 관리하기에 비행기와 기차는 약속된 시간에 맞춰 떠나고, 사람들은 시계를 수시로 들여다보며 하루 일정을 가늠한다.최근 국내 출간된 <1초의 탄생>은 해시계부터 원자시계까지 시간 측정의 역사와 그것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물리학자가 쓴 책이지만 과학책 그 이상이다. 과학기술과 인류 문명의 발전사가 시간을 주제로 자연스럽게 포개진다.저자인 채드 오젤 미국 유니온칼리지 교수는 “시간 측정의 역사에는 과학기술에 관한 추상적 이야기만이 아니라 정치와 철학의 매우 흥미로운 요소도 포함돼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을 감수한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역시 “시간의 측정은 과학이지만 시간의 약속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라고 말했다.시간은 1초 단위에서 계절, 1년으로 확장된다. 1~2장에서 책은 지구 자전축과 계절, 지구의 공전 주기와 별자리 관계 등 과학적 기초 사실을 먼저 짚은 뒤 3장 ‘자연의 시간 vs. 사회적 시간’을 통해 시간 측정이 인류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다양한 일화를 통해 보여준다.1752년 영국 의회는 9월 2일 바로 다음 날을 9월 14일로 한다는 법령을 가결했다. 11일이 통째로 사라진 것. 율리우스력을 써오다가 그레고리우스력으로 역법 개혁을 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지주들은 19일 만에 한 달 치 임대료를 요구하고, 고용주는 11일에 대한 급료를 지급하지 않는 등 나라 곳곳이 혼란에 빠졌다.책은 기본적으로 시간 측정에

    2024.01.05 17:28
  • 9월 2일 바로 다음 날이 9월 14일이라면 [책마을]

    시간은 인류가 창조한 질서다. 2024년 1월 1일에 떠오른 태양은 전날의 태양과 같지만, 인간만이 새해 새 날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돋이 명소로 몰린다. 인간 사회는 시간이라는 단위를 측정하고 관리하기에 비행기와 기차는 약속된 시간에 맞춰 떠나고, 사람들은 시계를 수시로 들어다보며 하루 일정을 가늠한다.최근 국내 출간된 <1초의 탄생>은 해시계부터 원자시계까지 시간 측정의 역사와 그것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물리학자가 쓴 책이지만 과학책 그 이상이다. 과학기술과 인류 문명의 발전사가 시간을 주제로 자연스럽게 포개진다.저자인 채드 오젤 뉴욕주 스키넥터디의 유니온칼리지 교수는 "시간 측정의 역사에는 과학기술에 관한 추상적 이야기만이 아니라, 정치와 철학의 매우 흥미로운 요소도 포함돼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을 감수한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역시 "시간의 측정은 과학이지만 시간의 약속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라고 말했다.시간은 1초 단위에서 계절, 1년으로 확장된다. 1~2장에서 책은 지구 자전축과 계절, 지구의 공전 주기와 별자리의 관계 등 과학적 기초 사실을 먼저 짚은 뒤 3장 '자연의 시간 vs. 사회적 시간'을 통해 시간 측정이 인류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다양한 일화를 통해 보여준다.1752년 영국 의회는 9월 2일 바로 다음 날을 9월 14일로 한다는 법령을 가결했다. 11일이 통째로 사라진 것. 율리우스력을 써오다가 그레고리우스력으로 역법 개혁을 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지주들은 19일 만에 한달치 임대료를 요구하고, 고용주는 11일에 대한 급료를 지급하지 않는 등 나라 곳곳이 혼란에 빠졌다.책은 기본적으로 시

    2024.01.05 08:53
  • 서점들 필사적 컬래버…BMW까지 끌어온다

    독일 자동차 브랜드 BMW, 편의점 이마트24, 여행·여가 플랫폼 여기어때, 곰인형 브랜드 테디베어…. 공통점을 떠올리기 힘든 이름들이다. 요즘 이들 기업을 한데 묶는 키워드는 ‘서점’이다.책 읽는 사람이 귀한 시대. 서점들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이색 컬래버에 나서고 있다. 서점은 오프라인 점포 임대 부담을 줄이고 기업들은 색다른 마케팅 무대를 확보할 수 있어 컬래버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교보문고는 오는 3월 17일까지 약 석 달간 서울 강남점에서 BMW와 함께 BMW ‘라이브러리 노이어’(사진)를 연다. BMW 차세대 제품군인 노이어 클라쎄를 알리기 위한 일종의 팝업스토어(임시매장)다. BMW와 차세대 모빌리티 관련 전시, ‘새로움’에 대한 작가들의 인터뷰 내용 등을 소개한다. 이곳에서는 작년 말 여기어때와 협업한 ‘여행책방’이 마련되기도 했다. 여행 관련 책 속 문장과 여행 문구, 추천 도서를 석 달간 전시했다.교보문고는 ‘책 파는 곳’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을 대대적으로 새 단장했다. 본점인 서울 광화문점에 약 1년 전 스타벅스 컬래버 매장을 입점시켰다. 월별로 주제를 정해 도서를 선별 전시하고 헤밍웨이 등 유명 작가의 작업 공간을 재현한 ‘작가의 책상’을 꾸몄다. 스타벅스가 서점과 협업한 형태의 매장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 옆에는 미술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갤러리 ‘아트스페이스’를 조성했다.영풍문고 역시 지난달 서울 종각종로본점에 테디베어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온라인 서점도 가세했다. 예스24는 1월 한 달간 이마트24와 컬래버 이벤트를

    2024.01.03 18:51
  • [이 아침의 소설가] 소설가들이 뽑은 소설가…권여선

    교보문고는 매년 소설가들에게 추천을 받아 ‘올해의 소설’을 선정한다. 소설가들이 꼽는 그 해 최고의 소설인 셈이다. 소설가 권여선(본명 권희선)은 2016년 <안녕 주정뱅이>로 1위에 오른 데 이어 2023년 <각각의 계절>로 다시 1위를 차지했다.1965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권 작가는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상상문학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과 자주 비교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고, 등단한 지 8년이 지난 뒤에야 첫 소설집 <처녀치마>를 냈다. 이후 권 작가는 느릿하고 꾸준하게 작품을 발표하며 다시 평단과 독자의 눈길을 끌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권 작가는 문학계의 소문난 애주가다. 작품마다 술 그리고 술자리의 열기와 지리멸렬함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아예 술에 대한 소설을 모은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를 출간하기도 했다.구은서 기자

    2024.01.03 18:35
  • 독자 눈길 끌어보려…이마트·BMW와 손잡는 서점들

    독일 자동차 브랜드 BMW, 편의점 이마트24, 여행·여가 플랫폼 여기어때, 곰인형 브랜드 테디베어…. 언뜻 공통점을 떠올리기 힘든 이름들이다. 요즘 이들 기업을 한데 묶는 키워드는 '서점'이다.책 읽는 사람이 귀한 시대. 서점들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이색 콜라보에 나서고 있다. 서점은 오프라인 점포 임대 부담을 줄이고, 기업들은 색다른 마케팅 무대를 확보할 수 있어 콜라보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교보문고는 3월 17일까지 약 석 달간 강남점에서 BMW와 함께 BMW '라이브러리 노이어(Library Neue)'를 개최한다. BMW 차세대 제품군 노이어 클라쎄를 알리기 위한 일종의 팝업스토어(임시매장)다. BMW와 차세대 모빌리티 관련 전시, '새로움'에 대한 작가들의 인터뷰 내용 등을 소개한다. 이곳에서는 작년 말 여기어때와 협업한 '여행책방'이 마련되기도 했다. 여행 관련 책 속 문장과 여행 문구, 추천 도서를 석 달간 전시했다.교보문고는 '책 파는 곳'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을 대대적으로 새단장했다. 본점인 광화문점에 약 1년 전부터 스타벅스 콜라보 매장을 입점시켰다. 월별로 주제를 정해 도서를 선별 전시하고, 헤밍웨이 등 유명 작가의 작업 공간을 재현한 '작가의 책상'도 꾸몄다. 스타벅스와 서점과 협업한 형태의 매장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 옆에는 미술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갤러리 '아트스페이스'를 조성했다.영풍문고 역시 지난달 종각종로본점에서 테디베어 팝업스토어를 진행했다. 온라인 서점도 가세했다. 예스24는 1

    2024.01.03 15:07
  • "안 할래요, 이제 하기 싫은 것은"… 올해 이런 결심 어때요

    '새해부터는 매일 30분씩 운동하기' '2024년에는 책 많이 읽어야지' 해마다 이맘때 반복되는 풍경입니다. 새해에는 뭔가를 해내겠다고, 더 열심히 살겠다고 결심하는 거죠. 어차피 일주일쯤 뒤에는 외면하게 될 자신과의 약속이라도 말이죠.  연초마다 반복해온 다짐이 스스로도 멋쩍게 느껴질 때, 거꾸로 이런 결심은 어떨까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이 문장은 1853년 발표된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 속 유명한 대사입니다. 왜 바틀비는 이토록 단호하고 불순한 문장을 내뱉었던 걸까요.소설의 화자는 변호사. 미국 월가에 번듯한 사무실을 갖고 있죠. 일이 많아 여러 명의 필경사도 고용하고 있습니다. 필경사는 과거 문서나 책 등에 글씨를 쓰거나 문서를 베껴 쓰는 일을 하는 일종의 필기 노동자예요. 인쇄술의 발달로 현대에 와서는 만나보기 힘든 직업입니다.변호사는 곧 바틀비라는 새로운 필경사를 고용합니다. '진저넛' '터키'…. 즐겨 먹는 간식으로 대충 별명 지어 부르던 필경사들로는 일손이 모자라졌거든요. "얼굴이 창백하리만치 말끔하고, 동정이 갈 만큼 예의가 발랐으며,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외로워 보였다." 변호사는 그를 고용한 뒤 기뻐합니다. 수수한 용모의 바틀비는 일에 걸신이라도 들린 듯 밤낮없이 일을 해댑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아요. 어느날 갑자기 바틀비가 변호사를 향해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시작은 변호사의 지시를 가끔 거부하는 정도였죠. 바틀비 자신 몫의 필사를 완벽하게

    2024.01.03 14:33
  • 한 달에 한 명씩…시인들이 '시의적절'하게 온다

    ‘시인들은 이 계절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시인의 매일매일이 궁금한 이들에게 ‘시의적절’한 책이 매달 찾아간다.출판사 난다는 1월부터 새로운 시리즈 ‘시의적절’을 선보인다.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매달 1권씩, 1년간 총 열두 권의 책을 출간한다. 각 책에는 매일 한 편씩 읽을 수 있도록 시, 일기, 에세이, 인터뷰 등 30편 안팎의 글을 수록한다.1월의 주인공은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등의 시집을 낸 시인이자 난다 출판사 대표인 김민정. 김 시인은 ‘시의적절’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읽을, 거리>를 통해 1월 1일에 일기, 1월 2일 에세이, 1월 3일에는 인터뷰를 싣는 식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시를 담아냈다. 어느 해 1월 1일, 시인은 부부싸움 끝에 짐을 싸서 자신을 찾아온 후배와 와인을 마시다가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노래를 유튜브에서 찾아 들려준다. “왜 하필 이 노래냐”고 묻는 후배도, “일단 노래를 들어보라”고 답하는 그도 자신의 속내를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결국 숫자 ‘1’의 의미, 하나 된다는 것에 대해 골몰하는 풍경이다.올해 시의적절에 참여하는 시인은 1월 김민정, 2월 전욱진, 3월 신이인, 4월 양안다, 5월 오은, 6월 서효인, 7월 황인찬, 8월 한정원, 9월 유희경, 10월 임유영, 11월 이원, 12월 박연준이다. 각 권에는 사진작가 김수강의 사진이 담긴다.구은서 기자

    2024.01.02 18:34
  • ‘시의적절’하게 찾아오는 열두달의 시인들…1월은 김민정

    '시인들은 이 계절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오늘, 1월 3일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에게 어떤 날이었을까.' 시인의 매일매일이 궁금한 이들에게 '시의적절'한 책이 매달 찾아간다.출판사 난다는 1월부터 새로운 시리즈 '시의적절'을 선보인다.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매달 각 1권씩, 1년간 총 열두 권의 책을 출간한다. 각 책에는 매일 한 편씩 읽을 수 있도록 시, 일기, 에세이, 인터뷰 등 30편 안팎의 글을 수록한다. 난다 측은 "매일매일을 시로 써가는 시인들의 일상을 엿보는 책"이라며 "시인은 1월 1일을 어찌 다루고 시의 12월 31일은 어떻게 다룰 지 살펴볼 수 있는 시리즈"라고 설명했다.1월의 주인공은 시인이자 난다 출판사 대표인 김민정.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며 등단한 그는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등 시집뿐 아니라 <각설하고,>를 비롯한 에세이로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문학동네 시인선의 기획을 총괄해온 베테랑 편집자이기도 하다. 김 시인은 '시의적절'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읽을, 거리>를 통해 1월 1일에는 일기, 1월 2일에는 에세이, 1월 3일에는 인터뷰를 싣는 식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시를 담아냈다. 어느 해 1월 1일, 시인은 부부싸움 끝에 짐을 싸서 자신을 찾아온 후배와 와인을 마시다가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노래를 유튜브에서 찾아 들려준다. "왜 하필 이 노래냐"고 묻는 후배도, "일단 노래를 들어보라"고 답하는 그도 자신의 속내

    2024.01.02 16:05
  • 유발 하라리 "AI는 인공 아닌 외계지능이다" [단독 인터뷰 전문]

    “나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상상 속의 질서와 지배적 구조를 창조해내는 인류의 독특한 능력을 재검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가 2022년 말 발표한 <사피엔스> 출간 10주년 특별판 서문 중 일부다. 인공지능(AI)의 비약적 발전을 지켜보는 역사학자 하라리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장이다. 하지만 이 글을 쓴 건 그가 아니라 생성형 AI 챗GPT-3다. AI에게 ‘하라리 스타일로 <사피엔스> 10주년을 기념하는 서문을 쓰라’고 주문했던 그는 그럴 듯하게 완성된 글을 보고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털어놨다.그로부터 1년여. 하라리 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사피엔스>(히브리어판 2011년 출간) <호모 데우스>(2015년) 이후 많은 것들이 변했다”며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고 말했다.그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호모 데우스>에서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향후 AI 같은 과학기술을 등에 업고 신적인 존재 ‘호모 데우스’로 나아갈 것이라 내다봤다. 불멸에 도전하고, 인간과 비슷한 존재를 창조해내는 인류는 인공일반지능(AGI)을 넘어 초지능(super intelligence)을 꿈꾸는 현재의 모습과 겹친다.하라리 교수에게는 매주 수십 통의 인터뷰 요청 메일이 쏟아진다. 이를 관리할 별도 팀까지 둔 그는 ‘AI 시대, 미래세대를 위한 조언’이 주제라는 이야기에 이 인터뷰를 수락했다. 하라리 교수는 최근 청소년을 위해 인류의 역사를 쉽게 풀어쓴 <멈출 수 없는 우리 2>를 출간할 정도로 미래세대에 깊은 애정을 보인다.그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AI 사회에서 인류가

    2024.01.01 18:32
  • "과거 5000년 걸린 진화…AI가 5년 안에 끝낼 수도"

    “나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상상 속의 질서와 지배적 구조를 창조해내는 인류의 독특한 능력을 재검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가 2022년 말 발표한 <사피엔스> 출간 10주년 특별판 서문 중 일부다. 인공지능(AI)의 비약적 발전을 지켜보는 역사학자 하라리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문장이다. 이 글을 쓴 건 그가 아니라 생성형 AI 챗GPT-3다. AI에 ‘하라리 스타일로 <사피엔스> 10주년을 기념하는 서문을 쓰라’고 주문한 그는 그럴듯하게 완성된 글을 보고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털어놨다.그로부터 1년여. 하라리 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사피엔스>(히브리어판 2011년 출간) <호모 데우스>(2015년)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며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고 말했다.그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호모 데우스>에서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AI 같은 과학기술을 등에 업고 신적인 존재 ‘호모 데우스’로 나아갈 것으로 내다봤다. 불멸에 도전하고, 인간과 비슷한 존재를 창조해내는 인류는 인공일반지능(AGI)을 넘어 초지능(super-intelligence)을 꿈꾸는 현재의 모습과 겹친다.하라리 교수는 “지금껏 발명된 모든 기술·도구와 AI는 차원이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20년 뒤 인간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전혀 알 수 없게 됐다”며 “인간의 예측을 벗어난 AI는 인공(artificial)보다는 외계(alien) 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하라리 교수에게는 매주 수십 건의 인터뷰 요청 메일이 쏟아진다. 이를 관리하는 별

    2024.01.01 18:25
  • [책마을] 영화관에서 팝콘 칼로리가 얼마나 높은지 알려주면 고객은 기뻐할까

    세계적 베스트셀러 <넛지>의 공저자 캐스 R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어느 날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백악관의 규제 업무를 지원하며 각종 정보 공개 활성화를 위해 일할 때였다.그는 식품의약국이 영화관을 포함한 다양한 음식점에 칼로리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규정을 마침내 확정했다고 친구에게 전했다. 정보는 더욱 투명해지고, 소비자들은 더욱 현명해질 것이며,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이다! 자랑스러워하는 그의 눈앞에 친구의 답장이 도착했다, “캐스가 팝콘 맛을 망쳐 놓았군.”“아는 것이 힘이다”는 옛말이다.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너무 많은 정보는 되레 사람들의 선택과 판단을 방해한다. “아, 그것참 TMI(Too Much Information·지나치게 과한 정보)다.” 이런 말이 수시로 쓰인다.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정보 과잉, 그리고 이에 대처하는 현대인의 행동 특성을 분석한 선스타인 교수의 책 2권이 나란히 국내에 출간됐다.에서 선스타인 교수는 “아는 것은 힘이지만 무지는 축복”이라고 말한다. 다수의 실증 연구 자료를 동원해가며 과도한 정보 공개의 역기능을 보여준다. 책은 성역으로 여겨지는 ‘알 권리’의 허점을 거침없이 지적한다. 현대 사회에서 소비자의 알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절대적인 정보량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적절한’ 정보에 가닿지 못하기 때문이다.어떤 TMI는 심지어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오늘날 소셜미디어는 무익한 정보 제공자의 대명사다. 오죽하면 “소셜미디어는 인생의 낭비”(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라고 했을까. 2018년 이뤄진 한 연

    2023.12.29 17:56
  •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전 지금도 호기심 먹고 살아요"

    “클래식 음악만 들으면 잠드는 사람들을 위해 아예 꿀잠 자도 되는 음악회를 열면 어떨까?”“명함에 이름과 회사 직함 외에 새해 다짐도 적으면 어떨까? ‘올해는 뱃살을 줄여보겠습니다’란 식으로.”“전국 각지에 방치된 유명인 생가를 잘 꾸며 ‘명당’ 산후조리원으로 활용하면 인기 있지 않을까?”54년차 개그맨 전유성(74)이 최근 출간한 산문집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은 이런 아이디어들로 가득하다. 최근 서울 청파로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난 그에게 “어떻게 이렇게 새로운 생각을 끊임없이 하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심심하지 않으려고! 심심하게 살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아요?”전유성은 1세대 개그맨이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면 개그맨은 그가 가진 여러 직업 중 하나일 뿐이다. 전유성은 수많은 사람의 ‘멘토’인 동시에 성공한 공연 기획자이기도 하다.대한민국에서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도 그였고, 심야 볼링장과 심야 극장 아이디어를 국내에서 처음 내고 현실화한 것도 그다. PC통신 시대가 막 열렸을 때 <인터넷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등의 책을 쓴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얼리어답터였다.배우 한채영, 개그우먼 이영자와 김신영의 가능성을 처음 알아차린 것도 전유성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즐기는 ‘개나 소나 콘서트’를 만들었고, ‘지방 관객들에게 개그를 배달한다’는 콘셉트로 경북 청도군에 ‘코미디 철가방 극장’을 세우기도 했다.이런 ‘영웅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운을 뗐더니 손사래를 친다. “그런 얘기들

    2023.12.28 18:25
  • '한국 가톨릭의 원로' 정의채 몬시뇰 98세로 선종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채(세례명 바오로) 몬시뇰이 지난 27일 오후 5시15분 노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98세. 몬시뇰은 교황이 부여하는 칭호로, 주교품에 오르지 않은 가톨릭 고위 성직자를 의미한다. 정 몬시뇰은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이 칭호를 받았다.1925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난 정 몬시뇰은 1953년 사제수품을 받았다. 부산 초량본당과 서대신본당에서 보좌신부로 사목한 뒤 로마 우르바노대학교 대학원에서 유학, 철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이후 1961년부터 1984년까지 가톨릭대 신학부(현 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로 지내며 부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불광동본당·명동본당 주임신부를 지낸 후 다시 학교로 복귀해 학장(당시 총장)을 맡으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가톨릭 교회의 원로 역할을 해왔다. 한국 사회를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1987년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로부터 ‘신은 있는가’‘삶은 왜 고통스러운가’ 등 24가지 질문을 받아 답변을 준비했으나 이 창업주의 별세로 전하지 못한 일화도 유명하다. 1991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1992년부터 2009년까지 서강대에서 석좌교수를 지냈고, 2005년 몬시뇰에 임명됐다. 올해는 정 몬시뇰이 사제수품을 받은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저서 및 역서로는 <형이상학>, <존재의 근거 문제>, <삶을 생각하며>, <사상과 시대의 증언>, <현재와 과거, 미래를 넘나드는 삶>,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철학의 위안>, <중세 철학사> 등이 있다.빈소는 주교좌 명동대성당 지하성당에 마련되며, 조문은 28일 오전 11시부터 가능하다. 장례미사는 30일

    2023.12.28 09:45
  • 전유성 "지금도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 호기심을 먹고 삽니다"

    "클래식 음악만 들으면 잠 드는 사람들을 위해 아예 꿀잠 자도 되는 음악회를 열면 어떨까?""명함에 이름과 회사 직함 외에 새해 다짐도 적으면 어떨까? '올해는 뱃살을 줄여보겠습니다'란 식으로.""전국 각지에 방치된 유명인 생가를 잘 꾸며 '명당' 산후조리원으로 활용하면 인기 있지 않을까?"54년차 개그맨 전유성(74)이 최근 출간한 산문집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은 이런 아이디어들로 가득하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난 그에게 "어떻게 이렇게 새로운 생각을 끊임없이 하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심심하지 않으려고! 심심하게 살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아요?"전유성은 1세대 개그맨이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면 개그맨은 그가 가진 여러 직업중 하나일 뿐이다. 전유성은 수많은 사람들의 '멘토'인 동시에 성공한 공연 기획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도 그였고, 심야 볼링장과 심야 극장 아이디어를 국내에서 처음 내고 현실화시킨 것도 그였다. PC통신 시대가 막 열렸을 때 <인터넷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등의 책을 쓴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얼리 어답터'였다.배우 한채영, 개그우먼 이영자와 김신영의 가능성을 처음 알아차린 것도 전유성이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즐기는 '개나 소나 콘서트'를 만들었고, '지방 관객들에게 개그를 배달한다'는 콘셉트로 경북 청도군에 '코미디 철가방 극장'을 세우기도 했다.이런 '영웅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운을 뗐더니, 손사래를 친다. "그런 얘기들은 충분

    2023.12.27 15:37
  • 영화관에서 팝콘의 칼로리를 알려주면 고객은 기뻐할까

    세계적 베스트셀러 <넛지>의 공저자 캐스 R.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어느 날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백악관의 규제 업무를 지원하며 각종 정보 공개 활성화를 위해 일하던 때였다.그는 식품의약국이 영화관을 포함한 다양한 음식점에 칼로리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규정을 마침내 확정했다고 친구에게 전했다. 정보는 더욱 투명해지고, 소비자들은 더욱 현명해질 것이며,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이다! 자랑스러워하는 그의 눈 앞에 친구의 답장이 도착했다, "캐스가 팝콘 맛을 망쳐 놓았군.""아는 것이 힘이다"는 옛말이다.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너무 많은 정보는 되려 사람들의 선택과 판단을 방해한다. "아, 그거 참 TMI(Too Much Information·지나치게 과한 정보)다." 이런 말이 수시로 쓰인다.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정보 과잉, 그리고 이에 대처하는 현대인의 행동 특성을 분석한 선스타인 교수의 책 2권이 나란히 국내 출간됐다.<TMI: 정보가 너무 많아서>에서 선스타인 교수는 "아는 것은 힘이지만 무지는 축복"이라고 말한다. 다수의 실증 연구 자료들을 동원해가며 과도한 정보 공개의 역기능을 보여준다. 책은 성역으로 여겨지는 '알 권리'의 허점을 거침 없이 지적한다. 현대 사회에서 소비자의 알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건 절대적인 정보량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적절한' 정보에 가닿지 못하기 때문이다.어떤 TMI는 심지어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오늘날 소셜미디어는 무익한 정보 제공자의 대명사다. 오죽하면 "소셜미디어는 인생의 낭비"(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감독)라고 했을

    2023.12.27 08:38
  • "인간 욕망 증류하면 사랑만 남아…독한 사랑 체험해 볼 기회되시길"

    소설가 이혁진(사진)은 ‘월급 스릴러’의 대가였다. 과거형이다. 조선소를 배경으로 기업의 모순과 부조리를 그린 <누운 배>, 은행원들 간의 사내 연애를 통해 회사 내 계급과 이해관계를 다루며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된 <사랑의 이해>, 공사 현장을 배경으로 직업인의 윤리를 묻는 <관리자들>까지. 월급을 둘러싼 직장인의 분투와 지질한 인간관계를 긴장감 있게 그려왔다.그런 그가 새로운 얼굴로 돌아왔다. 광기 어린 사랑을 다룬 신작 장편소설 <광인>을 출간한 이 작가를 지난 22일 서울 연희동에서 만났다. 네 번째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놓은 그는 “지금껏 쓴 작품 중 가장 잘 쓰고 싶었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자평했다.<광인>은 세 남녀의 사랑과 욕망을 치열하게 파고든다. 위스키 만드는 여자 ‘하진’과 그녀를 사랑하는 두 남자, 음악가 ‘준연’과 주식쟁이 ‘해원’. 세 사람의 긴장 관계를 중심으로 술과 음악, 돈에 대한 집요한 묘사와 파국으로 치닫는 서사가 진득한 위스키 향처럼 펼쳐진다.하지만 이 작가와 마주 앉았을 때 가장 먼저 꺼낸 얘기는 ‘분량’이었다. 명색이 쇼츠 시대인데, 680쪽짜리 소설을 내서다. 분량을 줄일 고민은 안 했을까. 이 작가는 “전혀 안 했다”고 잘라 말했다. “짧고 즉각적인 콘텐츠는 책이 아니더라도 많지 않나요? 제가 동경했던 문학들처럼, 두껍지만 두꺼운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그는 한국 문단에서 흔치 않은 ‘장편형 소설가’다. 보통 소설가들이 단편소설로 등단해 소설집을 내고 장편소설로 넘어가는 것과 달리, 등단도 장편소설로 했고

    2023.12.26 18:29
  • 신작 '광인'으로 돌아온 이혁진…"인간 욕망 증류하면 사랑만 남을 것"

    소설가 이혁진은 '월급 스릴러'의 대가였다. 과거형이다. 조선소를 배경으로 기업의 모순과 부조리를 그린 <누운 배>, 은행원들 간의 사내연애를 통해 회사 내 계급과 이해관계를 다루며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된 <사랑의 이해>, 공사 현장을 배경으로 직업인의 윤리를 묻는 <관리자들>까지. 월급을 둘러싼 직장인의 분투와 지질한 인간관계를 긴장감 있게 그려왔다.그런 그가 새로운 얼굴로 돌아왔다. 광기 어린 사랑을 다룬 신작 장편소설 <광인>을 출간한 이 작가를 지난 22일 연희동에서 만났다. 네 번째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놓은 그는 "지금껏 쓴 작품들 중 가장 잘 쓰고 싶었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자평했다.<광인>은 세 남녀의 사랑과 욕망을 치열하게 파고든다. 위스키 만드는 여자 '하진'과 그녀를 사랑하는 두 남자, 음악가 '준연'과 주식쟁이 '해원'. 세 사람의 긴장 관계를 중심으로 술과 음악, 돈에 대한 집요한 묘사와 파국으로 치닫는 서사가 진득한 위스키 향처럼 펼쳐진다.하지만 이 작가와 마주 앉자 분량 얘기부터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쇼츠 시대에 나온 소설인데 680쪽에 달한다. 분량을 줄일 고민은 안 했을까. 이 작가는 "전혀 안 했다"고 잘라 말했다. "짧고 즉각적인 콘텐츠는 책이 아니더라도 많지 않나요? 제가 동경했던 문학들처럼, 두껍지만 두꺼운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는 한국 문단에서 흔치 않은 '장편형 소설가'다. 보통 소설가들이 단편소설로 등단해 소설집 내고 장편소설로 넘어가는 것과 달리, 등

    2023.12.2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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