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스타트업코리아! 정책제안보고서 발표회’에서 패널들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덕 롯데액셀러레이터 상무, 안창국 자본시장위원회 국장, 김현종 벨루가 공동창업자. 아산나눔재단 제공
지난 20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스타트업코리아! 정책제안보고서 발표회’에서 패널들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덕 롯데액셀러레이터 상무, 안창국 자본시장위원회 국장, 김현종 벨루가 공동창업자. 아산나눔재단 제공
벤처인증 법인 3만7000개, 유니콘 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9곳, 투자 회수 규모 2조7000억원.

한국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업계가 지난 5년간 이룬 성취는 눈부셨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유니콘 기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해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꾸준히 생기고 있다. 스타트업계에 몰리는 투자자금 규모도 빠르게 늘어나 자금 운용 환경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이 같은 내용의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가 발표됐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아산나눔재단,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가 공동으로 마련한 보고서로 2017년 처음 발간돼 이번이 세 번째다.

○스타트업 고용 76만 명…5대 그룹 넘어서

스타트업은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 산업에 대응하는 전초기지다. 대기업도 스타트업을 활용해 새로운 사업의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500대 기업이 해외법인이나 펀드를 통하지 않고 4차 산업혁명 관련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한 금액이 지난해 458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4년(171억원)과 비교하면 27배가 늘었다. 5년간 누적 투자액은 1조2000억원에 이른다.
유니콘 9개 '세계 5위', 고용도 5대그룹 추월 … K스타트업 눈부신 성취
스타트업은 고용 창출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7년 기준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76만 명에 이른다.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롯데 등 국내 5대 그룹 종사자 수(75만 명)를 넘어섰다.

이 기간 스타트업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도 크게 개선된 것으로 평가됐다. 정부의 스타트업 창업 지원 규모는 2017년 6158억원에서 올해 7월 현재 1조1000억원 규모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양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지난해 기준 벤처인증 법인은 3만7000곳이다. 2014년부터 매해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새롭게 문을 열고 있다. 이 가운데 매출 1000억원이 넘는 기업이 572곳에 달했다.

유니콘 기업은 9곳으로 지난해 12월에 비해 세 곳 늘었다. 한국은 미국 중국 등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유니콘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2018년 투자 회수 규모도 2조7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도전 도와야”

국내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는 건 규제다.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할 만한 수준엔 미치지 못한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분야로 핀테크(금융기술)가 꼽힌다. 정부의 적극적인 진입 규제 해소 노력으로 시장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는 게 보고서의 평가다. 지난해 어니스트 펀드, 렌딧, 레이니스트 등의 스타트업이 시리즈B 이상 단계로 올라섰다. 핀테크 투자 규모도 지난해 약 2388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발표된 모빌리티사업 합법화안인 ‘혁신성장 및 상생발전을 위한 택시제도 개편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놨다. “아쉬움이 있지만 사회적 합의를 통해 모빌리티사업의 합법적 시장 진입 방안을 도출해내려고 노력했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하지만 스타트업 생태계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경영 여건이 열악했다. 유니콘 스타트업을 보유한 주요 10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국이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항목은 ‘진입 규제’다. 10개국 중 9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종전에 없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스타트업을 세우면 십중팔구 ‘불법’ 딱지가 붙는다는 얘기다.

‘데이터 인프라 환경’도 8위에 그쳤다. 개인정보보호법 등 데이터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보니 데이터를 사업에 활용하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인재 유입 환경’도 8위에 머물렀다. 스타트업 수요에 비해 숙련된 개발자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엑시트(자금 회수)’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유니콘 기업 가운데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으로 자금 회수에 성공한 사례는 아직 없다.

보고서는 글로벌 스타트업이 한국에서 사업할 때를 가정한 자료도 내놨다. 글로벌 누적 투자액 기준 100대 스타트업 중 31%가 규제에 막혀 제대로 사업할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투자액 기준으로 따지면 이 비율은 53%까지 올라간다. 유니콘 기업 중 하나인 그랩이 대표적인 사례다. 동남아시아 시장을 장악한 차량공유 업체지만 국내에서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막혀 사업이 불가능하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질적 성장을 위해선 ‘우선 허용, 사후 규제’로 법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일부 기업에 한시적으로 규제를 완화해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만으론 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는 논리였다.

이경숙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은 “스타트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규제가 논란이 된다면 왜 규제를 만들었는지 이유를 찾아보고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을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