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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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업계가 기부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블록체인의 장점을 살리면서 공공성을 강조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가상화폐(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기부 시장에 뛰어드는 블록체인 기업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2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테크 비즈 컨퍼런스'에 참여한 이수정 이포넷 대표는 "오는 8월 블록체인 기반 기부 플랫폼 베타 버전을, 11월 1.0 버전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이포넷은 두나무, 어린이재단, 이노블록과 함께 과기정통부의 민간 주도 블록체인 프로젝트인 '탈중앙화 기부 플랫폼'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기부 프로젝트는 앞서 KT가 시작했다. 올 초 KT그룹 희망나눔재단과 블록체인 기반 개인간(P2P) 기부 플랫폼 '기브스퀘어'를 구축했다. 이 플랫폼을 통해 현재까지 2만3000여명이 봉사에 참여하고 1억5746만 포인트가 기부됐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계열사 그라운드X 역시 소셜벤처 닛픽, 아름다운재단 등과 손잡고 기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아이콘루프 또한 기부 생태계에 관심을 갖고 관련 단체들과 협력을 타진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블록체인 기업들이 기부 시장에 관심을 갖는 것은 기부 시장에서 블록체인 기술 수요가 높고, 가상화폐(암호화폐)의 공공성을 강조할 수 있다는 이유가 크다.

블록체인 기술은 기부 투명성과 신뢰성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간 기부 단체들은 잇따른 기부금 횡령 사건으로 신뢰도가 떨어져 어려움을 겪었다. 딸 수술비 명목으로 기부금을 받아 외제차 구매 등에 사용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 지역 아동을 위한 기부금 128억원을 모아 아파트 구매, 요트 여행 등에 탕진한 새희망씨앗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기부 단체 신뢰도가 낮아지면서 자연히 기부금도 줄었다. 한 기부 단체 관계자는 "기부금이 제대로 전달된다는 걸 보여주려고 후원품 사진을 촬영하거나 후원 받은 아동이 정기적으로 편지도 쓰도록 유도하고 있다"면서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지만 그렇게 해도 기부 단체를 못 믿겠다는 반응이 늘어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적용하면 기부금 현황과 사용을 실시간 공개해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기부자가 기부금 사용처를 제한하는 것도 가능하다. 가령 병원비 용도 기부금에 병원과 약국에서만 결제할 수 있도록 제한을 거는 식이다.

부정한 용도로 기부금을 쓰려 한다는 판단이 들면 기부금 사용을 중지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이수정 대표는 "블록체인으로 기부자가 기부 캠페인에 이의제기 권한을 갖고 기부금 집행 여부, 집행 계획 변경, 캠페인 중단 결정 등에 대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개 과정에서의 각종 비용 절감 역시 장점. 유니세프가 개인에게 받는 기부금은 매년 5조원 규모에 달한다. 이 금액을 저개발 국가 지원을 위해 환전하는 데 드는 수수료만 약 5%, 금액으로 2500억원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암호화폐는 수수료를 제로(0)에 가깝게 만드는 게 가능해 이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길게는 한 주씩 소요되던 해외송금 시간 역시 초 단위로 단축된다.

이처럼 기부 프로세스에 적절히 활용되면 암호화폐를 투기 수단으로만 보는 시선도 완화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개선된다면 암호화폐를 보다 좋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정비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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