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이 창문틀에 유채씨유를 놔뒀다. 지금 잘산다고 자랑하는 것인지. 훔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최근 한 SNS에 올라온 글이다. 유채씨로 만든 기름이 대단한 상품인 것처럼 묘사되는 이 나라는 다름 아닌 유럽 최대 경제 대국 독일이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에서는 대형마트에서 한 사람이 구매할 수 있는 식용유 개수를 2병으로 제한하고 있다. 식용유 매대가 텅 빈 마트도 상당수다. 독일 뮌헨의 한 대형 레스토랑 직원은 “식용유 품귀로 감자튀김을 만들 때 팜유, 유채씨유 등 이것저것 있는 대로 기름을 섞어 쓴다”고 말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올 들어 급등한 곡물 가격보다 더 가파르게 뛰고 있는 게 바로 식용유”라고 분석했다.

유럽은 식용유 판매 제한

우크라戰에 해바라기씨유 품귀…"곡물보다 식용유값이 더 치솟아"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에 따르면 2019~2021년 세계 시장에서 거래된 식물성 기름 비중은 가격이 싼 팜유가 58%로 가장 높았다. 다음은 대두유 14%, 해바라기씨유 13%, 유채씨유(카놀라유 포함) 7%, 기타(올리브유·땅콩유 등) 8% 등의 순이었다.

식용유는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특히 취약하다. 세계 식용유 소비량의 4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밀, 옥수수 등 주요 곡물의 수입 비중은 20%가량이다. IFPRI는 “전 세계 국가의 75%가 국내 식용유 소비량의 절반을 국외에서 조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식용유 대란의 직접적 원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 세계 해바라기씨유 소비량의 52%와 25%를 각각 책임지고 있다. 해바라기 재배 및 수출이 급감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시장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두 나라의 전쟁으로 해바라기씨유가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고 전했다.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서도 해바라기씨유는 구할 수 없는 희귀 상품이 됐다는 얘기다.

가격도 크게 올랐다. 영국에선 유채씨유 가격이 최근 한 달 새 두 배 이상 뛰어올랐다. 해바라기씨유 대란은 다른 식용유의 수급 불안도 자극했다. 식용유 생산국들은 수출 제한에 나섰다. 세계 최대 팜유 수출국 인도네시아가 지난 4월 팜유 수출금지령을 내린 게 대표적이다. 세계 대두유 시장의 46%를 차지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정부는 대두 수출세금을 2%포인트 높여 수출 줄이기에 나섰다.

작황 안 좋은데 수요는 급증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부터 식물성 기름의 공급은 부족했다. 남미 전역의 기록적인 가뭄으로 올해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등의 대두유 수출량은 전년 대비 5%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최대 유채씨 생산국인 캐나다에서도 이상기후가 계속돼 올해 유채씨유 수출량이 20% 줄어들 전망이다.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팜유를 많이 생산하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코로나19 이후 계속된 인력 부족과 작년 12월 동남아시아를 강타한 태풍 라이 등의 영향으로 팜유 원료인 기름야자 수확이 크게 줄었다.

세계인들은 하루 평균 권장 칼로리의 10%가량(300㎉)을 식용유에서 보충하고 있다. 특히 방글라데시 등 저소득국가에서 식용유는 필수 식료품이다. 세계 각국이 바이오디젤 연료 생산을 확대한 것도 식물성 기름을 부족하게 만들었다. 바이오디젤로 전환되는 식물성 기름은 연간 3100만t에 달한다. 3억2000만 명 이상이 한 해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농업시장조사업체 그로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식물성 기름 생산량은 연평균 570만t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소비량은 연평균 620만t 늘어나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다. 존 바페스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자는 “식물성 기름은 아이스크림부터 샴푸, 화장품 등에 이르기까지 쓰이는 곳이 너무 많다”며 “수요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수급 불안이 끝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