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암호화폐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16%가량 증발하며 1조달러(약 1290조원) 밑으로 떨어졌다. 꺾이지 않는 인플레이션 압력 속에 미국 중앙은행(Fed)이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친 여파다.

암호화폐 시가총액 1위인 비트코인도 급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일주일 새 30% 가까이 폭락한 비트코인은 2만1000달러 선까지 밀리며 조만간 2만달러까지 내려앉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 가격은 1년 반만에 3000만원 선을 깨고 내려갔다.

14일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게코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기준 전체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9353억달러(약 1207조원)를 기록했다. 24시간 전보다 16.2% 하락해 지난해 1월 이후 처음으로 1조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사상 최고치를 찍었던 지난해 11월(2조9680억달러)과 비교하면 약 7개월 만에 67%가 증발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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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주' 비트코인의 가격도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코인게코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현재 2만1685달러로 전날보다 17.3% 또 하락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비트코인이 2020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다시 2만 달러 밑으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올 정도다.

비트코인은 지난달 초만 해도 4만달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국산 암호화폐 루나의 폭락을 계기로 사흘 만에 2만8000달러까지 급락했다. 이달 들어선 3만달러대를 회복했지만 지난 주말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전망보다 높게 나오면서 다시 추락했다.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 압력과 Fed의 금리 인상 가속 우려로 투자자들이 위험자산 투매에 나섰기 때문이다.

국내 비트코인 가격도 급락하고 있다. 국내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에서 이날 현재 비트코인은 개당 2773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전날보다 18% 넘게 하락하며 약 1년 반만에 처음으로 300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암호화폐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 역시 147만원까지 내려온 상태다.

암호화폐 시장에는 인플레이션 충격 이상의 악재가 쌓이고 있다. 이더리움 같은 주요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하면서 이를 담보로 한 각종 파생상품 서비스도 연달아 붕괴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코인 급락을 부추긴 것은 암호화폐 담보대출 업체 셀시우스의 자산 출금 중단 조치였다. 셀시우스는 이용자가 라이도파이낸스라는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프로토콜에 이더리움을 맡기면 지급하는 토큰 'stETH'를 담보로 최대 70%까지 다시 이더리움을 대출해주는 서비스를 해왔다. 이용자는 이렇게 빌린 이더리움을 다시 라이도에 예치해 이자를 추가로 받을 수 있었다.

시장이 호황일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루나 사태와 금리 인상 우려 등 잇단 악재로 시장이 급락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셀시우스에 맡겨뒀던 이더리움을 찾아 매각하려는 이용자가 많아졌고, 셀시우스의 지급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퍼지면서 인출 속도가 빨라지는 '코인런'이 발생했다. 셀시우스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지급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13일 고객 자산 출금과 스왑 등을 일체 중단했다.

블룸버그는 "루나·테라 사태로 이미 흔들린 암호화폐 시장이 셀시우스의 실패로 더욱 악화됐다"며 "디파이 프로토콜과 전체 암호화폐 시장에 전염 효과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암호화폐거래소 루노의 비제이 아야르 부사장은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이 직전 하락장 때 80% 폭락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앞으로 한두 달은 비트코인 가격이 훨씬 더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