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영 방침은 ‘딥 체인지’(근본적 변화)입니다. 강력한 혁신을 통해 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합니다.”(2017년 1월 2일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년사)

2017년은 딥 체인지가 본격화하면서 SK그룹의 운명을 바꾼 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 회장은 2016년 10월 CEO(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처음 제시한 딥 체인지를 앞세워 강력한 변화를 주문했다. 전기자동차 배터리·바이오·칩(반도체) 등 이른바 ‘BBC’ 분야의 대규모 글로벌 투자를 단행한 것도 이때부터다. 정유·통신 등 내수 업종에서 글로벌 시장에 기반을 둔 BBC로 주력 사업이 바뀐 계기가 됐다. 최 회장은 BBC 분야의 글로벌 투자와 경제계 협력을 강화해 국가 경제를 주도하는 ‘K비즈니스’로 도약시킨다는 구상이다.
B·B·C에 38조 투자…SK, 글로벌 영토 확장

해외 투자로 글로벌 영토 확대

23일 SK에 따르면 2017년부터 5년간 투자한 그룹의 글로벌 시장 투자금은 48조원이다. 이 중 80%가량인 38조원을 BBC에 투자했다. 배터리 투자 규모가 19조원으로 가장 많았다. 반도체는 17조원, 바이오는 2조원이다.

SK이노베이션은 2017년 배터리 공장 증설과 분리막 사업 확대 등 신사업 분야 투자를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총괄사장으로 취임한 김준 부회장은 “전략적 투자와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SK하이닉스도 그해 일본 도시바메모리(현 기옥시아)에 지분을 투자했다. 이어 SK㈜가 LG실트론(현 SK실트론)을 잇따라 인수하는 등 반도체 사업을 대폭 확장했다. SK㈜의 해외 바이오 투자가 본격화한 것도 이 무렵이다.

BBC 사업 강화는 SK의 글로벌 영토 확장으로 이어졌다. 그룹 관계자는 “미국 유럽 일본 등은 자본과 인력 및 기술이 집약돼 있고 대규모 판로가 확보된 최적의 장소”라며 “이곳에 직접 뛰어들어야만 BBC 사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SK는 이 중 미국을 전진기지로 삼았다. SK하이닉스는 2020년 인텔 낸드사업부를 90억달러(약 10조7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어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인공지능(AI) 반도체 설계회사인 사피온과 AI 솔루션 개발 전문기업인 가우스랩스를 설립했다. 1조2000억원을 들여 반도체 연구개발(R&D)센터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자회사인 SK온은 조지아주에 배터리 공장 두 곳을 보유한 데 이어 완성차업체인 포드와 합작해 공장 3곳을 추가로 지을 예정이다. 2025년 완공되면 SK온의 배터리 생산 규모는 150.5GWh(기가와트시)로, 미국에서 배터리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기업이 된다. SK㈜도 2019년 캘리포니아주에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의약품 생산기업을 통합한 SK팜테코를 설립했다.

‘원팀’ 앞세운 글로벌 투자 확대

최 회장은 앞으로 BBC를 대표적인 K비즈니스 성장모델로 키워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2017년부터 5년에 걸친 BBC 투자가 SK의 글로벌 영토 확장을 이끌었다면 앞으로 5년은 경제계와 긴밀히 협력해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겠다는 구상이다.

최 회장은 삼성, LG 등 BBC 분야의 국내 경쟁 업체와 적극 협력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최근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를 마무리하면서 미·중 반도체 갈등 속에서 반도체산업을 안정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반도체뿐 아니라 배터리도 마찬가지다. SK온을 비롯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계획을 예정대로 진행하면 2025년 미국 전체 생산설비의 70%를 K배터리 업체가 차지하게 된다. 그룹 관계자는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서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와 함께 원팀으로 대응하면 국가 성장동력이 탄탄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