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수 없는' 대기오염물질 허용량…수조원 '과징금 폭탄'에 떠는 기업들
“고스란히 1조원이 넘는 과징금을 물거나 그게 싫으면 연말까지 공장을 세워야 합니다.”

환경부가 올해부터 ‘사업장 대기오염물질 총량관리제’의 적용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지방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배출할 수 있는 오염물질의 양을 규정한 사업장별 쿼터는 지난 9월 말 확정됐다. 총량제는 공장에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 먼지 등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문제는 기업들이 할당받은 쿼터가 예상보다 훨씬 적다는 데 있다. 대상 사업장 중 상당수가 쿼터를 이미 소진해 생산을 중단하지 않으면 정부의 기준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이다.
'지킬 수 없는' 대기오염물질 허용량…수조원 '과징금 폭탄'에 떠는 기업들
환경부는 4월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을 중부권과 남부권, 동남권 등으로 나눠 권역별 오염물질 배출 쿼터를 할당했다. 당시 정부가 밝힌 신규 적용 대상 사업장은 687곳이었다. 하지만 최근 최종 결정된 총량제 적용 대상 사업장은 799곳이다. 권역별 배출 허용량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대상 사업장 수가 늘어나면서 개별 사업장에 배정된 쿼터가 당초 예상보다 수십t씩 줄었다.

A사업장 관계자는 “9월까지 누적 배출량이 할당량에 도달한 상태”라며 “과징금도 문제지만 내년 배출 허용량이 줄어드는 것이 더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할당량을 초과한 사업장은 초과량의 두 배 범위에서 다음 연도의 배출 허용 총량이 줄어든다.

할당량을 정한 기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8년 대기오염물질 감축을 위한 투자를 마친 B사업장이 받은 할당량은 지난 5년 평균 배출량의 70% 수준에 불과했다. B사업장 관계자는 “조기 감축 투자를 한 기업에 추가 할당량을 주기로 했지만 정부가 정한 기준이 너무 높다”며 “조기 투자가 오히려 독이 된 셈”이라고 했다.

기업들이 총량제에 긴장하는 것은 물어야 할 과징금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질소산화물은 초과 시 과징금이 ㎏당 7450원이다. 1t만 초과 배출해도 745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황산화물은 ㎏당 2500원, 먼지는 3850원을 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이 업종별 단체로부터 취합한 47개 주요 사업장의 올해 할당 부족량은 질소산화물 1만8200t, 황산화물 1만8467t, 먼지 54t 등이다. 배출권을 구매하지 못해 100% 벌금이 부과된다고 가정하면 사업장들이 물어야 할 과징금만 총 1조849억원에 달한다.

내년에는 정부의 쿼터가 더 줄어드는 데다 올해 목표를 지키지 못한 데 따른 페널티까지 더해져 과징금 규모가 급속히 불어나게 된다. 오염물질 배출량이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47개 사업장이 물어야 할 과징금은 내년 2조4347억원, 2022년 4조6225억원 등으로 매년 배 가까이 증가한다.

환경부는 할당량이 부족한 사업장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기준을 바꿀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월별로 배출량을 체크해 할당량이 남는 사업장의 배출권을 부족한 사업장에 팔 수 있도록 해 혼란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계에선 빡빡한 정부 기준 탓에 다른 사업장에 배출권을 팔 여력이 있는 업체를 찾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올해 과징금을 면제하고 내년 이후에도 현실적으로 할당량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형석/구은서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