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러시아산 식품·소비재 열풍이 번졌지만 중국산이나 제3국산 제품을 러시아 수입품으로 속여 파는 사례가 잇따르며 소비자 신뢰가 급격히 무너졌다. AFP
중국에서 러시아산 식품·소비재 열풍이 번졌지만 중국산이나 제3국산 제품을 러시아 수입품으로 속여 파는 사례가 잇따르며 소비자 신뢰가 급격히 무너졌다. AFP
중국에서 한때 열풍을 일으켰던 러시아산 식품과 소비재가 신뢰 위기에 빠졌다. 러시아풍 인테리어와 키릴문자를 앞세운 이른바 러시아 상품관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과정에서 중국산이나 제3국산 제품을 러시아 수입품처럼 판매하는 사례가 잇따라 적발되면서다.

러시아 정품 수출업체까지 매출 타격을 입자 러시아 정부 산하 기관과 기업들이 원산지 인증과 유통망 정비에 나섰다.

中서 무너진 러시아 상품 신뢰

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에서 최근 열린 무역박람회에 참가한 러시아 제과업체 벨료프 파스틸라 매뉴팩처의 베라 니키티나 대표는 신규 바이어를 찾는 동시에 자사 제품이 실제 러시아산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공을 들였다.

이 회사는 2019년 처음 중국 시장 진출을 시도한 뒤 2022~2023년 정기 수출과 현지 사무소 설립에 나섰다. 중국에서 러시아산 소비재 인기가 치솟은 2024년에는 판매가 빠르게 늘었다.

당시 중국 주요 도시의 쇼핑몰과 상업거리에는 파란색과 흰색 간판을 단 러시아 상품관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초콜릿과 소시지, 빵, 꿀, 보드카 등을 한데 모아 판매하고 러시아 음악과 키릴문자 간판으로 현지 분위기를 연출했다.

더우인 등 온라인 라이브커머스에서도 러시아산 식품과 주류 판매가 급증했다. 기업정보 플랫폼 치차차에 따르면 러시아 상품 관련 사업체 등록 수는 2024년 말 841개로 전년보다 20% 이상 늘었다. 지난해 초에는 관련 기업이 전국적으로 3500개를 넘어섰다.

러시아 제품의 중국 진출 확대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제재와 글로벌 기업의 러시아 철수로 중·러 교역 구조가 재편된 데 따른 결과다. 중국산 자동차와 공산품이 러시아 시장의 공백을 채웠고 러시아산 식품과 소비재는 중국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양국 교역액은 2024년 2448억달러(약 329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열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2024년 말부터 중국 언론과 당국의 조사에서 러시아풍 포장과 매장 디자인을 사용하면서 실제로는 중국이나 제3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파는 사례가 잇따라 드러났다.

소비자 불신이 확산하면서 정품 러시아산 제품까지 함께 외면받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 상품 인기가 높아지자 현지 생산 제품이 러시아 수입품으로 둔갑해 시장에 대거 등장했다"며 "중국 소비자들이 러시아 제품 전반을 의심하게 되면서 관련 사업에 피해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짝퉁에 발목 잡힌 메이드 인 러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러시아 상품관의 폐점도 이어졌다. 쓰촨온라인에 따르면 지난해 7월 항저우에서는 복수의 러시아 상품 매장이 이미 문을 닫았고 일부 매장은 재고 정리 할인에 들어갔다.

러시아 이미지에 기대 급속히 확장한 매장들이 소비자 신뢰를 잃으며 불과 1년 만에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간 셈이다.

상황이 이렇자 러시아 정부까지 대응에 나섰다. 러시아수출센터의 예브게니 바조프 중국 수석대표는 SCMP에 "러시아 이미지가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는 과정에서 개별 제품의 실제 원산지가 불분명한 경우가 있었다"며 "이 때문에 소비자 혼란이 생기고 정식 러시아 생산업체에도 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수출센터는 검증된 수출업체와 수입업체를 중심으로 공식 유통망을 강화하고 소비자가 제품 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공식 '메이드 인 러시아' 판매 채널도 확대할 방침이다.

바조프 대표는 "이제 러시아산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메이드 인 러시아가 국가 이미지를 뜻하는 문구에 머무르지 않고 품질과 추적 가능성을 보증하는 표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산이라는 국가 이미지에 기대 급성장한 시장이 짝퉁 논란으로 역풍을 맞고 있다"며 "원산지와 유통 경로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품 여부를 소비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