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의 대표 코리아타운이었던 왕징이 중국 빅테크와 젊은 소비층이 모이는 국제 상권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 교민을 위한 한글 간판은 이제 중국인을 겨냥한 케이(K)푸드·K문화 콘텐츠로 바뀌며 왕징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중국 베이징의 대표 코리아타운이었던 왕징이 중국 빅테크와 젊은 소비층이 모이는 국제 상권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 교민을 위한 한글 간판은 이제 중국인을 겨냥한 케이(K)푸드·K문화 콘텐츠로 바뀌며 왕징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3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왕징의 카이더몰 야외광장. 입구에 들어서자 대형 아치에 한글로 적힌 건배하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색 포장마차가 늘어선 광장에서는 한국 음식과 수제맥주를 판매하는 케이(K) 스트리트 포장마차 파티가 한창이었다. 중국인 젊은 층을 겨냥한 한국 테마 행사다. 올해로 개장 20주년을 맞은 카이더몰 왕징이 국경절 연휴를 맞아 처음 마련했다.

2006년 문을 연 이 쇼핑몰은 왕징이 대규모 주거지역에서 국제 상업지구로 변해온 과정을 지켜본 상징적인 공간이다.

한국인이 만든 왕징 상권

왕징의 본격적인 개발은 1990년대 시작됐다. 2000년 6월엔 면적 10.36㎢의 왕징가도가 공식 출범했다. 이 무렵 한국인 유입도 빠르게 이뤄졌다. 삼성전자와 LG 등 한국 기업을 비롯한 다국적 기업이 베이징에 진출하면서 주재원과 가족들이 왕징에 정착했다. 공항 접근성이 좋고 신축 아파트가 대거 공급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초기 한국인들은 임대료가 비싼 궈마오 등 도심 외국인 주거지역에 주로 거주했다. 이후 상대적으로 집값이 낮고 공항과 기업 근무지 접근성이 좋은 왕징으로 이동했다. 기업들이 직원 숙소를 왕징에 마련하면서 대서양신청 등 대단지 주변에 한국 식당과 마트, 학원, 미용실이 잇따라 들어섰다.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왕징 한국인이 급격하게 감소했다. 하지만 베이징은 여전히 상당수 중국 진출 한국 기업의 본부가 위치한 핵심 거점이다. 현재 왕징에는 기업 약 1만7000개가 등록돼 있고 이 가운데 기술기업만 4000개를 넘는다.

왕징이 속한 차오양구에는 알리바바와 메이퇀, 샤오홍슈가 자리 잡았다. 인공지능(AI) 기업도 약 700개에 달한다. 왕징이 베이징의 제2 중심업무지구(CBD)로 불리는 배경이다.

20년 만의 세대교체…중국인이 찾는 K문화

상권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2020년 재정비된 380m 길이의 왕징샤오제는 연간 방문객이 800만명을 넘는 소비·문화 거리로 성장했다. 상인들의 하루 평균 매출은 재정비 이전보다 50% 이상 증가했다.

지난 8월에는 기존 쇼핑몰을 개조한 왕징 브이허브(V-HUB)가 문을 열었다. 156개 브랜드 가운데 88개가 각급 지역에 처음 진출한 1호점이다. 쇼핑몰 면적의 60%를 개방형 공공공간으로 만들었다.
중국 베이징의 대표 코리아타운이었던 왕징이 중국 빅테크와 젊은 소비층이 모이는 국제 상권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 교민을 위한 한글 간판은 이제 중국인을 겨냥한 케이(K)푸드·K문화 콘텐츠로 바뀌며 왕징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중국 베이징의 대표 코리아타운이었던 왕징이 중국 빅테크와 젊은 소비층이 모이는 국제 상권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 교민을 위한 한글 간판은 이제 중국인을 겨냥한 케이(K)푸드·K문화 콘텐츠로 바뀌며 왕징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현지에선 중국 소비자들이 왕징을 외국인 주거지보다 기술기업과 젊은 소비문화가 결합된 국제 상권으로 받아들이게 된 변화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선 앞으로 AI와 디지털의료 등 첨단산업이 왕징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왕징가도는 지난해 데이터 연결과 AI, 친환경 스마트모빌리티, 디지털의료, 문화·상업·관광·스포츠를 5대 과학기술 산업 분야로 정했다. 신규 산업 육성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이런 가운데 주중한국대사관은 오는 9일 미식과 문화로 하나되는 케이(K) 축제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K-푸드 페스타를 연다. 한·중 관계 회복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베이징 현지에서 한국 음식과 문화 콘텐츠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서다.

현지 교민사회 한 관계자는 "왕징에 주재원을 비롯한 한국인 수가 줄어들고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흥미로운 건 한국의 흔적이 없어지는 대신 소비 콘텐츠로 새롭게 다시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왕징의 한글 간판이 한국 교민을 위한 것이었다면 최근엔 중국 소비자를 겨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