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를 보관할 수 있도록 설계된 ‘롤스로이스 셀라렛’.  롤스로이스 제공
시가를 보관할 수 있도록 설계된 ‘롤스로이스 셀라렛’. 롤스로이스 제공
지금은 차 안에서 흡연하는 사람이 드물지만, 자동차 태동기에는 차내 흡연이 일종의 멋으로 통했다. 시가를 입에 물고 연기를 뿜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행위는 고급차 소유자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주행 중 성냥을 켜면 전방 시야를 놓쳐 위험했고, 기름 라이터는 바람 탓에 수시로 꺼졌다. 성냥 불티로 실내에 불이 붙는 사고도 잦았다. 운전 중 낭만을 누리기 위해 적잖은 위험을 감수한 셈이다.

1880년대 초 오스트리아·스위스의 발명가 프리드리히 빌헬름 쉰들러가 전자식 시가 라이터를 개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애연가인 그 역시 주행 중 담배에 불을 붙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대시보드에 구멍을 뚫어 장착하는 애프터마켓용 별도 장치로 판매했다. 멀쩡한 실내를 훼손해야 했지만, 부유층 운전자는 흡연의 멋을 위해 앞다퉈 장치를 달았다.

유행을 포착한 자동차 제조사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차내 흡연이 상류층의 사교 문화로 자리 잡자 출고 단계부터 전자식 라이터를 내장하기 시작했다. 1925년 미국 고급차 브랜드 링컨과 캐딜락이 대시보드 매립형 시가 라이터를 기본 옵션으로 채택했다. 별도로 구멍을 뚫을 필요가 없어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당시 링컨과 캐딜락에 전자식 라이터, 즉 시가잭을 납품한 기업은 카스코였다. 카스코의 최대 고민은 규격 통일이었다. 링컨의 성공 이후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전자식 라이터를 도입하면서 차별화를 이유로 크기와 위치를 제각각 적용했기 때문이다. 형태는 모두 원형이었지만 소켓의 지름과 깊이가 달라 호환되지 않았다.

이후 1950년대 들어 원형 열선을 누르면 달아올랐다가 튀어나오는 ‘팝아웃’ 방식이 등장했다. 열선이 일정 온도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튀어나오고 전원이 차단되는 구조다. 모든 완성차 업체가 동일한 규격의 12V 소켓을 대시보드에 기본 장착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 덕분에 분실하더라도 다른 차종의 라이터를 그대로 쓸 수 있는 표준화가 완성됐다.

오늘날 차 안에서 전자식 라이터를 사용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흡연 장치가 전자기기 충전 포트로 완전히 탈바꿈해서다. 모바일 기기 이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운전석과 가장 가까운 전원 공급원인 시가잭이 충전 단자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

최근에는 USB-C 포트와 무선 충전 패드가 기본 사양으로 자리 잡으며 시가잭의 활용도마저 급격히 떨어졌다. 차내 흡연에 따른 냄새가 중고차 잔존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히면서 흡연 장치로서의 수명은 사실상 끝났다.

시가잭, 라이터에서 충전단자로
그럼에도 시가 라이터를 고집하는 브랜드가 있다. 롤스로이스·마이바흐·벤틀리 같은 최고급 럭셔리 완성차다. 이들은 여전히 눈에 띄는 위치에 진짜 시가 라이터와 전용 재떨이를 정교하게 배치한다. 대중차가 효율을 이유로 시가잭을 지워가는 사이, 최고급 세단은 고객의 클래식한 취향과 아날로그 감성을 보존하기 위해 이를 가장 우아한 형태로 남겨둔 셈이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