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과잉 공급으로 불황의 터널을 지나온 국내 화학섬유업계가 첨단 산업을 발판 삼아 체질 개선에 나섰다. 단순 의류용 섬유를 넘어 글로벌 빅테크의 전력난 해소를 위한 전력 인프라 소재와 프리미엄 완성차 부품 등으로 사업의 무게추를 빠르게 옮기는 모습이다.
◇탄소섬유, 전력 인프라 소재 재조명
6일 업계에 따르면 HS효성첨단소재는 최근 미국 버지니아주와 캘리포니아주 등에 있는 복수의 전력 인프라 기업에 전선심재용 탄소섬유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전선심재는 전선의 인장 강도를 높이기 위해 중심에 넣는 뼈대 역할을 한다. 탄소섬유는 그간 수소·전기차 보급 지연으로 성장세가 주춤했지만, 최근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 급증과 맞물려 새로운 기회를 맞았다.
탄소섬유를 적용한 전선심재는 기존 강철 심재보다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높다. 대용량 전력 송전 시 발생하는 고열에도 특유의 저열팽창성 덕분에 전선 처짐 현상이 적다. 전력 손실을 줄이고 철탑 간 간격을 늘릴 수 있어 노후 전력망 교체가 시급한 미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 회사는 북미 시장 진입 초기인 2022년 대비 2027년 전선심재용 탄소섬유 판매량이 다섯 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데이터센터에 전력망이 연결되기 전 오프그리드(자가발전) 단계에 쓰이는 압축천연가스(CNG) 고압용기에도 탄소섬유 채택이 늘어나고 있다. CNG 고압용기는 외부에서 채굴한 가스를 발전시설로 운송하는 과정에 사용된다. 기존 금속 용기 대비 무게를 60~70% 줄여 한정된 부지 내 에너지 저장 밀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HS효성은 최근 방위산업 분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무기체계 고도화와 함께 경량화 내열성 고강도 등 소재 성능 요구가 높아지면서다. 이 회사는 대한항공이 개발 중인 저피탐 무인기에도 탄소섬유 소재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 “산업용 소재 비중 50%로”
태광그룹 계열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은 완성차 내장재 시장을 정조준하며 산업용 소재 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두 회사는 2024년 출시한 폴리에스테르 기반 고기능성 브랜드 ‘에이스파인’을 앞세워 차량용 시트지와 흡음재, 헤드라이너 등을 잇달아 공급 중이다. 기아의 북미 공략용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인 텔루라이드를 시작으로 지난달 공식 계약에 들어간 현대자동차 ‘디 올 뉴 아반떼’에도 해당 소재가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 완성차 한 대에 투입되는 섬유 소재 내장재는 평균 40~50㎏ 수준이다. 이 중 태광그룹이 주력으로 삼은 폴리에스테르 비중은 10~25%에 달한다. 이 회사는 현재 25% 수준인 산업용 소재 비중을 2030년까지 약 55%로 끌어올린다는 내부 방침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역시 하이엔드 모빌리티 소재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코오롱글로텍의 에어백 사업을 2024년 흡수 통합한 뒤 프리미엄 차량 안전 소재 공급을 본격화했다. 최근에는 차량 전복 사고 시 승객의 천장 충격을 막아주는 ‘루프톱 에어백’용 소재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범용적인 정면·측면 에어백 시장을 넘어 프리미엄 완성차업계의 까다로운 안전 수요를 선점해 고마진 수익 구조를 안착한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