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 수요가 급증하자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가 시장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내고 연간 전망치를 높였다. 그런데도 시간 외 거래에서 HPE 주가는 한때 8%가량 하락했다. 메모리 반도체 등을 고가에 사들여 완제품을 제작하는 서버 제조사의 사업 구조상 AI 호황의 과실이 핵심 부품 업체만큼 크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됐다.
HPE는 2026회계연도 3분기에 전년 동기보다 33.6% 증가한 122억1000만달러 매출을 올렸다고 2일(현지시간) 밝혔다. 시장 예상치인 119억~121억달러를 웃돌았다. 조정 주당순이익(EPS)도 1.11달러로 예상치(0.92~0.93달러)를 넘어섰다. 회사는 올해 매출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 29~33%에서 34~37%로 높이고 조정 EPS 전망치도 3.75~3.85달러로 상향했다.
성장을 이끈 것은 AI 수요다. 클라우드·AI 사업 매출은 9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5.4% 증가했다. 이 가운데 서버 매출이 35.3% 늘어난 68억달러를 기록했다. 문제는 AI 서버 가격 상당액을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생산하는 D램·고대역폭메모리(HBM), 낸드플래시 등 핵심 부품이 차지했다는 점이다.
가격 결정력도 다르다. GPU와 메모리 제조 업체는 공급 부족을 바탕으로 가격과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지만 HPE 같은 서버 제조 회사는 오른 부품값을 먼저 부담한 뒤 고객에게 전가해야 한다. 가격 인상이 늦어지거나 제품 판매량이 줄면 수익성 압박을 받는다. 부품 확보도 문제다. 주문이 많더라도 부품을 구하지 못하면 매출이 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부품 확보에 묶이는 자금도 늘어났다. 올 3분기 HPE 재고자산은 118억2000만달러로 전년 동기(71억6000만달러)보다 65.1% 증가했다. 향후 실적은 부품을 얼마나 확보하고 원가 상승분을 고객에게 전가할 수 있는지에 좌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모건스탠리는 완제품 업체가 고객에게 원가 상승분을 충분히 전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에릭 우드링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는 “메모리 가격 상승이 시작된 뒤 통상 6개월∼1년이 지나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의 매출총이익률이 압박받는다”며 “가격 인상, 다른 부품비 절감, 운영비 축소 등을 동원해도 OEM 업체가 상쇄할 수 있는 금액은 메모리 원가 상승분의 약 70%에 그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