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이야기를 샅샅이 해부하는 월가 아나토미 2회에서는 엔비디아를 세계 최고 테크 기업으로 이끈 그래픽처리장치(GPU)에 관한 내용입니다. 게임에 쓰이던 GPU가 어떻게 해서 인공지능(AI) 기술과 최고 파트너가 됐는지, 그 과정에 엔비디아는 어떤 전략적 결정을 내렸는지 짚어봅니다. 최근 엔비디아 주가가 주춤한 이유와 월가의 분석도 담았습니다.
엔비디아, 끝없는 GPU 영토 확장 [박신영의 월가 아나토미]

군사 시뮬레이션에서 3D 게임으로

GPU의 뿌리는 군사·항공 시뮬레이션에 있습니다. 1960~1970년대 전투기 조종훈련과 군사 시뮬레이션에서는 조종 방향에 맞춰 지형·활주로·적기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보여줘야 했습니다. CPU가 계산과 화면 생성을 모두 처리하기 어려워지면서, 화면 표시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장치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술은 자동차·항공기·건축물의 3차원 설계로 확산됐습니다. 설계자가 컴퓨터 화면에서 물체를 돌리고 확대할 때마다 화면은 도형을 다시 계산해야 했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990년대 3D 게임의 확산이었습니다. 게임 화면은 수많은 픽셀의 색을 계산하고, 물체의 위치·빛·그림자를 매초 수십 차례 다시 계산해야 합니다. 이 작업을 CPU가 모두 맡으면 화면이 느려지거나 끊길 수 있습니다.

CPU가 여러 종류의 복잡한 일을 처리하는 소수의 전문가라면, GPU는 같은 계산을 동시에 나눠 처리하는 대규모 작업자에 가깝습니다. 엔비디아는 1999년 주요 3D 그래픽 기능을 한 칩에 통합한 ‘지포스 256’을 내놓으며 이를 GPU라고 명명했습니다.

CUDA, GPU를 게임 밖으로

엔비디아가 다른 그래픽칩 업체를 제치고 AI 시장의 중심으로 올라선 핵심 배경은 쿠다(CUDA)입니다.

엔비디아는 2006년 CUDA를 발표하고 2007년 개발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습니다. 쿠다는 GPU 자체가 아니라, 개발자가 GPU에 그래픽 외의 계산을 시킬 수 있도록 만든 소프트웨어 플랫폼입니다.

쿠다 이전에는 GPU가 주로 “화면에 물체를 그려라”, “픽셀 색을 계산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쿠다가 등장한 뒤에는 “수백만 개 숫자를 계산하라”, “방대한 데이터를 나눠 동시에 처리하라”, “거대한 숫자표를 곱하라”는 식의 작업도 수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GPU는 이후 기후 예측, 의료영상 처리, 석유 탐사, 항공기 설계, 금융 위험 계산 등으로 사용처를 넓혔습니다. 엔비디아에 따르면 GPU 컴퓨팅 개발자는 2009년 9만 명을 넘었고, CUDA를 가르치는 대학도 250곳 이상으로 증가했습니다. 2010년 CUDA 개발자는 1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AI로 GPU 수요 폭발

GPU가 AI에 적합하다는 점을 보여준 대표 사례는 2012년 알렉스넷입니다.

토론토대 연구진은 약 120만 장의 이미지로 대규모 신경망을 학습시킨 알렉스넷을 개발했습니다. 이 과정에는 엔비디아의 게임용 GTX 580 GPU 두 대와 쿠다가 사용됐습니다. 알렉스넷은 이미지넷 대회에서 기존 기술을 큰 차이로 앞섰고, 대학과 기술기업이 GPU 기반 AI 개발에 뛰어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AI는 사진·글·소리를 숫자로 바꾼 뒤 신경망 안에서 수많은 곱셈과 덧셈을 반복해 답을 찾습니다. AI 학습은 정답과 AI의 답을 비교하면서 수백만 개에서 수조 개의 가중치를 계속 수정하는 과정입니다. 비슷한 계산을 엄청나게 반복해야 하는 만큼 GPU에 적합합니다.

2022년 챗GPT는 GPU 수요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습니다. AI 수요는 크게 학습과 추론으로 나뉩니다. 학습은 대규모 언어모델을 처음 만드는 과정으로, 수천 대에서 수만 대의 GPU가 장기간 필요합니다. 추론은 학습을 마친 AI가 이용자의 질문에 실제 답하는 과정입니다.

챗GPT 이용자가 늘수록 질문마다 GPU가 필요합니다. AI 모델을 한 번 학습한 뒤에도 서비스가 운영되는 동안 지속적으로 GPU가 가동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생성형 AI 경쟁은 학습용 GPU 수요를, AI 서비스 확산은 추론용 GPU 수요를 동시에 늘렸습니다.

엔비디아 매출, 3년 만에 8배로

생성형 AI 투자 경쟁은 엔비디아 실적에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엔비디아의 연간 매출은 2020회계연도 109억달러, 2021회계연도 167억달러, 2022회계연도 269억달러였습니다. 이후 2023회계연도에는 270억달러로 정체했지만, AI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한 뒤 2024회계연도 609억달러, 2025회계연도 1305억달러, 2026회계연도 2159억달러로 급증했습니다.

2023회계연도와 2026회계연도를 비교하면 매출은 3년 만에 약 8배 늘었습니다. 가장 최근인 2027회계연도 1분기 매출은 820억달러였으며, 엔비디아는 2분기 매출 가이던스로 910억달러를 제시했습니다.

수익성도 높습니다. 매출총이익률은 제품 전환기였던 2023회계연도 56.9%까지 낮아졌지만, AI 수요가 급증한 뒤에는 70%대 중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칩이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전체를 팔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전략은 GPU 판매를 넘어섭니다. GPU를 제때 생산하고, 데이터센터에 설치해 실제 가동하기까지의 병목을 줄이는 데 직접 관여하고 있습니다.

AI 기업이 GPU를 구매하려 해도 자금·전력·부지·서버 시설이 부족하면 데이터센터를 지을 수 없습니다. 엔비디아는 GPU뿐 아니라 CPU, 네트워크 장비, 서버랙, AI 소프트웨어를 함께 공급하고 있습니다.

오픈AI·소프트뱅크·오라클 등이 최대 5000억달러를 투입하는 AI 인프라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에 엔비디아가 핵심 기술 파트너로 참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첨단 패키징과 HBM 공급은 또 다른 병목입니다. GPU와 HBM을 생산하더라도 이를 조립하고 검사할 시설이 부족하면 완제품 출하가 늦어집니다. 엔비디아는 미국 반도체 조립·검사 기업 앰코와 15억달러 규모의 장기 계약을 맺고 선급금을 제공했습니다.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 등과도 차세대 HBM의 개발·검증·양산 일정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특정 업체의 생산 차질이나 수율 문제가 차세대 GPU 출하 전체를 막지 않도록 공급망을 관리하는 전략입니다.

클라우드·AI 에이전트·국가 AI로 수요처 넓혀

엔비디아는 클라우드 사업자에도 직접 투자하고 있습니다. 2026년 1월 코어위브에 20억달러를 추가 투자했고, 2032년까지 팔리지 않은 클라우드 용량을 최대 63억달러 규모로 구매하는 약정도 맺었습니다.

같은 해 3월에는 네비우스에 20억달러를 투자하고, 이 회사가 2030년까지 5GW 이상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도록 협력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엔비디아가 클라우드 기업의 데이터센터 확장을 지원해 GPU 수요를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AI 에이전트도 중요한 시장입니다. AI가 검색·분석·코딩·고객 응대를 반복하는 에이전트로 확산하면, 업무가 발생할 때마다 추론용 GPU 수요가 생깁니다.

엔비디아는 각국이 자국 언어·데이터·산업에 맞는 AI를 직접 개발하는 ‘소버린 AI’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AI 인프라에는 차세대 루빈 GPU 2만7500개를 공급할 계획입니다.

로봇·자율주행차·스마트공장 등 피지컬 AI도 새로운 수요처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 옴니버스를 활용해 실제 공장을 가상으로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생산라인과 로봇의 움직임을 가상으로 시험하는 과정에서도 AI 학습·시뮬레이션용 GPU 수요가 발생합니다.

높은 기대치·자체 AI 칩·순환금융은 위험 요인

엔비디아의 가장 큰 부담은 너무 높아진 시장 기대치입니다. 실적이 좋아도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돌아야 주가가 상승할 수 있습니다. 성장률이 조금만 둔화하거나 다음 분기 전망이 기대에 못 미치면 주가가 크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구글의 TPU, 아마존의 트레이니움처럼 대형 고객들이 자체 AI 칩을 개발하는 점도 변수입니다. 비용이 중요한 일부 추론 작업을 자체 칩으로 옮기거나, 이를 외부 고객에 클라우드로 제공하면 엔비디아의 고객이 경쟁자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 시장도 불확실합니다. H200 판매가 확대되더라도 중국 기업들이 화웨이 등 자국산 AI 칩을 늘리면 엔비디아의 매출 회복 폭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엔비디아가 금융회사들과 구축하는 최대 5000억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자금 조달망도 기회이자 위험입니다. 금융회사가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자금을 공급하고, 고객이 이 자금으로 엔비디아 GPU를 도입하는 구조입니다.

엔비디아는 직접 대규모 자금을 모두 투입하지 않고도 고객의 구매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반면 AI 수요가 예상보다 둔화하면 데이터센터 수익성과 GPU 담보가치가 함께 낮아질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순환금융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월가 “실적 좋겠지만 그것만으론 부족”

월가 증권사들은 대체로 엔비디아에 낙관적입니다. 다만 좋은 실적만으로는 부족하며, 시장 기대치를 얼마나 크게 넘어서는지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캔터피츠제럴드는 엔비디아에 대한 비중확대 의견과 목표주가 350달러를 유지했습니다. C.J. 뮤즈 애널리스트는 엔비디아의 주당순이익이 2027년 17달러, 2028년 25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로젠블랫은 매수 의견과 목표주가 325달러를 유지했습니다. 블랙웰과 블랙웰 울트라 출하 확대, 추론 수요 증가, 차세대 플랫폼 베라 루빈의 출시가 주가 상승 촉매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엔비디아의 이번 분기 매출이 회사 가이던스인 910억달러를 넘어 940억 달러에서 950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블랙웰 울트라 출하 증가와 추론 수요 확대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반면 모건스탠리는 강한 실적과 가이던스가 이미 주가에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자체 AI 칩 확대 속에서도 시장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 데이터센터 투자와 금융 지원이 재무 위험으로 이어지지 않는지, 약 75% 수준의 매출총이익률을 지킬 수 있는지, 베라 루빈이 예정대로 양산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번 실적에서 확인할 숫자

이번 실적 발표에서는 다음 분기 매출 가이던스가 가장 중요합니다. 시장은 이번 분기 숫자보다 향후 성장 속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매출과 블랙웰 판매 추이, 70%대 중반의 매출총이익률 유지 여부도 확인해야 합니다. HBM과 첨단 패키징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수익성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AI 에이전트 확산이 실제 추론 수요와 GPU 가동률 상승으로 이어지는지, 베라 루빈의 공급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되는지, 중국 H200 매출이 실적에 반영되기 시작하는지도 핵심 변수입니다.

결국 엔비디아 실적은 한 기업의 성적표를 넘어, AI 인프라 투자 열기가 실제 수요와 현금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