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옛 연인 감시에 악용…美 전역 깔린 AI 카메라 '빅브러더' 논란
미국에서 인공지능(AI)을 적용한 차량번호판 인식 카메라(사진)가 ‘빅브러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경찰이 옛 연인을 추적하는 데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24일(현지시간)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에 따르면 최소 36개 주에서 보안 카메라 훼손 사례가 확인됐다. 카메라는 2017년 설립된 플록세이프티라는 회사가 제작한 것으로 높이 12.7㎝, 무게 약 1.3㎏의 소형 설치형 제품이다. 주로 전봇대와 담벼락 등에 설치돼 있는데 최근 들어 이 카메라 지지대를 톱으로 자르거나 차량으로 들이받고 총으로 쏜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소셜미디어에 카메라를 훼손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이 있을 정도다.

논란은 한 경찰의 일탈에서 시작됐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마이클 스테프먼 전 조지아주 브래셀턴경찰서장은 지난해 플록 카메라 기록을 600차례 넘게 검색했다. 전 여자친구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활용해 그는 전 여자친구가 병원에 가거나 다른 사람과 데이트한 사실을 파악했다. WP가 법원 기록을 조사한 결과 미국 전역에서 스테프먼 전 서장처럼 플록 카메라를 허가되지 않은 목적에 쓴 혐의를 받거나 기소·유죄 판결을 받은 경찰이 46명이나 됐다.

플록 카메라는 일반 CCTV와 달리 AI로 번호판, 차종, 색상 등 차량 특징을 판독하고 촬영 장소·시간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다. 경찰은 영상을 일일이 돌려보지 않고 번호판과 특징을 검색해 특정 차량을 실시간 추적할 수 있다.

이런 기능을 적용한 플록 카메라는 좌우 진영에서 동시에 공격받고 있다. 진보 진영은 플록 카메라가 낙태와 이민자 감시 등에 악용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미국 이민단속국(ICE)은 플록세이프티와 계약을 맺지 않았지만 지방 경찰을 통해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영장 없는 위치 추적은 수정헌법 4조에 어긋난다”며 반대한다.

플록 카메라는 경찰의 지지를 바탕으로 미 전역에 빠르게 보급돼 현재 12만 대가 설치돼 있다. 치안 효과는 분명히 있다. 카메라가 도난·수배 차량번호를 읽으면 경찰에 즉시 알림을 보낸다. 플록세이프티는 700개 법 집행 기관이 플록 카메라를 통해 지난해 실종자 약 1만 명을 찾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플록세이프티는 기본 데이터 보관 기간을 30일에서 7일로 줄이고 연말까지 모든 법 집행 기관의 검색에 사건 코드 부여를 의무화하겠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하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가디언은 올 들어 미국 56개 도시가 플록세이프티와 맺은 계약을 취소하거나 플록 카메라 도입 계획을 접었다고 전했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